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FTON

보드게임 마스터, 모바일 게임 마스터를 꿈꾸다

보드게임 덕후에서 대한민국 1세대 보드게임 작가로, 그리고 크래프톤 블루홀스튜디오의 게임 디자이너로? 아주 특별한 이력을 지닌 김건희 님을 만났다. 그는 대체 왜 블루홀스튜디오의 게임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그에게 보드게임과 모바일 게임에 대해 질문했다.

안녕하세요 건희 님, 독자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크래프톤 블루홀스튜디오에서 게임 디자인 담당하는 김건희입니다. 모바일 게임을 기획하고 있어요.

건희 님 이력이 특별해요. 2003년부터 보드게임 작가로 활동한 대한민국 1세대 보드게임 마스터인데.
국내 보드게임 시장 역사가 짧아요. 제가 나이가 아주 많지는 않은데 1세대네요. (웃음) 원래 제 꿈은 만화가였어요. 대학에서 생활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실기를 배웠는데, 막상 해보니까 재미가 없는 거예요. 먹고 살길 찾으려고 학교의 벤처 센터에 입주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죠. 그중 하나가 보드게임방 프랜차이즈였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 보드게임방이 유행이었거든요.

그런데 시장 조사해보고 결국 접었어요. 당시 보드게임방이 PC방보다 전망이 안 좋더라고요. (웃음) 그 후 보드게임과 아무 상관 없는 투자 자문사에 취업했어요. 7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죠.
 
직장생활 하다가 그만두시고 보드게임의 길을 가신 건가요?
그때 제가 35살이었어요. 지금 하는 일에 뼈를 묻을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죠. 초등학생 때부터 보드게임을 좋아했거든요. 보드게임 덕후였죠. 문방구에서 천 원 이천 원에 파는 ‘졸리’ 게임이라는 게 있었는데, 동네 친구들이랑 매일 가서 했어요.

제가 대학생 때에는 보드게임이 유행하면서 본격적으로 했죠. 유럽과 미국에서 들어온 보드게임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이후 보드게임방이 하나씩 없어지고 유행이 지났지만, 직장 다니면서 꾸준히 했죠.
 
보드게임 만드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대학생 때 매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도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 번은 벤처학 수업 시간에 과제를 받았어요. 한 조에 100만 원이 지원되고, 학기 말까지 뭐든 만들어내는 게 과제였죠. 그때 처음 보드게임을 만들었어요. 그 후 계속 만들었죠.

건희 님이 제작한 보드게임. 그의 대표작으로는 ‘고려’, ‘아브라카… 왓?’, ‘토끼와 거북이’가 있다

회사를 그만두신 후에 어떤 과정을 거쳐 보드게임 작가가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일 안정적인 게 보드게임 회사에 취업하는 거잖아요? 2013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보드게임 제작사에 지원했는데, 경력도 없고 나이도 많아서 떨어졌어요. 보드게임 작가는 레퍼런스가 있어야 할 수 있는데 당장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일단 ‘한국 보드게임 개발자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름은 거창한데 사실 저 같은 사람들 모아서 각자 만든 보드게임 테스트하는 모임이었죠.

한번은 회원들이랑 일본 보드게임 마켓 행사에 갔어요. 그때 프랑스 보드게임 출판사 대표가 일본 마켓에 게임을 픽업하러 왔는데, 그때 우연히 만나 제가 만든 ‘프레젠트(Present)’라는 보드게임을 보여줬죠. 보더니 프랑스에서 팔아 보겠다고 가져가더라고요? 속으로 대박 났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나중에 이런 종류의 게임은 이미 프랑스 시장에서 포화 상태라고, 다른 걸 보여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작 중인 다른 프로토타입을 보여줬죠. 그렇게 계약해서 프랑스에서 처음 출시했어요. 다행히도 잘 팔려서 한국 보드게임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죠.
 
작가 데뷔를 프랑스에서 하셨네요. 아무래도 국내 보드게임 시장보다 해외 시장이 더 큰 편이죠?
훨씬 크죠. 보드게임은 시간적 여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해서 북미・유럽 시장이 제일 커요. 작가 풀도 많고요. 국내 보드게임 시장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서 제가 운이 좀 좋았죠. 한국 보드게임 작가가 몇 없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일이 들어오고 하다 보니 8년이 금방 지나갔어요.
 
국내 보드게임 시장이 북미・유럽처럼 발전할 거라는 확신도 있었나요?
지금 많이 바뀌고 있어요. 저희 세대는 어릴 때 부모 자식이 함께 게임을 하는 걸 상상도 못 했어요. 보드게임도 부루마블 정도만 있었죠. 그런데 지금 아이들 있는 집은 달라요. 루미큐브, 젠가, 할리갈리부터 다양한 보드게임을 가족들이 함께하죠. 저도 집에서 딸이랑 많이 했어요. 지금은 딸이 커서 덕질하느라 같이 보드게임을 안 해주지만… (웃음)

하나의 보드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해요.
작가는 보통 한두 명, 메커니즘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출판사와 계약 후 출판사에 소속된 편집자와, 출판사에서 계약한 아트워크 작가, 스토리 작가와 협업하죠. 기본적으로 책을 만드는 것과 구조가 비슷해요. 저자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보드게임 작가는 게임의 룰을 쓰는 사람이죠.

보드게임 출시까지 약 1년 반 정도가 걸려요. 테스트 과정이 가장 오래 걸리죠. 온라인 게임처럼 반응을 테스트해요. 가족과 지인들, 전문 퍼블리셔들의 의견을 듣죠. 그리고 오프라인 행사에 제작 중인 샘플을 가져가서 일반인들에게 테스트를 해봐요. 수정도 되게 자주 해요. 버전이 10개가 넘어갈 때도 있죠.  
 
건희 님의 인생 보드게임은 무엇인가요?
대학생 때 ‘카탄(Catan)’을 했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게임 설명만 30분을 듣는데 피곤하더라고요. 막상 시작하니까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많이 한 게임은 ‘달무티(Greate Dalmuti)’에요.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을 만든 리처드 가필드 작가의 작품이죠. 메커니즘이 정말 기발해서 푹 빠졌죠.

최근에는 ‘더 이니셔티브’라는 게임을 즐겨 해요. 보드게임 업계의 블리자드로 불리는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의 개발 책임자가 만든 게임이죠. 암호를 찾아 풀어야 하는 추리 장르 게임인데, 게임 스테이지 사이 사이에도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 핵심이 아웃 게임에 있죠.
 
보드게임 외 온라인 게임이나 콘솔 게임도 즐겨 하시나요?
콘솔 게임 좋아해요. 나이가 드러나는데… (웃음) 메가드라이브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플스, 닌텐도 가리지 않고 다 해요. 요즘은 ‘오큘러스 퀘스트 2’에 빠져 있는데, ‘데메오(Demeo)’라는 RPG 보드게임을 하고 있어요. 보드게임을 AR로 정말 잘 구현했어요. 모바일 게임도 즐겨 해서, 폰에 200개 정도 깔려 있어요.

네임드 보드게임 작가로 활동하시다가, 블루홀스튜디오에 합류했어요. 계기가 궁금합니다.
블루홀스튜디오에서 함께 모바일 게임을 제작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이제 보드게임 작가로 자리를 잡았기에 고민이 많았죠. 모바일 게임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었어요. 기존 보드게임도 모바일로 나오는 추세이고, 신기술과 접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보드게임을 개발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직관적으로 떠올라서 만드는 것, 그리고 먼저 타깃을 정하고 분석해서 만드는 것. 보드게임과 모바일 게임 개발 과정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히트한 보드게임과 모바일 게임의 공통점도 분명 존재하죠.

지금까지 보드게임을 만들면서 제가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요소를 캐치하고 조합하는 데 강점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모바일 게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재미는 결국 사람의 감정이거든요. 블루홀스튜디오에서 감정을 연출해 게임의 핵심 재미를 잡고 가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건희 님이 블루홀스튜디오에서 도전하고 싶은 것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신다면?
이제 막 합류해서 시작하는 단계입니다만,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모바일 게임을 제작해보려 해요. 사람들이 쉽게 플레이하면서도 재미가 극대화된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히트작을 만드는 게 어렵긴 해요. 보통 검증된 것을 따라가는 게 대다수죠. 여기서 반 스텝 앞서 나가고 싶어요. 너무 앞서 나가면 대중적으로 어필하기는 어려운 게임이 되어버리니까요.

첫술에 배 부를 수 없겠지만 블루홀스튜디오에 계시는 디자인(기획), 아트, 스토리, 마케팅 전문가분들과 협업하면서 나아가고 싶어요. 특히 게임 제작은 맨파워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함께 모인 분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가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이야기하며 우리의 맨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블루홀스튜디오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건희 님의 개인적인 목표가 궁금합니다.
보드게임 작가로도 이름을 알리게 될 줄 몰랐어요. 3년만 도전해보고 안 되면 먹고 살길 찾으려 했거든요. 잘 안 되면 저희 집 1층 편의점에서 알바라도 하려고. (웃음) 이제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으니, 언제 어디서든 괜찮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건희 님의 히스토리를 듣다 보니 드라마를 한 편 본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을 보며 달리고 성장하면서 결국 꿈을 이룬 한 청년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모바일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시즌 2 예고편. 그의 시즌 2는 블루홀스튜디오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의 즐거움을 정확히 짚어내는 그의 재능과 블루홀스튜디오가 만나 만들어질 새로운 게임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우리는 크래프톤 직원들의 도전기를 [피플온]에서 계속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