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입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는 우리네 삶처럼 게임에도 흥망성쇠가 있죠. 특히 온라인 기반의 게임들은 서비스 운영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헤어진 연인처럼 가슴 한구석에 미련으로 남게 됩니다. 그때 그 시절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제는 가슴 속 별이 돼버린 ‘라떼’ 시절 게임들을 한번 헤아려보려 합니다.
큐플레이(구 퀴즈퀴즈)
‘큐플레이’는 2000년대 초반 향수를 자극하는 게임입니다. 1999년 처음 출시된 이 게임은 아바타와 커뮤니티 요소를 바탕으로 간단한 퀴즈 게임을 덧붙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아재의 길로 들어선 분들에겐 ‘퀴즈퀴즈’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죠. OX 게임류와 연상 퀴즈, 타자 연습을 응용한 생존 게임 ‘서바이벌 올라타자’ 등이 인기였습니다.
‘큐플레이’는 초창기 온라인 게임인 만큼 다양한 최초 기록을 갖고 있는데요. 특히, 2001년 7월 세계 최초로 부분 유료화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금과 같은 ‘캐시템’ 과금 모델의 시조새인 셈이죠. 서비스 초창기인 1999년에는 2000년 대입 수능 문제 중 24문제를 적중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서비스의 발목을 잡은 건 자동 매크로입니다. 2003년 ‘큐플레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개편한 이후 지속해서 인기를 끌었지만, 게임의 기본인 공정한 경쟁이 무너지면서 유저들이 이탈하게 됐습니다. 자동 매크로를 돌리며 스피드 퀴즈를 푸는 유저를 인간 유저가 따라잡을 수 없었고 게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죠. 퀴즈 대전이 아닌 매크로 대전이 된 셈입니다. 결국 2015년 12월 31일 ‘큐플레이’는 문을 닫게 됩니다.
팡야
‘팡야’는 골프의 대중화에 기여한 온라인 골프 게임입니다.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설정과 귀여운 그래픽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골프의 진입 장벽을 낮췄죠. 토마호크, 스파이크, 코브라 등 만화 같은 샷들이 게임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2004년 시작된 게임은 PC를 비롯해 콘솔과 모바일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문제는 계산기처럼 정확한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흔히 축구를 두고 ‘공은 둥글다’라고 얘기합니다. 다양한 변수 속에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죠. 스포츠 게임의 재미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팡야는 바람, 공의 기울기, 각도, 거리, 높이 등 게임 속 변수들을 모두 수치화해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캐주얼한 분위기에 속아 게임을 접한 이용자들은 각도기와 계산기까지 동원해 삼각함수를 계산해 공을 치는 고인물들에게 가로막혀 게임을 접곤 했습니다. 지금도 ‘팡야’가 포병 양성에 기여했다는 밈이 돌 정도입니다. 급기야는 계산 프로그램까지 등장했죠. 유저 진입 장벽이 생기면서 ‘팡야’는 국내에서 2016년 서비스가 종료됐습니다. 아마 이때 ‘팡야’를 하던 이용자층 상당수가 실제 필드에서 골프를 치는 ‘어른이’가 되지 않았을까요. 현재 ‘팡야’는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 중입니다.
SD건담 캡슐파이터
‘SD건담 캡슐파이터’, 이른바 ‘캡파’는 ‘건담’ IP(지식재산권) 온라인 게임은 반드시 망한다는 공식을 깬 액션 TPS 게임입니다. ‘창세기전’ 시리즈로 유명한 소프트맥스가 개발해 화제를 모았죠. 특히, 캡슐파이터라는 저연령층을 겨냥한듯한 이름과 다르게 하드코어한 게임성이 두터운 팬층을 만들었습니다. 무기를 바꾸며 대시를 해 딜레이를 줄이는 ‘대시스왑’ 등 각종 버그성 기술들이 독특한 조작감을 만들어내면서 오히려 게임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고인물 게임이 돼버리기도 했죠.
출시 초반, 건담 기반 온라인 대전 액션 게임이라는 점에서 캡파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묵찌빠 시스템으로 불리는 근접, 중거리, 원거리 기체간 서로 잡고 잡아 먹히는 상성이 밸런스를 어느 정도 맞춰줬고, 지속해서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건담과 기체들이 건담 마니아를 비롯해 다양한 유저층을 게임에 끌어들였죠.
하지만 강제 종료 현상을 비롯한 각종 버그들과 무너진 밸런스, 낡은 그래픽 엔진 등이 문제가 되고, 철저히 약육강식의 게임 플레이 문화가 신규 유저 유입을 가로막으면서 지속적인 게임 운영에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또 새로운 건담 IP의 온라인 게임이 등장하면서 2007년 시작된 게임은 2015년 약 8년간 서비스를 마치고 캡슐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야생의 땅: 듀랑고
지난해 12월 서비스 종료된 ‘야생의 땅: 듀랑고’는 국내 게이머에게 아픈 손가락으로 남은 게임입니다. 야생의 섬을 개척하는 독특한 컨셉의 모바일 MMORPG로 큰 과금 요소 없이 즐길 수 있어 사랑받았지만, 출시 2년여 만에 운명을 달리했기 때문이죠.
2018년 1월 출시 초기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야생에서 재료를 채집해 자신만의 사유지를 꾸려나가는 재미가 이용자들을 끌어모았습니다. 게임 출시 첫해에는 듀랑고 IP를 활용한 MBC 예능 프로그램 ‘두니아: 처음 만난 세계’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해당 예능에는 최근 유튜브 스타로 떠오른 ‘인성 문제없는’ 이근 대위가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출시 초기 서버 문제, 각종 버그, 사유지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채집과 재료 제작을 요구하는 반복 노동, 솔로 플레이가 어려운 부족 시스템, 모바일 게임에 맞지 않는 장시간 게임 플레이 등이 쌓여 결국 어른들의 사정으로 ‘듀랑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듀랑고’ 개발진은 이용자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서비스 종료 이후에도 제한된 싱글 플레이가 가능한 ‘창작섬’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유종의 미를 거뒀습니다.
이밖에 트릭스터, 요구르팅, 포트리스 2 등 우리의 추억 속에 아직 살아 숨쉬는 게임들이 많은데요. 온라인 게임은 함께 했던 친구, 다른 이용자들과의 유대 경험을 바탕으로 이용자 개개인에게 저마다의 서사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특별하게 남죠.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게임도 서비스 종료를 발판으로 더 나은 게임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추억은 게임 서비스 종료와 함께 서서히 잊히지만, 우리는 그 추억을 자양분 삼아 현재를 살아가는 거 아닐까요.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