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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모르는 K-게임의 역사

한국 게임을 바라보는 국내 게이머들의 시선은 양가적입니다. 마치 외세에 대항해 물산장려운동을 하던 옛 선조들처럼 응원하다가도, 게임이 기대를 저버리면 싸늘하게 비수를 꽂곤 합니다. 내 믿음과 순정을 짓밟는 게임이 나오면 깡패가 되는 수밖에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과금에 집착한 양산형 뽑기 게임 탓이 큽니다. 특히 모바일 게임 시대에 접어들어 한국 게임 산업의 외형이 커지면서, 돈이 되는 게임에 대한 장르 편중 현상이 심화됐습니다.

그러나 한국 게임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었으며 지금도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게임의 현재를 진단하려면 과거를 알아야 하겠죠. 한국 게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요즘 애들은 모르는 ‘라떼’ 시절 K-게임을 되짚어봤습니다.

1980년대: 국산 콤퓨타 게임의 태동기

최초의 국산 상용 게임은 1987년 발매된 ‘신검의 전설’입니다. 개인용 “콤퓨타”인 ‘애플2’ 전용으로 나온 이 게임은 RPG 장르 게임으로 마왕을 때려잡는 내용으로 구성됐습니다. 개발자 남인환 씨의 1인 개발 게임이며, 요즘 애들은 교과서를 통해 접했을 카세트테이프와 플로피 디스켓이라는 역사 속 저장매체에 담겨 판매됐습니다. 당시 애플 컴퓨터용 게임이자 RPG의 교과서였던 ‘울티마’ 시리즈의 영향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등학생이었던 남인환 씨 혼자서 유통 계약까지 나설 정도로 게임 유통이 열악한 환경이었으니까요.

최초의 국산 상용 게임 ‘신검의 전설’ (이미지 출처. 하드코어게이밍101 사이트)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요. 지금은 흑역사로 남은 ‘형제의 모험’이라는 MSX 컴퓨터 기반의 게임도 같은 해 등장했습니다. ‘슈퍼마리오’ 시리즈를 대놓고 베낀 게임으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한국 게임의 태동기에 나타난 현상 중 하나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K-게임의 흑역사 ‘형제의 모험’. 그 형제가 어떤 형제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이미지 출처. 에뮬레이터게임즈 사이트)

1990~2000년대: 국산 PC 게임 전성기

이처럼 국산 게임의 토대는 “콤퓨타”를 중심으로 형성됐습니다. 당시 콘솔 게임이 발달한 일본이 있었지만, 일본 대중문화가 금기시되던 시절이었고, 라이센스 계약이 필요한 콘솔에 비해 PC는 접근성이 높은 개발 플랫폼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92년 4월, 최초의 국산 IBM-PC 게임인 ‘폭스 레인저’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PC 게임 개발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마니아 장르로 취급되는 슈팅 게임인 ‘폭스 레인저’는 당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약 2만 5천 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슈팅 게임 ‘폭스 레인저’ (이미지 출처. 유튜브 The Rarest Gamer 채널 갈무리)

초창기 한국 게임은 슈팅 게임의 시대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제작 난이도가 쉽다는 이유로 슈팅 게임 제작이 활발히 이뤄졌죠. 이후 전환점이 된 게임이 1994년 7월 발매된 손노리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입니다.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RPG 게임은 괜찮은 그래픽, 한국 정서에 맞는 이야기 등이 맞물리면서 1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개발자가 직접 NPC로 등장해 불법 게임인지 아닌지 묻는 해학과 풍자가 담긴 한국식 개그는, 손노리라는 개발사에 대한 두터운 팬층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식 RPG 맛을 일깨워준 손노리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이미지 출처. 게임 스크린샷 갈무리)

이후 국산 게임은 RPG 시대로 접어듭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도 한 번쯤 들어본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시리즈가 오랜 시간 마니아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손노리 역시 ‘포가튼사가’, ‘악튜러스’ 등 국산 RPG 명가의 명맥을 이어갑니다. 그라비티와 합작한 ‘악튜러스’는 이후 큰 성공을 거둔 MMORPG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토대가 됩니다.

당시 한국 게임의 지형은 다양성과 장르 편중 사이에 있었습니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다가, 대세 게임이 등장하면 해당 장르의 게임이 양산되는 식이죠. 1인 개발자 별바람의 RPG ‘그녀의 기사단’부터 목 위로 사람 얼굴만 있는 화분을 키우는 연애 시뮬레이션 ‘토막: 지구를 지켜라’까지 다양한 실험작들이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충격적인 실험작 ‘토막: 지구를 지켜라’ (이미지 출처. 씨드나인)

RPG 중심 지형에서 판도가 변한 건 1998년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입니다. ‘스타’ 이전에도 ‘워크래프트’, ‘듄’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한국식 ‘스까’ RTS 게임이 나오긴 했습니다. ‘광개토대왕’, ‘임진록’, ‘충무공전’ 등 영웅 서사와 역사물을 섞은 국산 RTS 게임들이 나름의 성취를 이뤘죠.

‘스타크래프트’ 등장 이후 국산 스킨을 입힌 RTS 게임이 성행했는데, 이 중 판타그램의 ‘킹덤 언더 파이어’는 ‘워크래프트2’ 짭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나름의 독자성을 구축하며 시리즈를 이어나갔습니다. 2010년 출시를 예고했던 ‘킹덤 언더 파이어2’가 지난해 스팀으로 정식 출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2000년~2010년대: 대세는 온라인, 산업이 된 게임

2000년대 이후 게임의 대세는 온라인으로 넘어갑니다. 특히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이 씨앗을 심은 MMORPG가 범람하게 되죠. 이때부터 게임은 하나의 산업군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현재 한국 게임 대부분이 비즈니스 모델로 가져가는 부분 유료화도 2001년 처음 도입됩니다. 넥슨의 캐주얼 게임 ‘퀴즈퀴즈’가 최초로 유료 아이템을 적용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후 2010년대 스마트폰이 들어오면 모바일 게임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네, 요즘 애들이 익숙한 한국 게임의 현재 모습입니다. 앞으로도 게임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커진 한국 게임 시장의 규모만큼 더욱 다양한 게임이 나올 것입니다. 양산형으로 불리는 특정 장르에 대한 편중 현상이 아쉽지만, 배틀로얄 장르를 대중화시킨 ‘배그’처럼 새로운 시도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요? 시장은 대세를 따릅니다. 개발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게임을 찾고 소비하는 게이머들의 안목이 결국 시장을 만듭니다. K-게임의 역사는 다시 흐릅니다.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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