게임은 누구나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성장해 왔습니다.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크래프톤은 게임 본연의 재미와, 게임과 사회 상호간의 영향력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과 함께 게임 문화 연구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생각을 모아 연재 형식으로 전해드립니다.
[게임문화연구], 두 번째 편은 다양한 관점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게임의 역사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나보라 교수님의 글입니다.
한 때 ‘젊은 매체’의 대명사였던 게임이지만, 이제는 결코 젊다고 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 역사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연구분야인데, 200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야 학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한 동안 게임학 연구의 주변부에 머물렀다.
게임의 역사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1990년대에 출간되었던 일련의 게임사 저작들 ━ 국내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출간된 ‘게임의 역사’, ‘게임의 시대’ 등 ━ 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게임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기반으로 하는 관련 사료에 대한 꼼꼼한 조사나 업계 종사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작성된 이 저작들은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기술·산업적인 측면에 편향된 방식으로 작성되었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이들 은 대체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예를 들어 게임을 창시한 ‘아버지’들 ━ 윌리엄 히긴보덤, 스티브 러셀, 랄프 베어, 놀런 부쉬넬 등 ━ 에 대한 기술로 시작하거나, ‘퐁’의 탄생이나 1980년대 초반 북미게임 산업의 몰락 등의 비슷한 이슈를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역사 서술이 그 자체로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학문적인 측면에서 문제의식과 관점상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 대상의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대상과 관련된 과거의 여러 편린들을 특정한 관점에 기반하여 선별하고 엮어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기존하는 게임사 저작들이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은, 문제의식과 관점이 부재했거나 혹은 편향되어왔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게임의 과거를 형성했던 다양한 지류들의 흔적들이 배제되고 생략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최근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게임학계 내에서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움직임으로는 게임 역사 연구 분야에서 새롭게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 게임사를 들 수 있다. 이전까지 게임사 저술은 거의 절대적으로 북미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왔는데, 이러한 양상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실천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만 해도 그 게임의 역사는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보편사적인 흐름을 따른다기 보다는, 세계 게임산업의 중심이었던 일본의 대중문화의 유입이 금지된 가운데 홍콩이나 대만 등을 우회하여 복제 콘솔이나 게임 소프트웨어가 유입되는 등 동아시아권 내 복잡다단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어왔다. 보편적 게임사로는 수렴될 수 없는 흐름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여러 게임 학회에서는 지역 게임사를 핵심 아젠다로 선정하고 있으며, 지역별·권역별로 게임사 연구 모임이 결성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이라는 매체를 형성하는 기술 또는 그 산업이 유지되어온 방식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그것이 ‘배치’되는, 보다 광범위하면서 복잡다단한 맥락들에 주목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즉 수용의 측면에 비중을 두는 것이다. 그와 함께 게임 문화에 대한 재의미화 또한 활발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블룸스버리 아카데믹(Bloomsbury Academic)에서 새롭게 출간되고 있는 ‘영향력 있는 게임 개발자 총서(Influential Video Game Designers)’ 시리즈 또한 주목할 만하다. 기존 게임사 저술들이 산업의 발전이라는 측면에 함몰된 탓에, 게임의 역사적 발전에 기여한 또 다른 중요한 축이었던 개별적인 개발자들의 노력과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게임산업의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게임 개발작업이 개별적인 개발자들의 창의성과 역량에 따르기 보다는 경영과 마케팅의 원칙과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이 시점에 게임 역사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 개발자들에 대한 회고와 성찰은 단순히 소비를 위한 상품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이 집약된 창작물로서 게임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맥락에서 보자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영향력을 지닌 개발자들을 발굴하는 작업 그 자체가 아직 미진한 한국 게임사 연구의 방향성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의 역사는 결코 게임을 만들어낸 기술의 역사 또는 오락상품으로써 가공·생산해온 산업만의 역사로 한정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정체성이 각자가 지닌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상기하면, 게임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기억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는 곧 게임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이자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그것의 발전을 이끌어야 할 것인지의 문제와 직결됨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게임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과 대립의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에서 게임의 역사를 보다 다양한 관점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은, 따라서 명백해 보인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우선 게임의 역사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총서 시리즈의 기획과 출판을 제안하고 싶다. 위에 언급한대로 지역별·권역별 시리즈도 좋지만, 게임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개별적인 개발자나 게임들을 선정한 시리즈도 괜찮을 듯 하다. 선정하는 작업 자체가 한국 게임사 연구에 대한 기여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작업들을 기반으로 최근 몇 년째 화두만 되고 있는 아카이빙 작업의 물꼬를 틀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아직 인문사회학적 게임연구가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한국에서 이와 같은 출판 사업이 게임과 함께 자란 젊은 세대들이 게임연구 분야를 접할 수 있는 좋은 입문의 장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보라 게임연구자. 게임 플레이 경력은 꽤 오래되었지만 게임 연구를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우연히 게임학(Games Studies)을 접하면서였다. 2006년 <게임플레이 경험에 관한 연구: 디지털게임 장르를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2016년에는 <‘게임성’의 통사적 연구: 한국 전자오락사의 이론적 고찰>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