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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게임은 누구나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성장해 왔습니다.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크래프톤은 게임 본연의 재미와, 게임과 사회 상호간의 영향력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과 함께 게임 문화 연구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생각을 모아 연재 형식으로 전해드립니다.
게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시도, 윤태진 교수님의 글로 연재의 막을 엽니다.


누군가가 새로운 물건을 발명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컴퓨터라 해도 좋고 드론이라도 좋다. 사람들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무덤덤하다. 진지하게 연구하고 분석하기도 한다. 미디어에서 떠들기도 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다투기도 한다. 중구난방,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보면 그 물건에 대한 평가와 의견이 안정적인 모양새를 갖게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문화주의건 보편적 기본소득제건, 사람들은 그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찬반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 정의가 무엇인지, 대체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좋아하는 사람은 왜 좋아하고 그 반대는 또 왜인지 적당한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진다. 물론 불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변화의 경향성을 띠기도 한다.

디지털 게임에 대해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게임은 ‘놀이’고, 따라서 비생산적이다. 발전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4,50년 전에는 비생산적 놀이에 대한 무조건적 부정 의견이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은 ‘휴식’이나 ‘즐거움’이기도 하다. 개인주의와 워라밸이 강조되는 시기에는 긍정적인 인식도 꽤 높아질 것이다. 자본가인지 노동자인지, 기자인지 학자인지, 혹은 청소년인지 노년층인지에 따라서도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은 게임에 대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며 논의의 성격은 어떻게 변해 왔는가? 혹은 변하지 않았는가? 어떤 다른 의견들이 대립하고 경쟁했는가? ‘게임’이라는 단어가 어떤 개념이나 논리와 연결되어 정의되고 이해되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주요 언론들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일관되게 부정적이었다. 20여 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 게임은 중독, 폭력, 범죄와 쌍을 이루어 이야기되었고, 게이머는 합리성과 건강과 윤리와 효율을 거스르는 존재로 정의되었다. 2000년 이후 중앙일간지가 사설을 통해 게임을 다룬 사례는 총 40건이었는데, 이 중 게임의 부작용을 방치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36건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최근 2~3년 동안 의학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게임 중독’에 대한 논의가 미디어 담론을 지배했다.

심리학자 앤소니 빈(Anthony Bean)이 도덕적 공황이론을 통해 설명했듯, 대중매체가 설파하는 게임의 잠재적 해악은 공포의 전파를 낳고, 학자의 발언과 정치인의 개입을 거치면서 다시 공포를 조장하는 연구로 이어진다. 공포의 악순환이다. 따라서 게임에 대한 공포 정서의 악순환을 만드는데 학자들도 미디어 이상의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게임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드는지 묻는 연구, 아니면 게임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 방안에 골몰하는 연구 정도만 반복되다 보니 이미 보편 대중문화로서의 입지를 굳힌 게임의 위치와 존재 의의를 설명하지 못했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제한적 틀에 가두는 데에 일조하였다. 게임을 중독, 성적, 도박, 수출, 고용같은 단어와만 묶어두기에는 현대사회에서 게임이 가진 의의가 너무 커져 버렸다.

게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미디어도 게이머도 제작사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측면에 조명을 비추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크게, 그리고 오래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금의 우울하고 천박한 게임 이야기의 흐름을 천천히나마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게임의 미학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는 왜 들리지 않았나? 영화나 드라마의 미학은 이야기하면서, ‘예술로서의 게임’은 왜 극히 소수만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을까?

게임의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산업적 발전을 기록하자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여가산업과 테크놀로지를 만나 어떻게 지금의 게임/놀이 문화를 만들었는지 기록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게임 리터러시(Literacy)의 현황과 교육과제의 발굴이 필요하다. 게임과 지역사회의 얽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게임을 통해 초국가적 문화 융합과 혼종화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게임이 세대와 지역, 국경을 이어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할 이야기는, 아니, 해야 하지만 그 동안 들리지 않았던 게임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공포의 악순환을 끊는 첫 작업은 연구자들이 담당해야 한다.

물론 학계 담벼락 안에서만 소리를 높이는 것으로는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주요 연구결과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수 있는 채널을 운영하고, 도출된 결과들이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게임의 문화적 영향력을 재환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작업들이 필요하다. 읽을 만한 책을 출간하고,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들 수도 있다. 일반 대중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진짜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도 있다. 미디어 이벤트를 기획하여 언론의 개입을 유도하는 것도 좋은 수단이다. 이 모든 작업들은 국내가 아닌 전지구적 차원에서 수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게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몇몇 연구자들이 모였다. 뜻이 비슷한 학자들이 더 힘을 얹을 것이고, 국제적 게임연구 네트워크와도 협력할 계획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는 없을 테고, 학술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오랜 기간 축적되어 ‘안정적인’ 모양을 갖춘 게임 담론에 균열을 낼 수는 있다고 믿는다. 게임은 원래 재미있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게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도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새로운 게임 이야기’가 널리 퍼져 모쪼록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를 기대한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미국 메사추세스 주립대와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텔레비전 드라마, 디지털 게임, 한류, 웹툰 등 대중문화 현상에 대하여 꾸준한 관심을 갖고 학술적 분석을 해왔다. 게임 관련 저서로는 『게임과 문화연구』, 『디지털 게임문화연구』, 『게임포비아』,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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