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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원작 영화는 망한다?

영화계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게임 원작 영화는 십중팔구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게임은 영화계에서 계륵 같은 존재죠. 이야기가 고갈된 시대에 게임이 가진 세계관과 캐릭터는 매력적인 밑재료가 되지만, 정작 성공한 게임 IP(지식재산권) 영화는 손에 꼽기 때문입니다.

흥행 보증 수표가 될 것만 같았던 원작의 인기는 도리어 부도 수표가 돼 돌아오곤 합니다. 원작 팬들의 현미경 같은 혹독한 평가에 직면하죠. 게임 원작 영화는 원작의 요소를 그대로 이식하느냐, 영화에 맞는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느냐의 딜레마 사이에서 대개 처참하게 고꾸라집니다. 게임과 영화의 불협화음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공식의 시작 ‘슈퍼 마리오’

‘슈퍼 마리오’는 게임 원작 영화의 시초로 꼽힙니다. 그리고 게임 원작 영화 필망 공식의 시작점이기도 하죠. 1993년 개봉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원작과 무시무시한 괴리를 보여주며 동심을 파괴합니다. 인간처럼 진화한 공룡이 사는 지하 세계를 배경으로 독재자 쿠파와 맞서 싸우는 배관공 마리오, 루이지 형제가 등장합니다. 자원 고갈과 곰팡이 문제에 직면한 공룡족이 인간 세계로 침입을 준비한다는 꿈도 희망도 없는 설정입니다.

무시무시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원작의 동화 같은 판타지 세계관은 암울한 SF 세계관으로 변주됩니다. 버섯돌이 굼바는 어깨깡패 괴물로, 거북이 등딱지를 짊어진 쿠파는 삼각김밥 머리를 한 인간으로 나옵니다. 마리오 형제는 기계식 점프 부츠와 총으로 무장해 쿠파 일당과 대결합니다. 귀여운 아기 공룡 요시는 ‘쥬라기 공원’에 나올법한 무시무시한 인상으로 등장하죠. 매번 쿠파에게 납치되는 피치 공주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주인공 역도 사실상 루이지에게 돌아갑니다.

이처럼 영화 ‘슈퍼마리오’는 원작의 캐릭터만 부분적으로 차용하고 원작과 지하 세계 만큼 동떨어진 분위기와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그리고 처참히 망했죠. 4800만달러의 제작비가 들었지만, 건진 건 2천만달러에 불과하다고 전해집니다.

끔찍한 혼종이 된 격투 게임 실사 영화들

게임 원작 영화 흑역사의 계보를 잇는 건 격투 게임 실사 영화들입니다. 1994년 개봉한 ‘스트리트 파이터’를 시작으로 2001년 홍콩판 ‘철권’, 2010년 ‘킹 오브 파이터’ 등은 코 묻은 돈을 뜯어 가며 오락실을 제패했던 게임 원작과 달리 영화관에서 참패합니다. 원작 팬들을 “나의 OO은 이렇지 않아!”라며 울부짖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관객의 눈물을 훔치는 데는 성공 아닌 성공을 거둔 셈이죠.

1994년판 ‘스트리터 파이터’는 홍보 문구처럼 “상상을 불허”했습니다. 동양인인 류 대신 미국 국적 가일 역 장 끌로드 반담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화이트워싱 서사를 선보입니다. 홍콩판 ‘철권’은 원작 캐릭터의 외피만 씌우고 뉘신지 모를 다크, 풍뢰, 전투21, 아광, 아표 등이 나와 홍콩식 액션을 펼칩니다.

상상을 불허하는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2010년 할리우드판 ‘철권’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극장에 걸리지도 못 했습니다. 같은 시기 개봉한 ‘킹 오브 파이터’는 원작 캐릭터의 이름만 빌린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수습불가 액션을 보여줍니다. 딱 봐도 동양인인 쿄 쿠사나기는 화이트워싱을 당하고, 루갈은 ‘제노사이드 커터’ 대신 소총을 쏘며, 삼신기를 둔기로 활용합니다.

그나마 원작의 잔인한 기술을 B급 감성으로 승화한 ‘모탈 컴뱃’(1995)과 여성 캐릭터의 매력을 앞세운 ‘DOA’(2006)가 체면치레를 한 정도입니다. 앞선 교훈을 토대로 격투 게임 실사화 시도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대에 못 미친 최근 개봉작

게임 원작 영화에 대한 시도는 최근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영화 중 하나는 2017년 개봉한 ‘어쌔신 크리드’입니다. 원작의 매력적인 세계관과 대규모 할리우드 자본, 국내에는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의 매그니토 역으로 유명한 마이클 패스벤더를 주인공으로 앞세웠습니다. 하지만 원작 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데 실패하며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산만한 서사와 구멍 뚫린 설정, 관객을 이해시키기 위한 과도한 설명 등이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2017년 개봉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는 혹평과 호평을 오가며 비교적 무난한 평가를 받았지만, 원작 IP의 위용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게 중론입니다. 중국에서 개봉 4일 만에 순제작비를 뽑아낼 정도로 흥행했지만 서막만 울리고 아직 후속작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게임 원작 영화는 계속된다

게임 원작 영화가 모두 망한 것은 아닙니다. ‘툼레이더’(2001)는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와 찰떡으로 어울리는 안젤리나 졸리를 앞세워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해 성공을 거뒀고 후속작으로도 이어졌습니다. 2018년에 리부팅작이 개봉되기도 했죠. 좀비 액션물 ‘바이오 하자드’를 원작으로 한 ‘레지던트 이블’(2001)도 좋은 성적을 거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좀비물의 매력을 잘 살렸다는 평가입니다. 1편의 흥행에 힘입어 2017년까지 총 여섯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게임 원작 영화가 실패를 거듭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게임과 영화의 매체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탓이죠. 게임에서 서사는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플레이어의 능동적 체험과 몰입에 방점이 찍혀있죠. 또 긴 플레이 타임을 통해 자연스레 캐릭터와 서사에 힘이 실립니다.

성공한 게임 원작 영화 툼레이더.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하지만 영화는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 서사를 끌고 가야 합니다. 게임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리기엔 시간이 부족하죠. 그렇기에 지루한 설정 설명만 한참을 하거나 원작과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갖게 됩니다. 이 오리지널리티와 원작의 괴리가 클 때 다시 원작 팬들의 비판에 직면합니다. 게임 원작 영화의 딜레마입니다.

게임 원작 영화에 대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먼저 ‘소닉 더 헤지혹’이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첫 예고편 공개 당시 원작과 괴리감 있는 털복숭이 캐릭터로 ‘달리기왕 털복동’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최근 개선된 캐릭터 디자인을 통해 다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또 ‘언차티드’, ‘라스트 오브 어스’ 등 서사가 강조된 게임들도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게임은 게임, 영화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이 간명한 명제를 망각한 채 게임의 인기에 기대 만들어진 영화가 흥행하지 못할 뿐입니다.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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