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회사에서 PD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수장’에 가까운 자리다. 멀고도 험난한 자리에 야심 차게 도전장을 던진 신입사원이 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어떻게 PD의 길을 밟게 된 걸까? 알고 보니 이들은 PD 양성 과정인 Producer Pathfinders Program(이하 Pathfinders) 1기를 통해 입사했다는데. 이들을 직접 만나 자세한 스토리를 들어봤다.
반갑습니다. 두 분, 블로그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문형우(이하 문): 안녕하세요. 패스파인더 (Pathfinders) 팀 문형우입니다. 패스파인더 (Pathfinders) 1기를 통해 입사해서 여러 교육을 받고 있고, 현재는 신작 제안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윤상(이하 이): 반갑습니다. 패스파인더 (Pathfinders) 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윤상입니다. 마찬가지로 패스파인더 (Pathfinders) 1기 과정을 거쳐, 7월에 입사했습니다.
패스파인더 (Pathfinders) 팀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문: 한 마디로, PD를 양성하는 팀이에요. 직접 신작 제안을 준비해보고, 시니어 프로듀서들과 CPO (Chief Producing Officer) 김창한 님께 코칭을 받으며 역량을 키우고 있어요.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 다른 부서에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발표를 해요. 혼자서는 게임을 만들 수 없으니까요. 저희의 발표를 듣고 함께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분이 계시면, 그때부터 한 팀이 되어 게임 제작을 준비하는 거죠.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보통 게임회사 PD는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문: 제작자의 크리에이티브와 유저들이 원하는 점을 연결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시장에서 어떤 게임이 유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지 분석하고,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게임을 제작할지 전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죠.
이: 크리에이터와는 다른 직무인데, 간혹 PD를 ‘만들고 싶은 게임을 다 만드는 사람’이라고 알고 계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만화로 비유하자면, 작가는 한 분야만 깊게 파는 장인이고 편집자는 그 제작물을 시장의 취향에 맞게 다듬어서 독자들과 연결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물론 PD가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분야를 나눠보자면 크리에이터는 작가이고, PD는 편집자라고 비유할 수 있죠.
PD 양성 프로그램인 패스파인더 (Pathfinders) 1기로 입사하셨으니, 현재 PD이신 걸까요?
문: 아직 PD라고 하기엔 애매한 것 같아요. (웃음) 채용 당시 PD 직군으로 입사하긴 했지만, PD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거쳐 입사한 거라, 아직 “팀을 이끌 프로듀서입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죠.
이: 정식적으로 PD로서 실무를 진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PD 연습생’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보통은 한 분야의 디렉터를 거쳐 PD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대부분 기획자나 프로그래머 혹은 아티스트로서 10~20년 정도는 일하신 분들이 PD가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죠. 시장과 크리에이티브를 연결한다는 관점에서 PD 직무도 신입부터 양성해낼 수 있다는 게 CPO 님의 생각이셨고, 그래서 패스파인더(Pathfinders) 프로그램을 만드셨다고 알고 있어요.
기존의 PD가 디렉터이자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다 겸하는 자리였다면, 조금 더 프로듀싱에 집중된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취지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기도 했나요?
이: 시니어 PD 출신 두 분이 멘토로 참여해 주셔서, 저희 팀을 전담으로 코칭해주셨어요. CPO 님도 2주에 한 번씩 게임 분석 발표에 오셔서 피드백을 주시기도 했고요. 경험담을 많이 들려주셨는데,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 도움이 많이 됐죠.
PD라고 하면 조직의 수장 같은 느낌이 있는데, 도전하기 부담스럽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나요?
문: 놓칠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부터 PD가 되기 위해 서버 프로그래머로서 경력을 좀 쌓으려고 했거든요. 그럴 필요 없이 바로 PD로 성장할 수 있다니, 딱 제가 원하는 직무였기 때문에 지원을 망설이진 않았어요.
이: 원하던 직무였기 때문에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다만, 치열하게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 같아서 각오는 했죠. 게임 업계에서 처음 있는 채용 사례라서, 참고할 만한 정보도 아예 없더라고요. 그냥 깡으로(?) 지원했던 것 같아요. (웃음)
PD를 신입으로 채용한다는 것 자체가 업계에서 이례적인 일인데,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요?
문: 예전부터 프로듀서나 디렉터를 목표로 커리어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타 게임사에서 해외 PM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커리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여러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퇴사 후, 서버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죠.
이: 크래프톤에 입사 지원만 세 번 했어요. (웃음) 2018년도 펍지 인턴쉽에 지원했을 때 면접에서 떨어졌는데, 그때 부족함을 많이 느껴서 게임인재원이라는 곳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세 번째로 지원한 게 이번 PD 양성 과정이었는데, 운 좋게 합격을 했죠.
여러 게임사 중에서 크래프톤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문: 전에도 해외 PM으로 일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해외 시장에 관심이 많아서, 글로벌 게임 유저들을 대상으로 사랑받는 게임을 만드는 게 저의 목표예요. 그런 관점에서, 크래프톤이 가장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어요.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이거 한국 게임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곳이죠.
이: 일단은 연봉과 복지가…… (웃음) 회사마다 가지고 있는 게임의 장르적 특성이 다른데, 크래프톤의 스타일이 저와 가장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꾸준히 하는 편이고요. 크래프톤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크래프톤의 일원으로서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문: 어떤 특정한 사건을 겪어서 뿌듯함을 느꼈다기보단, 그냥 크래프톤의 일원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해요. (웃음) 또, 게임을 만드는 일 외에는 방해받지 않도록 굉장히 많은 부분을 회사에서 지원해주세요. 이런 분위기를 갖춘 회사가 흔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나는 게임만 잘 만들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형우 님은 타 회사에서 해외 PM으로 근무하실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어요?
문: 북미, 유럽 쪽 업무를 담당했어요. 개발팀과 운영 조직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기획자와 함께 북미 및 유럽권 대상 이벤트를 협의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죠. 아무래도 PM 업무는 크고 작은 일을 포괄적으로 신경 써야 하다 보니, 그때그때 발생하는 이슈에 대응하는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왜 PM을 그만두고 PD의 길을 택하셨나요?
문: 원래 대학생 때부터 게임 제작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등 게임 제작자로 일하고 싶었어요. 영어 실력을 살려서 해외 PM으로 일단 취업을 했는데, 일하다 보니 제작 직무에 대한 아쉬움이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퇴사를 하고 1년 반 정도 서버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게 됐어요.
원래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랐던 상태라 초반엔 독학으로 배우다가 나중엔 전문 학원을 등록해서 배웠죠. 그 당시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로라라라’ 라는 게임을 만들어서 출시했어요. 게임 제작이 거의 완료될 때쯤 크래프톤에 입사하게 됐어요.
그럼 대학생 때 전공도 게임과는 관련이 없었나요?
문: 네, 경영학부 글로벌금융을 전공했어요. 대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금융 쪽으로 취업할 생각이었는데, 군대에서 TRPG(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를 처음 접하고 나서 게임 업계로 진로 방향을 틀었죠.
보드게임과 비슷한데, 마스터가 말로 게임을 진행하고 플레이어들이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게임이에요. 마스터는 굳이 비유하자면 PC 게임에 있는 컴퓨터의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의외로 마스터가 적성에 맞더라고요. 내가 만든 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재밌어하고 감동을 할 때 뿌듯하더라고요. 게임 제작의 가치를 처음 느꼈죠.
윤상 님도 입사 전 인디 게임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게임인가요?
이: 출시까지 되진 않았지만, ‘구스글(Goosgle)’이라는 게임을 제작해서 BIC(Busan Indie Connect) Festival에서 ‘최고의 실험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구글을 패러디한 가상의 웹사이트를 구현한 게임인데요, 게임 안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의문의 메일이 날아오면서 시작돼요. 메일에 있는 첨부파일을 다운로드하면 자동으로 코인 거래소를 해킹해버리고, 플레이어가 누명을 쓰게 돼요. 진범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계정을 해킹하면서 정보를 수집해 나가는 추리 퍼즐 게임이에요.
회사에서 근무했던 경험도 있나요?
이: 원래는 제조업 회사의 인사팀에서 일했어요. 형우 님과 마찬가지로, 게임 제작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퇴사하고 모바일 게임 회사에 기획자로 입사했어요. 기획자로는 주로 시스템 업무를 맡아 진행했어요.
첫 직장은 게임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네요.
이: 원래 문화 콘텐츠학을 전공했는데, 하도 취업이 어렵다고 하길래 인사팀에 채용됐을 때 덥석 가겠다고 했죠. 막상 일해보니 전공 시간에 배운 내용은 전혀 써먹을 수 없고, 업무 때문에 노동법을 새로 공부했는데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퇴사 후, 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게임인재원이라는 곳에서 게임 관련 교육을 받고 기획자 커리어를 쌓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평소에 어떤 게임을 즐기는지 궁금해요.
문: ‘마운트&블레이드2: 배너로드’가 근 1년간 제일 재밌게 했던 게임이에요. 대규모 전투가 특징인 액션 RPG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반적인 게임과 다른 결이에요. 중세시대의 모험가가 되어 대륙을 탐험하는 이야기인데요, 왕이 될 수도 있고 자기 휘하로 부대를 만들 수도 있어요.
이: 요즘은 ‘풋볼 매니저’를 플레이하고 있어요. 소위 악마의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임 중 하나인데요, 직접 축구 감독이 되어 축구팀의 경영, 관리, 감독까지 다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에요. 옛날부터 굉장히 즐겨했던 시리즈인데, 최신 버전이 출시돼서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럼 살면서 했던 게임 중 인생 게임을 하나만 꼽는다면?
문: ‘블랙&화이트(Black&White)’요. 신의 입장에서 신도들을 먹여 살리고, 위기에서 구출하는 게임이에요.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의 입장이 되어볼 수 없는데, 관점을 비틀어서 신의 입장이 되어보는 게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이: 오래 고민해봤는데 아무래도 ‘포탈 2(Portal 2)’를 인생게임으로 꼽고 싶어요. 공간의 포탈을 만들어서 한쪽 포털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 포털로 나온다는 핵심 시스템이 흥미로웠어요. 퍼즐게임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이어지고 내러티브도 잘 구성되어 있어요.
이제 Producer Pathfinders Program 모집이 시작되는데, 경험자로서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이 지원하면 좋을 것 같나요?
문: PD 업무를 수행할 때 인지 학습 능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어떤 걸 알고, 어떤 걸 모르는지 객관적으로 자각하는 능력이에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가 업무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주도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1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스터디 분석 주제 등 작은 것 하나까지 직접 결정해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고, 도움을 얻었고요.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들이 지원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원을 고민할 주니어들에게 한 마디?
문: 쉬운 과정은 아니겠지만, 열정이 있다면 도전해보면 좋겠어요.
이: 본인의 목표가 PD라면, 고민할 이유가 있을까요?
앞으로 크래프톤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문: 프로듀서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명작으로 인정받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이: 단기간에 성공을 이뤄서 짧게 사랑받는 게임보다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수명이 긴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연습생을 거치는 것처럼, 본인들은 아직 PD가 아닌 연습생이라며 수줍어하던 형우 님과 윤상 님.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깊어지니, 언제 수줍었냐는 듯 진지하고 전문적인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빛나던 눈빛만큼 밝은 이들의 미래를 기대하며, 앞으로도 크래프톤을 빛내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피플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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