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로운 게임이 쏟아지는 요즘, 오래된 게임을 계속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몇 년 동안 한 게임을 플레이하면 질릴 만도 한데, 어떤 이유로 계속하는 걸까? 게임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그 감동적인(?) 사연을 들어 봤다.
‘와우’는 저의 삶 그 자체거든요
원래 게임을 좋아해서 신작이 나오면 다 플레이해보는 스타일이에요. 그중에서도 MMORPG 장르를 좋아했고, ‘아이온’, ‘블레이드 & 소울’, ‘아키에이지’ 등을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왔죠. 그러던 중, 대학 친구가 MMORPG는 와우 만한 게 없다고 해서 2013년 초겨울에 시작했어요. 당시는 롤의 시대였어요. 와우는 ‘판다리아의 안개’라는 확장팩이 나온 때였고, 유저들이 줄고 있었죠.
‘워크래프트3’를 플레이했기 때문에 와우의 세계관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처음 플레이했을 때 모르는 게 많아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죠.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만렙을 찍었어요. 그리고 ‘와우는 만렙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죠. 당시 유행하는 게임과는 다르게 호흡이 느렸지만, 시간을 들여 캐릭터를 육성하는 맛 때문에 서서히 와우에 스며들었습니다.
특히 와우는 새로운 확장팩이나 레이드, 던전을 다 소비했을 때 귀신같이 새로운 패치가 나오더라고요. 콘텐츠가 계속 업데이트돼서 접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한창 빠져서 오그리마 공성전, 높은 망치 레이드 때는 공대장 역할을 했고, 순위권에도 잠깐 있었습니다. 군단 확장 팩 시절 처음으로 ‘쐐기 던전’ 이라는 시스템이 나왔을 때, 15단 이상 클리어 업적이 한국 수양 사제 중에서 100등 안쪽이었어요.
제게 처음 와우를 권했던 친구와 길드를 만들었는데, 친구의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 규모가 커졌어요. 지금까지도 함께 플레이하는데,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친구들을 아제로스에서는 자주 만날 수 있죠. 일종의 메신저 역할도 하는 셈이에요.
지금 유저가 더 줄어서 아쉽지만 한 편으로 이해도 돼요. 워낙 오래된 게임이고, MMORPG 장르의 어법이 요즘 시류와 맞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으니까요. 그래도 블리자드에서 새로운 확장팩에 로그라이크 장르 형식을 차용하는 등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죠. 자꾸 두뇌 풀가동해서 와우를 홍보하게 되네요. (웃음) 재밌으니까 제발 많이 해줬으면…
관성 때문에 플레이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제게 와우의 대체제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와우는 제게 단순한 게임이 아닌, 함께하는 사람들과 그 추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다른 게임이 삶에서 가끔 일어나는 재밌는 사건이라면, 와우는 삶 그 자체랄까?
31세, 지누
같은 콘텐츠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영원히 ‘마비노기’
2005년, 수능이 끝나고 마비노기를 시작했어요.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했죠. 피시방 가서 함께 사냥하고 옷 만들고 염색하면서 꽁냥꽁냥했는데… 헤어진 이후에도 저는 마비노기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웃음)
21살에 군대에 갔는데, 그때가 마비노기의 폭망기(?)라고 하더라고요. 엘프와 자이언트 종족이 추가된 시기. 근데 저는 군인이라서 그것마저도 너무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휴가 나왔을 때 마비노기를 플레이하는 게 저의 유일한 낙이였죠. 취업한 직후에는 바빠서 조금 뜸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플레이 타임이 2만 시간이 넘었는데, 1만 시간의 법칙처럼 뭔가 성공했으려나요? (웃음)
마비노기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라서 늘 뿌듯했어요. 옷을 만들려면 거미줄을 주워서 실을 만들고 천을 짜고, 공정을 하고… 뿌듯함에 중독됐죠. 특히 20대 초반은 현실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시기잖아요. 한창 플레이하던 때의 저는 꿈도 취미도 없이 알바만 했었어요. 그런데 한 달 전기세와 정액제 요금 2만 원만 있으면 성취감,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누릴 수 있었죠. 당시 길드원들도 다 20대였어요. 이제는 시간이 흘러 길마 형은 40대가 되었네요.
지금까지 플레이하게 된 이유는 길드 때문인 것 같아요. 길드원들과는 15년 되었는데, 꾸준히 오프라인 모임을 하며 진짜 친구가 되었어요. 길드에서 부부도 탄생했는데, 결혼식 날 제가 문화상품권으로 10만 원을 넣어드렸던 게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만나면 술 마시고 2차로 피시방 가서 다 같이 마비노기 던전 돌아요.
사실 유저도 많이 줄었고, 더 이상 수련을 하거나 강해질 필요가 없는 상태라서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플레이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제 게임이 메신저화 되어서 사람들 만나러 들어가죠. 이모티콘 대신 내가 직접 캐릭터 꾸미고 움직일 수 있는 메신저 느낌? 게임 켜 놓고 앉아 있거나 춤추는 모션 해 놓으면 길드원들이 하나둘 들어와서 수다 떨다 나가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아요. 현실 친구들과도 이렇게 오래 가기 쉽지 않은데, 같은 콘텐츠를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센지 알 수 있죠. 35세, 연어꼬리
이제는 취미가 된 어릴 적 꿈,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2002년에 처음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접했어요. 그때 제가 고2였는데, 장래 희망이 파일럿이었죠. 꿈꿨던 직업을 게임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에 꽂혀서 CD를 구입했습니다. 당시 버전은 키보드와 마우스로 조작하는 것이었는데, 지금만큼 느낌이 살지 않았지만 비행기가 뜨는 개념 정도는 익히기 좋았어요. 나름대로 매뉴얼도 있어서 많이 찾아봤죠.
특수성을 지닌 마이너 게임이라 주변에 함께 하는 친구가 없었어요. 대신 항덕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많이 얻었죠. 진입 장벽이 다소 높은 게임이라서 처음 시작할 때 공부를 많이 해야 했어요. 그 후 X 버전 출시돼서 또 플레이하고, 이번에 2020 버전이 출시돼서 새로 조이스틱 장비도 장만했습니다.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현실감 있는 그래픽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공항과 주변 지역들은 실사 같고, 비행할 때 버드 스트라이크나 번개도 종종 등장하죠. 게임에서 비행 시작하면 실제 비행 시만큼 걸립니다. 진짜 비행기를 조종하는 느낌을 받아요. 요즘처럼 비행기 못 타고 해외여행 못 갈 때, 그랜드 캐니언 같은 곳에 날아가면 대리 만족할 수 있죠. 장관이 눈 앞에 펼쳐져서 힐링 게임처럼 즐길 수 있어요. 이런 현실감 때문에 덕후들은 옷 차려입고 게임하고, 자동 모드 걸어 두고 기내식 먹기도 하더라고요. (웃음)
대신 집중력과 피지컬,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게임이라 저처럼 가정이 있다면 자주 플레이하지는 못합니다. 2020 버전을 지금까지 딱 4번 띄워봤네요… 그중 두 번은 딸과 함께 했는데, 비행기 날리는 장면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을 시점 변경으로 보여줬어요. 신기해하더라고요. 10분 동안 세팅해서 비행기 겨우 올려놨더니 딸이 20초 만에 추락시킨 적도… 만약 나중에 딸이 더 커서 게임 해보고 싶다고 하면 자리를 내줄 의향도 있습니다. 물론 저도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되면 멈추지 않고 계속할 거예요.
하늘을 떠다니는 비행기가 어떤 원리로 뜨는지 호기심으로 게임을 시작한 유저로서, 방구석 파일럿이지만 그 기분은 최고조로 느낄 수 있어요. 지금은 꿈꿨던 파일럿이 아닌 평범한 마케터로 살고 있지만, 게임을 통해 어릴 적 꿈과 계속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36세, 하늘을나는곰
게임 속에는 누군가의 시간, 꿈, 친구들이 담겨 있다. ‘재미’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상 속에 스며들어 누군가의 삶의 요소가 된 게임. 앞으로도 게임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컬처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