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매일 치킨을 먹는 사람이라도 겜린이 시절은 있다. ‘내가 몰라서’라는 말이 만능은 아니지만 초보 시절 정말 잘 몰라서 악의 없이 빌런짓을 했던 썰을 모았다.
아이템 먹튀? 정말 몰랐어요!
같이 아이템 파밍하는데, 먹고 튀는 놈들 정말 싫으시죠? 제가 그랬습니다. 미리 죄송합니다. ‘디아블로3’를 막 시작해서 의욕 넘치게 아이템을 모으는 시기였어요.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잊힌영혼’이라는 재료를 모으기 위해 일명 ‘잊영버스’에 참여했어요. ’잊영버스’는 ‘버스 기사’라고 불리는 제일 강한 플레이어가 혼자 ‘대균열’에 가서 대균열 보스몹을 잡고, 이후에 아이템을 나누는 방식인데요. 나머지 사람들은 마을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버스 기사’님이 보스몹을 잡은 후에 부르면 기사님이 있는 장소로 이동해요. 가보면 좋은 전설 아이템이나 셋트 아이템이 많이 떨어져 있죠.
그런데 사람마다 보이는 아이템이 다르고, 본인만 아이템을 먹을 수 있게 되어있거든요. 그래서 양심적으로 필요한 아이템만 챙기고 필요 없는 아이템은 ‘버스 기사’에게 주는 것이 룰이에요. 내가 무슨 아이템을 먹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 방법이 없어서 양심껏 행동하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처음 뭣 모르고 얼떨결에 버스에 탄 저는 나온 아이템을 몽땅 혼자 다 먹었어요. 버스 기사 역할을 한 플레이어에게 왜 필요 없는 아이템 안 주냐고 혼나고 나서야 제가 똥매너였다는 걸 알았죠. 지금도 제가 누군가를 버스 태워줄 만큼의 실력은 안되지만, 고마운 버스 기사님께 아이템을 잘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버스 태워 주시는 분들 늘 감사합니다. 김개미, 33세
현피를 부르는 돌격! 돌격!
저는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게임 할 때 의욕이 앞서는 스타일은 욕먹기 쉽더라고요. 어릴 때는 ‘스톤에이지’를 했어요. 스톤에이지에서 사냥을 할 때는 파티원 간의 협동이 중요했어요. 턴이 오면 사냥할 몹을 선택하고 다 같이 사냥해야 성공할 수 있거든요. 문제는 의욕만 앞섰던 어린 저는 어떤 몹을 먼저 쳐야 할지 몰랐어요. 처음 가는 사냥터에서 선공해야 하는 몹이 있었는데 무작정 눈에 띄는 몹에게 돌진해서 사냥을 망친 적이 있어요. 지금이면 바로 욕이 날라왔겠지만, 당시는 다들 인심 좋고 마음 좋고 그럴 때라 그런지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셨어요. 하지만 돌격하는 버릇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처음 플레이할 때도 이어졌어요.
롤에서 초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본인이 초보인 걸 모른다는 거예요. 저도 초반에 앞만 보고 돌진하다 보니 많이 죽었죠. 돌진하고, 죽고, 상대 팀 캐릭터는 쑥쑥 크는 걸 반복해서 같은 팀에게 부모님 안부를 여러 번 들었어요. 요즘 친구들은 ‘싸지’라는 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현피’와 같은 뜻인 거 같은데, 저는 차단하고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게임에 익숙해져서 욕먹을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아요. 얼마 전에는 서포터 캐릭터인 ‘쓰레쉬’로 원거리 딜러 라인에 간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팀원들이 미친 거 아니냐고 했지만, 의외로 너무 잘해서 마지막에는 같이 웃고 즐겼어요. 게임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빌런 짓을 할 때도 있고 당할 때도 있는데, 너무 욕하기보다는 조금 유하게 넘어가 주면 서로 좋을 거 같아요. 재밌으려고 하는 게임인데 화내면 좋을 거 없잖아요! 따봉, 29세
의문의 물음표 살인마
초등학교 5학년 때 ‘메이플스토리’를 시작했어요. 당시 서버 1위인 분의 캐릭터가 궁수였거든요. 그래서 궁수가 괜히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궁수를 해야 게임에 유리할 거 같기도 하고, 이게 대세구나 싶어서 저도 궁수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막상 게임을 시작하니 어떻게 하는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스탯 포인트와 스킬 포인트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포인트를 올릴 수 있는지도 몰랐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웠으니, 서버 1위인 분에게 물어봤죠. ‘스탯 포인트는 어떻게 올려요?’, ‘이 아이템은 어디에 쓰는 거예요?’, ‘아이템 찾으려면 어디로 가요?’. 물음표살인마가 되어 끊임없이 귓속말을 보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분은 그냥 읽씹해주셨어요.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다른 플레이어들을 귀찮게 한 것 같아요. 메이플스토리에는 사냥터 자리 매너가 있어요. 채널마다 맵이 있는데, 언제나 먼저 온 사람이 암묵적으로 그 자리의 주인이 되는 거죠. 자리의 주인 있는 맵에서 사냥을 하면 ‘스틸범’이라고 불려요. 그런데 전 그걸 모르고 먼저 사냥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옆에서 같이 사냥했어요. 혼자 하면 심심하니까 같이 하면 좋은 줄 알았거든요. 처음에는 제가 사냥을 시작하면 원래 있던 분이 자리를 옮기시길래 속으로 ‘아 가나보다~’했어요. 실은 싸우기 싫어서 그분들이 옮겨준 건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죠. 그러다 욕 한 바가지 먹고 그게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알았어요. 그때 저 때문에 귀찮았던 분들 죄송합니다. 저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해서 지금은 레벨 234 플레이어가 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메이플스토리는 사랑이에요. 박해주, 29세
게임은 욕 먹으면서 배우는 거 맞나요?
저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처음 플레이할 때 비매너 소리를 몇 번 들었어요. 이전에 비슷한 게임인 ‘카오스’를 이미 해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익숙했거든요. 정글을 돌며 사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몬스터를 잘 잡게 생긴 험악한 모습의 소 캐릭터를 선택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욕을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가 고른 ‘알리스타’는 서포터 챔피언이라 당연히 서포터를 할 줄 알았는데 정글을 도니 트롤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한 바탕 욕을 먹고 ‘그럼 서포터를 가야겠군!’하면서 내려갔는데 상대 팀의 서포터가 ‘미니언’을 때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쟤를 때리면 되는구나?’하고 신나게 ‘미니언’을 때리고 돈을 챙겼어요. 그런데 그건 상대가 ‘타곤산(서포트 아이템으로 미니언을 치면 주변 아군 한 명에게 자신이 얻은 골드와 동일한 골드를 준다)’이라는 아이템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했던 거고, 저는 우리 팀의 돈을 뺏고 있었던 거였어요. 그렇게 저는 사냥을 방해하고 내려와서 아군의 돈을 뺏는 빌런으로 낙인 찍혀 푸짐하게 욕을 먹은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에는 ‘이번에는 확실하게 정글이야!’라고 생각하며 ‘니달리’로 캐릭터를 바꿔서 정글에 갔어요. 순조롭게 성장해 가던 저는 두 번째 ‘블루 몬스터(일종의 스킬 게이지인 ‘마나’를 재공급 해주는 버프 몬스터)’는 ‘미드라이너(일반적으로 게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에게 양보하는 게 국룰이라는 걸 몰랐어요. 기분 좋게 ‘블루 몬스터’를 먹었는데 ‘미드라이너’가 뭐 하는 거냐고 화를 내더라고요. 게임은 결국 패배로 끝났죠. 승부욕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게임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오락이 아닌 것 같아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거라 팀의 승리를 위한 암묵적인 룰 같은 게 많죠. 문제는 초보자들은 그런 룰을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에요. 게임이든 직장이든 경력자만 원하면 초보자는 어디서 경험을 쌓겠어요? 네?! 게임은 욕먹으면서 배우는 거라는 말도 있지만, 너무 많이 욕을 먹으면 가슴이 아프잖아요. 우찐, 32세
파티원들에게 욕을 먹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들에게 배우기도 하며 보낸 겜린이 시절.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팀에 승리를 가져오는 게이머로 성장할 수도 없었을 거다. 처음은 미숙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매너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크래프톤은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의 게임 이야기를 [컬처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