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게임사에서 만든다,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나요? 이 말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립니다. 게임이라는 콘텐츠는 영화와 같은 시청각 콘텐츠들과 달리 인터랙티브(상호작용) 그 자체가 핵심이기 때문이죠. 모든 게임 제작이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누군가 플레이하지 않는 게임은 계속해서 미완성 상태입니다. 오히려 유저들이 실질적인 게임의 완성을 한 사례들도 있는데요. 게임사는 거들 뿐! 게임 제작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갓유저’들을 보유한 게임들이죠. 오늘은 이렇게 유저들 덕분에 대박 난 게임을 알아보겠습니다.
유저들이 만드는 세상
마인크래프트
마인크래프트는 유저들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며 콘텐츠의 진수를 보여주는 게임입니다. 모든 것이 네모난 블록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생존하며, 정해진 목표 없이 다양한 놀이를 하는 전형적인 샌드박스 게임인데요. 자유롭게 무엇을 만들 수 있는 모래 상자라는 뜻의 ‘샌드박스 게임’은 유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유저들이 게임을 완성한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특히 마인크래프트는 모든 플랫폼에서 2억 장 이상 판매되며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요. 마인크래프트의 위대함은 단순히 높은 판매량에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유저들이 만들어 낸 2차 창작물들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죠. 공들여 만든 맵부터,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상물들까지 다양합니다.
심지어 언론의 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제작한 ‘검열 없는 도서관’이라는 맵에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들이 원문으로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당한 검열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아 게임 속에 이런 공간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고인물의 세계
롤러코스터 타이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타이쿤(경영) 게임인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재밌는 놀이동산을 만들어 많은 손님을 끌어모으는 것이 목표인 게임입니다. 꽤 오래전 출시된 게임이지만 굉장히 심오한 게임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요. 유저들이 직접 놀이 기구를 디자인할 수 있는데, 이 설계 시스템이 매우 정교합니다. 멋진 자연환경,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 아기자기한 주변 장식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관람객들의 행복도가 올라갑니다.
유튜브에서 ‘롤러코스터 타이쿤 고인물’, ‘RCT Best Rollercoaster’ 등의 검색어로 검색해보면 수많은 유저의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창의적인 공간이 가득 펼쳐지기 때문에 이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합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게임
시뮬레이터 시리즈
거친 엔진음을 들으며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로망이 있나요? ‘트럭 시뮬레이터 시리즈’는 이런 올드 스쿨 감성을 충족해주는 훌륭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트럭을 운전해서 화물을 운송하는 미션을 달성하는 아주 단순한 게임인데요. 트럭을 운전하는 느낌이 현실과 매우 유사해 레이싱 게임이 아닌 ‘시뮬레이터’라는 별도의 장르로 불립니다.
유저들은 단순히 키보드나 마우스, 게임패드로만 게임을 즐기지 않습니다. 핸들을 만들고 모니터를 이어 붙여서 마치 실제 트럭 안에서 운전하는 것처럼 방을 꾸미죠. 게임사에서 구현한 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그래픽을 업그레이드하고 맵을 확장하기도 합니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도 최근 신작을 발표했는데요. 이 게임도 역시 유저들이 대미를 장식했죠. 실제 파일럿들은 비행기 콕핏을 집 안에 똑같이 만들어 게임을 플레이했습니다. 미국 방방곡곡을 비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큰 화제가 되었죠.
모드의, 모드에 의한, 모드를 위한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 GTA 시리즈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가 개발한 RPG 게임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5번째 작품인 ‘스카이림’은 방대한 세계관과 정교한 게임성, 높은 자유도로 전 세계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임입니다. 게임 자체도 뛰어나지만, 스카이림은 유저들이 직접 제작해 배포한 ‘모드(MOD)’ 덕분에 유명해졌는데요.
모드란 기존 게임 요소를 변형해 만든 2차 창작 콘텐츠를 뜻합니다. 사실 엘더스크롤 시리즈와 폴아웃 시리즈 같은 베데스다의 게임들은 높은 확장성(이라고 포장하고 유저들이 답답해서 대신 만들어주는 게임)으로 유명하죠. 확장성이 좋은 특징 때문에 버그도 많은 편인데, 게임사에서는 이를 위해 소스 공개 수준에 가까운 모드킷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유저들이 버그를 고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게임을 업데이트해 주기를 유도하는 것이죠.
놀라운 점은, 이렇게 유저들이 하나하나 만든 모드들이 쌓여 이제는 새로운 게임 확장팩 수준에 이르는 패치 양이 되었다는 것인데요. 저장과 불러오기를 안정화하는 모드부터, 미니맵 정보를 더 상세히 표시해주는 모드, NPC들이 죽지 않게 숨도록 해주는 인공지능 모드, 그래픽 자체를 현실적으로 업그레이드해주는 리마스터 모드까지 정말 다양한 종류의 모드들이 있죠.
락스타 게임즈의 GTA 시리즈도 모드로 유명한 게임인데요. 이 게임이 1억 장 이상 팔리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모드 때문이죠. 단순히 게임사에서 제공한 스토리 모드만 즐긴다면 1주일이면 끝날 게임을, 유저들은 모드를 이용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며 계속 플레이합니다.
스카이림이나 GTA 시리즈를 포함한 대다수의 게임 모드는 수익 문제, 저작권 관련 문제에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인데요. 비영리적으로 재미를 위해 이용해야 함은 물론이고, 다른 콘텐츠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모드를 제작하고 이용해야 합니다. 게임사에서도 저작권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고, 모드 제작자들에 대한 수익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활발한 논의가 계속되어 올바르고 좋은 방향으로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게임 외에도 유저들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게임들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그라운드’도 ‘워크래프트’의 유저 제작 맵인 ‘도타나’, ‘아르마 2’의 인기 모드인 ‘DayZ’를 기반으로 발전했죠. 최근에는 ‘도타’에서 새로 파생된 오토체스류의 게임들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재밌는 게임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게이머들의 열정, 이 열정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더욱 발전한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장금호 인벤 PD k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