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재환이 죽었어?” “NCT 자동차 사고 났어?”
이 무시무시한 메시지들은 올해 설날 진행된 ‘2020 설특집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 대회 중계 게시판의 글이다. 안방 1열 팬들이 아육대 배그 경기 직관 중인 팬들에게 실시간 상황을 묻는 내용으로, 많은 이들이 ‘현웃’터졌다고. 올해 아육대 배그 경기는 화제성 1위를 석권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왜 하필, 명절에 아이돌들이 모여서 배그 경기를 하게 되었을까? 2019년 추석 아육대와 올해 설 아육대 연출을 담당한 MBC 최민근 PD를 직접 만나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최민근 PD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육대는 고정 연출진이 없고, 매해 단기 프로젝트로 진행된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보통 예능 PD, 그중에서도 음악 프로그램 담당 PD들이 돌아가며 아육대 연출을 맡아요. 출연진들이 아이돌이다 보니, 다른 장르 PD보다 음악 프로그램 PD가 섭외에 용이하거든요. 아육대는 PD들이 약간 숙제처럼 연출하는 프로그램이죠. (웃음) 저는 현재 ‘쇼! 음악중심’ 연출을 맡고 있고, 이전에는 ‘일밤 진짜 사나이’를 5년 동안 연출했습니다.
PD님은 2년 연속 아육대 연출을 하셨죠?
네 그렇죠. 두 번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작년 추석과 올해 설의 텀이 4개월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연속성을 가지고 연출할 수 있었죠.
작년 추석 아육대에 이스포츠 경기가 처음 도입됐어요. 그 계기가 궁금해요.
아육대는 10년이 넘은 장수 프로그램으로, 그만큼 많은 비판도 받았어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며 나온 결과물이죠. 요즘 아이돌은 10년 전과 달라요. 글로벌 스케줄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다치면 활동에 지장이 생기죠. 제작진과 출연진이 항상 주의하지만, 몸을 쓰는 경기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리스크가 있어요. 부상 없는 경기를 고민한 끝에 이스포츠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아이돌 친구들이 실제로 게임을 많이 해요. 아이돌이 해외 공연 가면, 자유롭게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호텔 방에서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먼저 참가 의사를 밝힌 아이돌도 많았어요. 저희끼리 가끔 이런 농담을 해요. 만약 아육대가 계속된다면, 장래에는 아이돌들이 가상공간에서 다 뛰어놀고 있을 거라고. (웃음)
이스포츠 경기 종목으로 배틀그라운드를 선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배그는 지금 아이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임이에요. 모바일, PC로도 많이 하죠. 지난 추석 배그 모바일 경기는 연습 기간이 매우 짧았음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 친구들이 평소 즐기는 게임이라 고민의 여지 없이 결정했죠. 그리고 화면으로 보여주기에도 좋아요. 경기 룰도 심플하고요.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중계 화면을 보며 쉽게 즐길 수 있죠.
아이돌의 참가 신청이 많았다고 했는데, 다른 종목보다 월등히 인기가 많았나요?
그렇죠. 예상했던 것보다 신청자가 훨씬 많았어요. 작년 추석 배그 경기에 참가했던 친구들도 다시 신청했더라고요. 작년은 배그 모바일 경기였거든요. 그래서 4개월 동안 배그 모바일을 연습해서 이번에 다시 참가했는데, 올해는 배그 PC 경기라서 안타까워한 팀도 있었어요. 그동안 연습한 게 물거품이 됐다고. (웃음)
신청을 받은 후 특정 아이돌을 따로 섭외하기도 하나요?
전년도 우승팀이나 실력 있는 신입 팀들을 섭외하죠. 아육대 출연진의 세대교체도 이뤄져야 하므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청자를 받고 섭외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혹시 필수 섭외 리스트도 있었나요?
당연히 있죠. NCT DREAM 친구들이 작년 추석 배그 모바일 단체전에서 우승했거든요.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섭외했죠. 그리고 섭외에 가장 공을 들인 게 솔로 연합팀이에요. 박지훈, 하성운, 김재환, 이대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소속사가 다 달라요. 워너원 출신 친구들이 게임을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특히 박지훈의 배그 실력이 프로 선수급이라는 건 이미 유명하죠.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섭외했습니다.
섭외에 공을 들였는데, 아쉽게 못 나온 아이돌도 있을 것 같아요.
엑소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게임 잘하는 거로 유명한데, 스케줄이 워낙 바빠서 어려웠죠.
경기 중, 재밌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아이돌도 장비 탓을 하더라고요. 키보드가 이상하다, 마우스가 이상하다면서. (웃음) 아육대는 모든 종목에 심판이 있고 정식 룰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스포츠 경기에 유독 예민하더라고요. 그리고 보통 아이돌은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을 어느 정도 신경 쓰는데, 배그 경기할 때는 푹 빠져서 본인 표정이 어떻게 나가는지도 신경을 못 썼어요. 몰입해서 멍 때리고 있는 표정이 자주 잡혀서 팬들이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작년과 올해, 아육대 이스포츠 종목이 대박이 났는데, 예상하셨나요?
예상 못 했죠. 시청률이나 반응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어요. 아이돌들이 걱정 없이 맘껏 놀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첫 번째 목표였거든요. 그런데 올해 모든 설 특집 프로그램을 통틀어 화제성 3관왕을 했어요. 이스포츠 경기 부분만 해외에 따로 수출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죠. 아이돌들이 재밌게 즐겨줘서 반응도 좋았던 것 같아요.
제작진분들도 프로그램 준비하며 배그를 플레이하셨을 것 같은데.
아육대 제작팀은 이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종목이 결정되고나서 게임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죠.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해할 수 있는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초보 입문자 관점에서 기획했으니까요. 대신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봤을 때는 조금 시시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의 타깃은 대중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프로그램 회의 가면 제작진들이 다들 배그를 하고 있더라고요. 이후 빠져버려서… (웃음)
실제 이스포츠 대회와 비슷하게 세트를 구성했던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게임 회사와 게임 좋아하는 친구들의 조언을 참고했죠. 하지만, 저희는 실제 이스포츠 대회와 다르게 관람객이 게임 팬이 아닌 아이돌 팬이에요. 포인트가 다르죠. 팬들이 경기중인 아이돌의 얼굴을 잘 볼 수 있게 했어요. 팬들은 게임 플레이보다 아이돌의 얼굴을 보기 원하니까요.
전용준 해설가님 덕분에 진짜 게임 방송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섭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제가 개인적으로 전용준 해설가님 팬이에요. 이스포츠 대중화에 큰 몫을 하신, 이스포츠의 살아 있는 역사죠. 처음 섭외 연락 드리고 취지 말씀드렸을 때, 해설가님이 되게 감격스러워하셨어요. 이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분이라, 공중파에서 아이돌과 함께 이스포츠 대회를 연다고 하니 자부심을 느끼시더라고요. 눈물도 글썽거리셨어요. (웃음) 그리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금방 캐치하시고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즐길 수 있게 해설해주셨죠. 없어서는 안 될 분이에요.
올해 추석에도 아육대 배그 경기가 쭉 이어질 예정인가요?
아육대 PD는 매번 바뀌기 때문에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다음 연출하시는 분에게 달렸죠. 대신 이스포츠를 소재로 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에요. 아이돌을 주축으로 여러 연예인과 함께하는 이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이죠. 구체적으로 얘기하긴 어렵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 프로그램을 확장해보려 해요.
처음 아육대에서 이스포츠를 도입했을 때에는 이견도 있었어요.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아육대를 통해 그 걱정을 불식시켰다고 생각해요. 막상 게임을 접해보고,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보니 많은 사람이 이스포츠를 즐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이스포츠와 방송 프로그램이 동시에 건강하게 성장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들만의 리그’ 취급을 받았던 이스포츠. 이제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스포츠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스포츠의 대활약을 기대하며, 게임과 관련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컬처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
에디터 클토니: 게임 좋아해요. 게임 회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장인정신 넘치는 게임 유니온, 크래프톤 직원들을 탈탈 털어보려 합니다. 자칭 크래프톤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