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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대표적인 사교 문화 ‘길드’,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온라인게임을 하다 보면 거의 필수적으로 길드 가입 메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하는 게임이다 보니 같은 그룹 안에서 활동하는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영역이죠. 그래서 많은 게임이 길드 기능을 강력하게 지원합니다.

길드 전용 창고, 길드 의복과 스킨을 넘어 다른 길드와의 경쟁 콘텐츠와 순위에 따른 보상까지 길드를 통한 커뮤니티 플레이는 온라인게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왜 온라인게임 이용자들이 모여 활동하는 그룹 이름은 ‘길드’인 걸까요?

길드, 중세 상공인 연합으로부터

길드(Guild)는 원래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였습니다. 유럽 중세, 대략 서기 9~10세기 즈음에 나타난 길드는 주로 도시에서 수공업자와 상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결성한 조합의 형태였습니다.

중세 시대의 상공업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도시 인구가 지금처럼 밀집되지도 않았고, 도로와 교통은 많은 양의 상품을 실어나르는 일에 더 큰 비용과 수고를 요구했습니다. 따라서 상공업의 규모는 소속된 도시의 근방을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좁은 시장에서의 장사였기 때문에 상공업에는 최소한의 질서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길드가 결성됐습니다. 결성된 길드는 궁극적으로 해당 시장의 독점권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죠. 예를 들어, 도시 A에서 유통되는 접시는 모두 B 길드가 생산한 제품만을 써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길드는 상업적 질서를 유지하면서 조합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집단 이익단체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길드는 중세 말엽 주요 왕국들이 중앙집중화를 추구하면서 나타난 중상주의 정책에 의해 왕권에 상업의 주도권을 넘겨주기 시작했고, 동시에 기술발달로 숙련공의 가치가 과거와 같지 않은 대량생산시대를 맞으며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금은 공방 길드의 수호성인 성 엘리기우스가 공방 안에서 작업하는 그림(1450년경, 작자 미상. 암스테르담 Rijks박물관 소장. 판화). 길드는 봉건귀족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왕권과 귀족권, 종교에 일정 의무를 부담해야 했다.

판타지를 타고 게임으로 들어오다

게임이라는 상상의 영역에서는 가끔 과거의 개념들이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상징으로만 남은 군사 무기인 검이 여전히 많은 온라인게임에서 주력 아이템인 것처럼, 길드 또한 살아 숨 쉽니다.

게임 속 길드의 근원은 가깝게 찾아보자면 판타지일 것입니다. 중세 배경의 많은 판타지물에서 길드는 동시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주요한 소재입니다. 강하지 않은 중앙권력, 강력한 내부규율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통제의 분위기가 소설, 만화, 게임 전반의 분위기에 영향력을 미칩니다.

이런 배경에서 ‘울티마 온라인’에는 NPC들이 각자의 길드를 갖추고 있는 설정이 들어갑니다. 대장장이, 광부 등의 길드가 존재하며 플레이어들 또한 스스로 모인 무리를 길드로 칭하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길드 시스템 도입에 앞서, 플레이어들이 먼저 자신을 길드로 칭한 것입니다.

울티마 온라인’의 어촌마을 Trinsic에 위치한 ‘바다의 아들들’ 길드의 본청. 플레이어 길드가 아니라 게임 속 브리타니아 세계의 NPC로 구성된 어부들의 길드다.

이미지 출처: 울티마 온라인 위키

길드를 통해서 모이는 플레이어들의 활동이 왕성한 것을 발견한 제작사는 길드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게임 안에 추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길드 전용 집과 여러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추가로 제공되었고, 이후 많은 온라인게임 속 커뮤니티 활동이 길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게임 안에서 커뮤니티 활동과 게임 내 재화의 소유가 이어질 경우의 커뮤니티를 길드로 부르고, 그렇지 않은 게임에서는 클랜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울티마 온라인’, ‘리니지’ 등의 MMORPG가 길드에 가깝고, ‘스타크래프트’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의 커뮤니티는 클랜이라고 불리지만, 절대적인 구분은 아닙니다. 길드가 최초 그룹의 이익 단체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나름 의미심장한 부분입니다.

길드처럼! 크래프톤처럼

게임제작사들의 연합을 표방하는 크래프톤의 영문명은 KRAFTON으로, 중세 길드 중 영향력이 두드러졌던 장인 길드인 Craft guild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온 단어입니다. 각각의 제작팀(스튜디오) 들은 서로 다른 장르에서 독립적인 게임을 개발하지만, 동시에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형태로 과거 길드가 갖췄던 장점을 살려내고자 합니다.

한때 없어졌던 길드가 어느새 온라인게임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길드 형식의 연합체를 표방한 크래프톤의 협업 방식 또한 다양한 게임들이 경쟁하는 게임 시장에서 창의성과 시너지를 함께 끌어내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같은 팀임을 인식하는 것의 즐거움과 시너지는 플레이어의 길드나 게임사의 길드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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