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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와 게임의 기묘한 관계

게임과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게임은 드라마처럼, 드라마는 게임처럼 만들어지고 있죠. 기존 게임과 드라마는 수용자와 매체 특성이 달라 서로 거리가 먼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트랜스 미디어가 활발해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과 드라마도 신선한 ‘케미’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양쪽의 경계를 흐리는 콘텐츠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는 게임과 드라마의 이종교배 실험에 앞장섰습니다.

드라마가 된 게임, 게임이 된 드라마

대표적인 예가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입니다. ‘밴더스내치’는 넷플릭스 인기 오리지널 드라마 ‘블랙미러’ 시리즈 중 하나인데요, 특별한 점은 관객의 참여가 가능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이용자가 능동적으로 캐릭터의 행동을 선택하는 몰입 경험은 게임의 전매특허였죠. 밴더스내치는 게임의 능동적 요소를 차용해 시청자가 주인공의 행동을 선택해 내용과 결말이 달라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시청자의 선택으로 결말이 달라지는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아침 메뉴도 골라보지 그래?”라는 상대방의 말에 주인공이 무엇을 먹을지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슈가 퍼프’와 ‘프로스티’ 두 종류의 시리얼이 시청자 앞에 놓입니다. 어떤 시리얼을 먹을지, 어떤 음악을 들을지. 전화를 받을지, 말지. 회사에서 일할 건지, 집에서 일할 건지. 선택의 결과에 따라 다른 영상이 자연스레 이어지죠. 일방향으로 흐르던 드라마는 다양한 분기점을 맞아 이야기가 변주됩니다.

드라마의 내용도 1984년을 배경으로 게임 개발자 스테판이 판타지 소설 ‘밴더스내치’를 기반으로 게임을 만드는 과정을 다룹니다. 트랜스 미디어를 다룬 인터랙티브 콘텐츠인 셈이죠. 내용부터 양식까지 철저히 게임적 요소를 차용한 드라마입니다. 공식 엔딩은 5가지이지만, 확인된 총 엔딩의 수는 10가지가 넘습니다. 러닝타임은 짧게는 40분에서 길게는 2시간 이상이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선택에 따라 엔딩이 바뀌는 인터랙티브 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버튼을 입력해 진행하는 게임으로, 조작 요소는 적고 게임의 대부분이 많은 컷씬으로 구성됐죠. 게임 같은 능동적 경험을 제공하는 드라마 ‘밴더스내치’와 반대로, 게임에서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경험을 주는 셈입니다.

인간형 로봇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인터랙티브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이미지 출처: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의 다양한 게임 실험

이 밖에도 넷플릭스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콘텐츠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드라마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게임 산업에 진출하는가 하면, 반대로 게임 IP를 끌고 와 드라마로 제작합니다. 또 기획 단계에서부터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하죠.

넷플릭스의 간판 오리지널 콘텐츠 ‘기묘한 이야기 시즌3’.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간판 오리지널 콘텐츠 ‘기묘한 이야기’는 게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7월 ‘기묘한 이야기’ 세 번째 시즌 공개와 함께 ‘기묘한 이야기3: 더 게임’을 함께 선보였습니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3’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드라마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입니다. 3D 그래픽 기반의 최신 게임과 달리 2D 도트 그래픽을 적용해 ‘기묘한 이야기’ 특유의 레트로 감성을 살렸습니다. 배경 음악과 효과음도 8비트 게임의 ‘뿅뿅’ 거리는 사운드를 적용했고요.

‘기묘한 이야기 시즌3’는 게임으로도 함께 공개됐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1982년에 개봉한 고전 판타지 영화 ‘다크 크리스탈’은 넷플릭스에서 프리퀄 10부작 ‘다크 크리스탈: 저항의 시대’로 재탄생했습니다. 지난 8월30일 공개된 이 작품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인형극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올 연말 ‘다크 크리스탈: 저항의 시대 택틱스’라는 이름의 게임으로도 출시될 예정이라는 점입니다. ‘기묘한 이야기’와 ‘다크 크리스탈’의 게임 버전은 BonusXP가 개발하고 크래프톤의 연합사 엔매스 엔터테인먼트가 퍼블리싱을 맡았습니다.

다크 크리스탈: 저항의 시대 택틱스 트레일러

또한, 넷플릭스는 2015년 최다 고티(GOTY, 올해의 게임)를 수상한 게임으로 유명한 ‘위쳐’를 드라마화해 오는 12월 방영할 예정입니다. ‘위쳐’는 폴란드 작가 안제이 사프콥스키의 판타지 소설 ‘더 위쳐’를 원작으로 합니다. 이 소설은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세 번째 시리즈인 ‘더 위쳐3: 와일드 헌트’가 2015년 최다 고티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9년 12월 20일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판 위쳐 메인 예고편

넷플릭스와 게임의 ‘기묘한’ 공생 관계는 지속될 전망입니다. 주력 사업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디즈니, 애플, HBO 등 거대 기업이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과열되고 있고, 콘텐츠 수급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넷플릭스에서 못 보게 된 것처럼 말이죠. 또 후발주자들이 넷플릭스보다 저렴한 구독료를 앞세우면서 매출 타격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넷플릭스에게 게임은 기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한계를 넘어설 히든카드인 셈이죠.

일각에서는 넷플릭스가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넷플릭스가 그리는 그림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찌 됐든 게임과 드라마는 지금도 서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