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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제작자가 리뷰하는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게임 만드는 사람들은 게임 관련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일반인과는 다른 관점에서 콘텐츠를 분석할까? 크래프톤의 게임 제작자 2인을 만나,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넷플릭스가 2018년 공개한 인터랙티브 무비로,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영화의 결말이 달라지는 작품이다. 아래 인터뷰를 더욱 재밌게 읽고 싶다면, 먼저 영화를 시청하는 것을 추천한다.

안녕하세요. 명희 님, 상윤 님. 리뷰어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크래프톤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박명희(이하 박): 저희 둘 다 L10N(로컬라이제이션) 팀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게임을 해외 환경에 맞게 현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번역과 현지화를 전체적으로 담당하고 있어요.

임상윤(이하 임): 저는 L10N팀의 엔지니어로, 현지화 작업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작품이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인데요. 엔딩이 여러 개인 작품인데, 각자 어떤 엔딩을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임: 저는 마지막에 모든 게 연기였고, 넷플릭스 영화 촬영 현장인 게 밝혀지는 엔딩을 봤습니다. 당황스러웠죠. (웃음)

박: 엔딩의 기준이 조금 모호했어요. 엔딩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하라고 하고… 첫 엔딩은 주인공이 출시한 게임이 평점 0점을 받는 엔딩인 것 같아요.

게임 회사에서 주인공 스테판에게 같이 일하자고 했을 때, 바로 ‘수락’ 버튼을 누르셨나 보네요. 그럼 평점 0점을 받고 끝난다고 하더라고요.

박: 그렇죠. 주인공이 프로젝트 제의 받고 너무 신나는데 거절할 수 없더라고요. 망설임 없이 수락했습니다.

임: 저도 처음엔 냉큼 수락했어요. (웃음) 저랑 명희 님이 입사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취준생 시절이 생각나더라고요.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주인공의 재능을 알아주는데 어떻게 거절해요. 지원도 해준다고 하고.

박: 황송할 따름이었죠. (웃음)

저는 주인공이 회사 들어가면 만들고 싶은 걸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에 거절했어요.

박: 저희는 게임 제작이 다 팀플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웃음) 혼자는 못 하죠.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소개 영상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혼자 게임을 제작해요. 영화의 배경이 80년대임을 고려해도, 조금 비현실적이진 않나요?

임: 물론 지금도 1인 개발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지만, 보통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게임을 제작하려면 게임 디자인, 프로그래머, 아트 직군, 모델러 등 다양한 분업을 통해 제작하죠. 오히려 그 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요즘 게임 제작 툴이 많이 발전해서 1인 제작 인디 게임이 많이 출시되고 있어요. 그리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죠. 대신 ‘저 사람은 구글 없이 어떻게 게임을 만들까?’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웃음) 개발 필수 도구인 ‘스택 오버플로(Stack Overflow)’도 없이… 주인공이 천재인 거죠.

영화에서 묘사한 게임 회사는 어땠나요?

임: 80년대라면 컴퓨터 게임과 프로그래머란 직업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영화 속에서 묘사한 상황이 현재 게임 회사와 아주 다르진 않을 것 같아요. 영화 속 게임 개발 환경이나 기술은 80년대지만, 납기일을 강조하는 장면 같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웃음)

주인공이 동명의 책을 보고 영감을 얻어 게임을 제작해요.

박: 그 부분도 현실과 비슷하죠. 책이나 다른 미디어에서 IP를 가져와서 게임을 만드는 경우는 흔하니까요.

임: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보는 책은 게임 북이라서, 1:1 대응 방식으로 책의 내용을 게임으로 옮겼다는 것 정도네요.

영화 초반부터 많은 선택지가 제시되는데요. 게임 제작자들은 이야기의 구조를 예상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박: 저는 초반에 나오는 작은 선택지들도 나비효과를 불러올 거라 생각했는데, 미미한 영향만 미치더라고요. 그 부분이 더욱 재밌게 구현됐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초반 선택지는 인터랙티브 영화의 튜토리얼 정도였죠.

임: 저는 인터랙티브 게임을 즐겨 해서, 비슷한 구조임을 눈치채고 초반 맛보기 선택지는 알아챘어요. 오히려 놀라웠던 건 영화 후반의 흐름이에요. 인터랙티브 게임은 스토리 후반으로 갈수록 유저의 선택이 엔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중반부터 엔딩이 정해지기 시작하죠. 그런데 밴더스내치는 후반 선택만으로 엔딩이 극적으로 바뀌어요.

인터랙티브 게임의 구조와 밴더스내치의 구조를 비교해본다면?

임: 이런 류의 게임은 기본적으로 직선적인 진행이 많은데, 밴더스내치는 그렇지 않았어요. 기존 인터랙티브 게임보다 훨씬 복잡하게 갈라지고 꼬여 있는 구조죠.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지 않아서 신선했어요.

극중에서 ‘자유의지가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모든 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를 해요. 이 영화의 주제이자 형식이기도 한데.

박: 그 부분이 게임이랑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게임은 제가 잘못 선택하면 ‘게임 오버’가 떠요. 근데 밴더스내치는 영화가 정해 놓은 결말을 볼 때까지 계속 중간으로 돌아가죠. 정해진 굴레가 있는 작품이고, 그것을 경험하게 하는 게 영화의 의도인 것 같아요.

임: 영화 속 몇몇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영화 속 캐릭터임을 자각하고 있어요. 콜린이 주인공에게 ’너는 결국 갇혀있다’고 말하기도 하죠. 최근 몇 년 간 게임에서도 제 4의 벽을 깨는 그런 연출이 많았어요. 캐릭터들이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인 걸 알고 화면 밖의 사람에게 말을 걸죠. 이러한 부분을 영화에서 더욱 참신하게 연출한 것 같아요.

인터랙티브 무비가 등장하며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데. 밴더스내치와 기존 인터랙티브 게임을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면?

임: 우선 플랫폼의 차이가 있죠. 넷플릭스라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인터랙티브 무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 게이머들의 성향도 예전과 비교하면 좀 달라진 점이 있죠. 모바일 게임을 선호하고, 자동 전투 시스템을 활용하죠. 영화를 보며 내가 굳이 뭘 하지 않아도 알아서 진행되고, 그러면서도 편하게 스토리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 경계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줘요.

박: 사실 저는 이 작품을 조금 회의적으로 봤어요. 개인적으로 지루했거든요. 직접 조작할 수 없으니 이야기가 자꾸 반복되죠. 보는 사람에 따라 피로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임처럼 내가 직접 조작해서 뭘 바꿀 수 없으니까요.

임: 저는 하나의 성공적인 실험작이라고 생각해요. 게임과 영화를 분리하기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시도죠.

그럼 밴더스내치의 스토리 라인은 어떻게 보셨나요?

박: 저는 스릴러를 즐기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게임은 기본적으로 굵직한 메인 스토리가 있고, 극적인 순간도 연출되는데 그에 비해 좀 약했던 것 같아요. 개별 장면의 연출은 훌륭했는데, 스토리의 완결성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임: 보통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데, ‘기승’까지 있는 느낌? 주인공이 본인이 자유 의지가 없음을 깨달은 후에 상황을 헤쳐나가는 이야기가 진행될 거라 생각했는데, 거기서 끝나더라고요. (웃음) 자유의지는 매우 심오한 주제라서 더 깊게 다룰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웠죠. 그리고 주인공이 게임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을 때, 게임 회사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갈등과 스토리를 담았다면 더욱 재밌었을 것 같아요.

조작 요소를 넣어서 게임화하면 좋겠다고 느꼈던 장면도 있나요?

임: 영화에서 사장이 주인공에게 납기일을 맞출 수 있냐고 묻잖아요? 거기서 그런 상상을 해봤어요. 갑자기 여기서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을 만드는…?

박: 그럼 전 안 할 것 같아요. (웃음)

임: 일터에서도 개발하고 게임 속에서도 개발하는 게임? (웃음) 캐릭터를 조종해서 일상 행동을 시키고 사람들을 만나게 해서 영향을 받게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평론가처럼 밴더스내치의 평점을 매긴다면?

박: 전 5점 만점에 3.5점 주겠습니다. “시도와 연출은 좋았으나 지쳤다.”

임: 저는 실험작으로서 점수를 높게 주겠습니다. 이미 있던 구조지만 영화로 잘 옮겼고, 플레이의 복잡도도 좋았어요. 4점, “이런 실험이 많아야 발전이 있다.”

마지막으로, 밴더스내치를 본 후 인터랙티브 게임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에게 다른 작품을 추천해준다면?

임: 가장 유명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일 것 같아요.

박: 저는 인터랙티브 게임은 아니지만,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를 추천해요. 주인공이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어서, 그 능력을 활용해서 게임을 플레이하죠. 플레이어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맥락이 비슷해서 추천합니다!

좋은 영화, 게임, 미디어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이야깃거리를 불러온다는 것.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보고 난 후에 더욱 생각나고 누군가와 말하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향한 게임 제작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은 작품만큼이나 신선했다. 앞으로도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시도와 이야기를 [컬처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

에디터 클토니: 게임 좋아해요. 게임 회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장인정신 넘치는 게임 유니온, 크래프톤 직원들을 탈탈 털어보려 합니다. 자칭 크래프톤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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