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으로 불렸던 게임이지만 나에게만은 갓겜이었다!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들에게 ‘이건 정말 나만 해본 것 같은’ 게임을 물었다.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연식이 좀 된 소소한 게임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조선협객전
‘조선협객전’은 초딩 시절 최애 게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임이지만, 당시 저희 동네(경북 구미)에서는 굉장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지나가는 유저에게 어디 사람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구미 사람이라고 대답했죠. 당시 구미 PC방 점유율은 스타크래프트와 조선협객전이 5:5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포털사이트에 ‘조선협객전 구미’라고 검색하면 비슷한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아직도 궁금한 인생 미스터리 중 하나에요.
레벨 300까지만 무료여서 301을 찍는 순간 다른 캐릭터로 갈아탔어요. 검객, 궁수, 도사, 승려 네 캐릭터를 전부 키웠죠. 사냥이 주 콘텐츠였고 중간중간 퀘스트가 있었어요. 조선 시대 배경이라 NPC가 춘향, 향단, 이몽룡 같은 캐릭터였습니다. 그 후 레벨 301에서 막히는 게 싫어서 게임을 접었는데요. 1~2년 뒤에 다시 접속했었어요. 몇 분 플레이 안 했는데 도자기 아이템이 나오길래(!) 바로 저잣거리에 팔러 갔으나… 50만 냥만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왜 이렇게 시세가 떨어졌지? 하면서 실망감에 다시 게임을 접었던 기억이 나네요. 30세, 김준호
파병 온라인
게임은 알다시피 피지컬 승부입니다. 저는 옛날부터 피지컬이 안 좋았거든요. 친구들과 유행하는 게임을 같이 하면 맨날 져서 스트레스받았어요. 그래서 남들이 잘 안 하는 게임만 골라서 했습니다. ‘파병 온라인’은 그중 하나인데요.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유일한 온라인 게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콘셉트가 독특하고, 특유의 암울하고 마이너한 감성이 저랑 잘 맞았어요. 처음 시작하면 진영을 어떤 나라로 할지 골라야 하고, 실제 베트남전 고증이 되어 있어서 나오는 무기들이 엄청 후졌던(?) 기억이 있네요. 32세, 박태욱
씰온라인
‘씰온라인’은 제가 중3~고1 때까지 한창 플레이한 게임입니다. 당시에는 꽤 인기 있었어요. 밝고 유쾌한 느낌의 MMORPG라서 색달랐죠. 캐릭터도 귀여웠고요. 몬스터도 징그럽지 않았어요. 토끼, 아프로 머리를 한 나무, 모자 쓴 선인장… 이런 것들이 많았거든요. 제가 제일 갖고 싶었던 탑티어 아이템은 용삐글(용사 삐야의 글러브)이었습니다. 귀엽지 않나요? 삐야가 주는 글러브라니… 그리고 카툰 렌더링이나 콤보 시스템(박자에 맞춰 키를 조합해 누르면 연속기가 나감)도 참신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유저가 많이 줄고, 고인물 게임이 되어 아쉽네요. 33세, 귀여운얼굴에그렇지못한태도
피자 웜
99년? 2000년? ‘피자 웜’은 제가 초등학생 때 플레이한 게임이에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PC 구매했을 때 프로그램 설치해주시는 기사님이 불법으로 깔아 주신 것 같습니다. 그때는 다 그렇게 서비스로 게임 설치해 주셨잖아요? (웃음)
롤은 한 판 하려면 30~40분 정도 걸리는데, 피자 웜은 플레이 시간이 길어봤자 5분이에요. 지렁이가 피자를 먹을 때마다 “냠냠” “냠~” “꺼ㅡ억” 하는 1차원적인 효과음을 내는데요. 이 사운드가 은근 듣기 좋았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인 게임입니다. 최고 기록 깨고 싶어서 밤새 플레이했던 기억이 있네요. 지렁이 조종에 몰입하다 보면 잡생각(수학 익힘책 숙제 or 구몬 등)이 끼어들 틈이 없었죠. 33세, 호시조라
게임 에버랜드
‘게임 에버랜드’는 친누나 두 명이 플레이해서 저도 따라 한 게임이에요. 아바타 꾸미기 게임의 원조(?)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 에버랜드가 게임의 배경이에요. 캐릭터를 꾸미는 요소와 미니 게임이 많았고, 유료화가 되기 전까지는 정말 인기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죠. 게임에 레벨이 있었는데, 레벨이 높아지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닐 수 있었어요.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던 기억이 나네요. 필드에 생성되는 쓰레기를 줍고 다니면 레벨이 오르는 것도 있어서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친환경 게임이네요. 29세, 이성호
페이퍼맨
친오빠랑 같이 ‘페이퍼맨’을 플레이했어요. 다른 총 게임은 잔인하고 분위기가 무거운데, 페이퍼맨은 종이 인형 캐릭터가 나와서 그런지 귀엽고 웃겼어요. 종이 인형들이라서 총을 맞으면 피를 흘리는 대신 몸이 뚫렸던 거로 기억해요. 종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총알도 피할 수 있었어요. 생선 폭탄이나 수박 폭탄처럼 무기도 귀여워서 한때 빠져 했던 것 같아요. 26세, 뽀야미
고고시
‘고고시’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시장 바닥으로 가자! 시내로 가자!’ 정도가 될 것 같아요. 2002년 월드컵 전에 나온 걸로 기억해요. 고고시는 당시 유일한 채팅 기반 커뮤니티 게임이었어요. 게임에 체류한 시간만큼 레벨이 올라가고, 고레벨 유저들은 시에 오래 머물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아바타를 꾸몄죠. 킬링 타임 게임, 힐링 게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특이하게 스탯이 IQ, EQ, HQ, SQ 같은 사회성 지수로 구성되었어요. 돌이켜보니 도시로 모이자는 커뮤니티 게임 콘셉트에 진심이었던 것 같네요. 경상도 촌 동네에 살던 저에게는 나름 시티-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창구였습니다.
그리고 킥보드 게임이 기억에 남는데요. 시외로 킥보드를 타고 맵을 달릴 수 있었어요. 여러 유저가 모여서 달리는 거라 경쟁심도 생겼죠. 이기면 ‘시드’라고 하는 게임 머니도 획득할 수 있었고요. 게임 머니로 옷 사서 꾸미는 게 나름 재밌었습니다. 게임 머니를 획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는데, 저는 레이싱만 고집해서 가난했던 것 같아요. 다른 유저들에게 돈 좀 달라고 구걸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30세, 김준호
세상에 게임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다양했다니! 옛날 게임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은 획일화된 게임 시장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마이너한 갬성과 특이성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작은 게임들! 2021년에는 이런 게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게임 속 이야기를 [컬처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