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의 게임으로 디자인하고, 실제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개발을 통해 구현하는 것, 그리고 유저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은 모든 게임 개발자들에게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다. 크래프톤의 독립 스튜디오 ‘라이징윙스(RisingWings)’는 고유의 사내 문화 ‘게임잼(Game Jam)’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이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게임잼은 일종의 ‘해커톤(Hackathon)’ 행사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여 주어진 기간 안에 게임을 제작하고, 사내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시연해 평가를 받는다. 구성원들로부터 다양한 게임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차세대 개발 리더를 발굴하는 것이 이 행사의 목표다. 특정 장소에 모여 짧은 기간 내에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 일반적인 해커톤과는 달리, 게임잼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업무를 진행하는 가운데 각자 자유롭게 팀별로 협동해 게임을 만들게 된다.
이 행사에는 라이징윙스 고유의 개발 철학이 녹아 있다. 그 가장 중요한 것이 개발 실무자들로부터 게임의 제작을 시작하는 ‘바텀 업(Bottom Up)’ 방식의 개발 문화다.
장새름이 (라이징윙스 HR팀장) ─ “라이징윙스는 경영진이 제안하여 게임을 제작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고 있기에 각 팀의 제안에서 출발하는 프로젝트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가 게임잼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구성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게임을 제작하고, 수상작은 시장에서 고객들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라이징윙스의 2021년 게임잼은 2~3월부터 시작해 12월 구성원 시연 및 시상식까지 약 8개월간 진행됐다. 예년에 비해 더 많은 구성원들이 참가했고, 최종적으로 구성원들의 평가를 받은 게임들은 비록 순위는 갈렸지만 그 차이가 근소하게 갈렸을 만큼 퀄리티도 높았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구성원들의 선택을 받아 1위를 수상한 작품은 양준영 님의 ‘Coupang Man’이었다. 매치 3D 퍼즐 게임인 이 작품은 택배 배달을 기본 콘셉트로, 주문이 들어오면 빠르게 대응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3D 형태의 오브젝트들이 작은 공간에 떨어지면 이것을 조작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캔커피 모형의 경우 이것을 위에서 보면 원형으로, 옆에서 보면 긴 사각형을 보이게 되는데 이것을 빠르게 구별해야 하는 것이 포인트다.
양준영 (라이징윙스 게임 디자이너) ─ “게임 디자이너인 저 혼자서 1인팀으로 준비했는데, 사실 출품을 못할 뻔했어요. 원래 작년 11월까지 빌드 제출 마감이었는데, 그때까지도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을 맡아 주실 파트너를 못 구했어요. 회사 동료분들 전체에 메일을 돌리면서까지 구인해봤지만 잘 안됐어요. 그러던 중에 마감이 12월로 연기가 됐는데, 마침 같은 부서의 백호종 님이 도움을 주실 수 있게 됐어요. 아트 디렉팅이 본업이면서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까지 하실 수 있는 능력자세요. 백호종 님이 일주일 간 열심히 도와주신 덕분에 작품을 제출할 수 있었어요.”
2위 수상작 ‘Where Are You?’는 게임 디자이너 채우병 님,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신동효 님, 서버 프로그래머 이광민 님의 3인조 팀이 개발했다. Where Are You?는 보이지 않는 타일 공간의 맵에서 상대의 위치를 추리해 공격하는 방식의 1대일 턴제 전략 보드게임이다. 총 2개월이 소요됐는데, 2개월간 세 사람이 각자의 업무를 병행하면서 개발했다. 따로 아트와 사운드는 애셋 스토어에서 구매하여 개발 리소스를 최소화했다.
채우병 (라이징윙스 게임 디자이너) ─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했어요. 처음엔 참여에 의의를 두자는 마음이었죠. 그러던 중에 같은 프로젝트의 서버 프로그래머인 이광민 님에게 제 계획을 말씀드렸는데, 프로그래밍을 맡아 주시겠다고 선뜻 말씀하신 덕분에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됐어요. 연출 상, 그리고 시각적으로 코딩을 섬세하게 작업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광민 님이 이 분야 전문가를 소개해 주셨어요. 그게 바로 동효 님이었죠. 사실 저는 동효 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이렇게 게임을 같이 만들고 상도 받게 된 셈이죠 (웃음).”
게임잼에 참여한 라이징윙스 구성원들은 개발을 위한 시간을 일부 보장받을 수 있었다. 휴가를 쓰듯이 신청해서 정해진 시간을 활용하는 식이다. 구성원들이 업무와 게임잼 개발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회사 차원의 배려인 셈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참여한 구성원들은 더 좋은 게임을 만들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퇴근 후나 주말 시간에도 작업에 몰두했다.
매년 게임잼 행사 공지가 나오는 2~3월이면 라이징윙스 구성원들의 문의가 이어진다. 구성원들이 게임잼에 참여하는 동기는 다양하다. 참가만 해도 제공되는 참가비와 회식비에 끌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참여하는 많은 구성원들에게 가장 큰 요인은 ‘나만의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경험’이다.
양준영 ─ “솔직히 말해 참가비와 회식비까지 제공되는 것이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유부남 입장에서 무척 반가웠어요 (웃음). 물론, 게임 디자이너로서 평소에도 아이디어 짜는 것을 좋아해요. TV나 영화를 보던 중에도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정리를 해 두는 편이예요. 그렇게 정리해 두었던 아이디어 리스트 중에서 게임으로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Coupang Man의 시작이었던 거죠.”
각 참가팀들이 만든 게임들은 매년 연말 게임잼 본행사날 동료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시연을 진행하게 된다. 구성원들은 시연 빌드를 다운받아 실제로 플레이를 해본 후 투표를 한다. 여기서 많은 표를 얻은 게임이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양준영 ─ “다른 팀들의 작품 보기 전에 제가 만들던 것만 생각하고는 1, 2등 안에 들면 좋겠고 실제로 가능성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다른 출품작을 보니까 3등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크린샷만 봐도 퀄리티가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에게도 참가비 정도만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운 좋게도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됐어요.”
채우병 ─ “저희 게임은 추리 장르이기도 하고, 그래서 게임 플레이 방식을 완전히 터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플레이타임이 보장되지 않으면 재미를 전달하기가 어려워요. 솔직하게 이상적인 목표를 3등 정도로 잡았었죠. 그럼에도 감사하게 구성원들이 표를 많이 주셔서 2등까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라이징윙스는 게임잼을 통해 실제로 제작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은 개발을 더 진행해 실제로 시장에 출시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라이징윙스는 그보다 구성원들이 게임 제작에 대한 창발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분출하고 나누며, 실제로 게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배우고 동료들로부터 자극을 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에서 게임잼의 의미를 찾고자 하고 있다.
양준영 ─ “짧은 기간동안 속도감 있게 개발하면서, 동료와 세부적인 이견들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율해 나가는 경험이 새로웠어요. 스피디하게 개발해서 빠르게 결과물을 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이전에 규모가 더 큰 게임 회사에서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1년반 동안 개발하고 라이브 서비스도 경험해 봤지만, 그것을 오롯이 내가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게임 디자인을 하는 분들은 많이 공감하시지 않을까 하는데, 처음 아이디어의 발상부터 설계, 시스템, 라이브 서비스 준비, 밸런싱까지 그런 것들을 오롯이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변에 인디 게임 개발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소규모로 이렇게 개발해보는 것을 게임 개발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하면 실패를 하더라도 왜 실패했는지도 바로 발견할 수 있고요.”
신동효 (라이징윙스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 “함께 개발한 이광민 님은 서버 프로그래머이고 저는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인데요, 광민 님이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 경험도 있어서 같이 일한 경험이 저에게는 많이 공부가 되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계속 매진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환기시킬 수도 있고, 다시 개발에 더 힘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동기부여가 되는 셈이죠.”
채우병 ─ “하나의 게임을 설계하고 직접 디자인하려면 정말 무수히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건 사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워요. 기존에 맡고 있던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다른 장르의 게임 제작을 경험해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직접 경험하면서 배워보는 재미가 컸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성장한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하나의 게임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디자인하고 그 전체적인 과정을 다 경험해본다는 것이 게임 디자이너로서 소중하게 여겨져요.”
라이징윙스에는 매년 게임잼에 개근하는 개발자들도 적지 않다. 한번 출품했던 작품이지만, 더 좋은 아이디어와 추가 개발을 통해 한층 더 개선하여 다시 구성원 유저들의 평가를 받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이는 경우도 있다.
조봉현 (라이징윙스 Connect 팀장) ─ “특별히 저의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데요, 지난 2020년도 게임잼에서 1등을 한 이후 게임을 더 업그레이드하여 다시 출품한 FlipNoid2입니다. 비록 아쉽게 이번에는 수상하지 못했지만, 행사를 위해 게임 하나를 만들고 그냥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발전시켜서 다시 참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상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보다 이 게임을 정말 높은 퀄리티도 다시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2021 게임잼은 코로나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진행됐다. 원래 시연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출품작들을 플레이해보고, 현장에서 즉각적인 반응과 피드백으로 평가하는 것이 주 목적이나,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됐다.
2022년에도 게임잼은 계속된다. 올해 5회차를 맞아 라이징윙스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 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경험의 장으로 게임잼을 꾸려 나갈 계획이다. 개발 리더들의 멘토링을 받으며 제작한 게임을 동료 구성원 유저들에게 내보이고 함께 피드백을 나누는 한편, 수상할 경우 실제 시장에서 유저들을 만나볼 수도 있는, 개발자들의 성장을 위한 기회의 장인 까닭이다.
양준영 ─ “아직 게임잼을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동료들에게 꼭 참여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보지 못한 개발자들이 많아요. 그렇기에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참여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설사 완성을 못하더라도 첫 발은 내딛어 보는 것이 귀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