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FTON

90년대 게임이 온다

바야흐로 90년생의 시대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90년대생이 사회 초년생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 문화의 전반적인 변화를 몰고 오고 있습니다. ‘워라벨’ 문화가 대표적이죠.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성향 탓에 기성세대는 조직 내 90년생을 이해하고, 공부하느라 애먹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관리자들은 90년대생의 특징을 소개하는 책 ‘90년생이 온다’를 필독서처럼 읽으며 그들과 공존을 모색합니다.

이처럼 90년생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요, 그들의 문화에 젖어 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특히 이들이 나고 자라며 즐긴 90년대 게임들을 살펴보는 것도 세대 간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부장님도, 90년생 동년배도 주목! 나 90년생 청년인데 동년배들 다 이 게임 안다!

버추어캅 시리즈

“썸바디 헬(프)미”

날 때부터 PC와 함께 자란 90년생은 ‘버추어캅’ 시리즈를 한 번쯤 즐겨봤을 겁니다. PC에 깔려 있는 기본 게임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버추어캅’은 세가에서 개발한 90년대 3D 건슈팅 게임입니다. 경찰관이 되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특히 97년 출시된 PC판 ‘버추어캅2’는 90년대 국민 게임 중 하나입니다.

게임 내 진짜 빌런 ‘인질’ (이미지 출처: 버추어캅2 스크린샷)

재밌는 점은 게임 내 진짜 빌런이 따로 있다는 건데요. 바로 테러리스트 사이 사이에 등장하는 인질입니다. “썸바디 헬(프)미”를 외치는 인질들을 피해 적들을 총으로 맞춰야 합니다. 인질을 쏘면 주인공 캐릭터의 목숨이 하나 날아갑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하는 인질을 쏘게 되는 경우가 꽤 있죠. 공권력에 대한 불신, 사회에 대한 묘한 반감의 씨앗을 자라나게 한 게임이기도 합니다.

프린세스 메이커2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는 ‘OO 키우기’의 원조 격인 90년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딸 아이를 성년까지 돌보고 키우는 게임으로, 특히 두 번째 시리즈는 고전 명작으로 꼽힙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아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자라는데요. 화가나 요리사, 박사 같은 직업부터 여왕, 마왕, 암흑가의 보스까지 기상천외한 직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또 게임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결혼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면 충격적인 엔딩도 꽤 많죠.

키우기 시리즈의 원조 ‘프린세스 메이커2’ (이미지 출처: 스팀)

원하는 엔딩을 보기 위해선 전략적으로 딸 아이를 육성해야 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엇나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일종의 부모 마음 시뮬레이션 게임이기도 한 셈이죠.

창세기전 시리즈

‘창세기전’ 시리즈는 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한국 게임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프트맥스에서 제작한 RPG로, 매력적인 세계관과 이야기, 캐릭터를 구축해 많은 팬덤을 모으며 국산 PC 게임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90년생에게 익숙한 시리즈는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창세기전3’입니다. 주인공 ‘살라딘’을 주축으로 국가 간 암투, 사랑, 형제의 비극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 호평을 받았습니다. 물론 아재들은 시리즈의 시작점인 ‘창세기전2’를 최고로 여기지만요.

‘창세기전3’ 비극의 주인공 살라딘 (이미지 출처: 창세기전3 공식 일러스트)

외전인 ‘서풍의 광시곡’과 ‘템페스트’를 제외하면 턴제 SRPG를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시리즈는 ‘창세기전3: 파트2’에서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편은 전 시리즈의 세계관을 엮는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이야기 전개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창세기전3: 파트2’ 뒤에 나온 다른 시리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피카츄 배구

‘피카츄 배구’는 교실 PC 게임의 대명사입니다. 90년생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포켓몬스터’의 인기 캐릭터 ‘피카츄’가 등장해 ‘몬스터볼’로 배구를 하는 게임입니다. 사양을 타지 않는 단순한 그래픽과 적은 용량, 쉬운 조작법으로 교실 컴퓨터를 점령한 ‘우정 파괴’ 게임이기도 하죠. 쉬는 시간이 되면 반에서 좀 놀 줄 아는 아이들이 교실 PC로 몰려들어 피, 땀,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대전! 피카츄 비치 발리볼편’으로, 1997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동인 게임입니다.

이미지 출처: 피카츄 배구 게임 스크린샷

90년생은 잘 모르는 사실은 ‘피카츄 배구’의 원조 격 게임이 따로 있다는 점입니다. 90년생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감자 배구’를 기억할 겁니다. ‘아케이드 발리볼’이라는 정식 명칭을 지닌 이 게임은 ‘피카츄 배구’와 동일하지만 감자를 닮은 동그란 2D 캐릭터가 등장하는 더 단순한 그래픽의 게임입니다. ‘피카츄 배구’가 보급되기 이전에 많이들 즐겼다고 합니다.

리에로

학교 PC를 지배한 90년대 게임 중 하나는 ‘리에로’라는 게임입니다. ‘웜즈’ 시리즈처럼 지렁이가 나와 ‘총포탄’으로 무장해 대전하는 게임으로, 그래픽은 ‘웜즈’ 시리즈보다 훨씬 더 조악합니다. 도스 기반의 도트 게임으로, 사양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열악한 학교 PC 환경에 잘 보급된 셈이죠.

2D 도트 그래픽 기반 지렁이 게임 ‘리에로’ (이미지 출처: Liero Official 유튜브)

플레이어가 돌아가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턴제 방식의 ‘웜즈’ 시리즈와 달리 실시간 대전이라는 점에서 더 피튀기는 대전이 벌어졌습니다. 실제로 게임에서 총탄을 맞으면 지렁이 캐릭터가 도트로 표현된 붉은 피를 쏟아내는 잔혹한 게임입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자신만의 놀이동산을 건설하는 ‘롤러코스터 타이쿤’ 시리즈도 90년에서 2000년대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9년 출시된 첫 타이틀을 시작으로 PC와 모바일, 콘솔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됐는데요. 특히 샌드박스 형식으로 놀이동산을 꾸미는 자유도가 높아 호평을 받았습니다. 놀이동산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이라는 본래 장르와 달리 관람객들을 괴롭히는 걸로 더 유명해지긴 했지만요. 한 유저는 게임 내 시간으로 263년이 걸려 탈출할 수 있는 미로 공원을 만들어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스팀

어느덧 사회인이 돼 버린 90년생들. 그리고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노오력’ 중인 부장님들. 90년대 게임을 되짚어보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는 건 어떨까요. 세대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부각되는 요즘, 어쩌면 해답은 쉬운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상에 치여 속으로 “썸바디 헬(프)미”를 삭히고 있는 서로를 게임으로 다독여 봅시다.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