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게임에서 미친 듯이 돈을 모으고, 연합 게임에서 같은 편끼리 죽어라 싸우는 유저들. 100명의 유저가 있으면 100개의 플레이 방법이 있다. 게임을 만드는 건 제작사지만, 게임을 채워 나가는 건 순전히 유저들의 몫. 그래서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도 많다. 다양한 게임 속 레전드 사건 사고를 소개한다.
최초의 온라인 살인부터 최초의 영구정지까지
세일러문부터 슈퍼 히어로까지, 변신할 때 공격하지 않는다는 건 암묵적인 룰. 아무리 호들갑을 떨며 옷을 바꿔 입어도 그때는 악당도 못 본 척해준다. 하지만 트롤러들은 어디나 있는 법. 게임 진행과 관련 없이 고의로 다른 유저들을 죽이는 온라인 학살에 관련된 썰도 넘친다.
‘울티마 온라인’은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레전드 게임. 특유의 높은 자유도가 특징이다. 게임 역사에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최초의 MMORPG’, ‘최초의 온라인 장례식’ 등 많은 부분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다. 이중 ‘최초의 온라인 살인’은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울티마 온라인 베타테스트가 한참 진행 중일 무렵, 이름부터 신성한 ‘로드 브리티쉬’는 울티마 시리즈에서 강력한 파워를 지닌 절대적인 NPC였다. 그런데 어느 날, 평화롭게 유저들에 둘려싸여 있던 로드 브리티쉬가 갑자기 불에 휩싸여 죽는다. ‘레인즈’라는 유저와 두 명의 친구들이 로드 브리티쉬를 불태울 계획을 세웠고, 충실히 행동에 옮겼기 때문. 이렇게 온라인 최초의 계획 살인은 허무하게 성공해버린다. 이후 부활한 로드 브리티쉬는 복수를 감행했고, 레인즈 삼인방은 ‘최초의 영구정지’ 타이틀까지 얻으며 2관왕에 등극한다.
레전드가 된 ‘오염된 피 사건’
레인즈는 오래오래 게임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지만, 더 유명한 사건도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다시 한번 관심을 받았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오염된 피 사건’은 찐 스타급 사건. 라이트 유저를 위한 던전 줄구룹(Zul’Gurub)의 최종보스 ‘학카르’는 ‘오염된 피’ 능력을 사용했는데, 이 디버프에 걸리면 강한 피해를 입음과 동시에 주변 플레이어에 오염된 피 능력을 전염시켰다. 감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학카르가 사용하는 ‘피의 착취’라는 공격을 맞아서 피를 배출하거나 던전에서 나가야만 했다. 던전용 디버프인 만큼 일정 구역을 벗어나면 자동으로 없어지는 설정이었기 때문.
그런데 ‘펫’은 예외였다. 사냥꾼은 펫을 소환하여 데리고 다닐 수 있는데, 펫에게도 오염된 피가 전염됐고, 오염된 피에 전염된 펫을 던전 밖에서 재소환할 경우 감염된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펫을 통해 감염된 NPC는 감염 확산의 원인이 됐는데, NPC는 전투 상태가 아니면 생명력을 계속 회복하기 때문에 무증상 보균자가 되어 ‘오염된 피’를 일반 유저에게 확산시켰다. 감염된 일반 유저들이 감염된 채로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순식간에 서버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이후 유저들이 보인 다양한 행동. 힐링 스킬로 다른 사람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힐러, 전염병을 막기 위해 도시를 통제하는 민병대, 일반 포션을 해독제라고 사기 치고 판매하는 사기꾼 등 다앙한 모습이 게임에서 포착됐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대규모 전염병 발생 시 나타나는 행동이라며 학문적으로 연구되어 다수의 의학 저널에도 실렸다. 지나고 보니, 근 몇 개월간 뉴스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게 사실. 부럽게도 이 사건은 서버 리셋을 통해 쉽게 해결됐다.
그 시절 라떼들을 울린 테러 사건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게임할 때 부모님 안부를 챙기는 게 예의지만, 안부 물을 새도 없이 주변을 초토화한 온라인 테러 사건도 있었다. ‘마비노기’에는 자폭 몬스터를 이용한 수많은 폭발 테러가 있었는데, ‘어의가없따’라는 이름의 유저가 자폭 몬스터 ‘밤스티드’를 폭발 시켜 GM을 살해한 ‘밤스티드 테러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메이플스토리’의 ‘커닝시티 대참사’도 당시 수많은 게이머들을 분노하게 한 사건이었다. 이벤트를 통해서 드문 확률로 얻을 수 있는 ‘검은 보따리’를 풀면 ‘주니어 발록’이라는 몬스터가 나왔는데, 일부 유저들이 맵의 비탈진 특성을 악용해 ‘주니어 발록’을 밀쳐 저렙 유저들에게 데미지를 입혔다. 맵 특성상 대부분이 10~40 레벨의 유저였고, 빠르게 밀쳐지는 주니어 발록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많은 유저가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주니어 발록이 한 번 풀려나면 북적이던 마을은 한 순간에 난장판이 되곤 했다. 종종 인파가 많은 복잡한 장소에서 ‘커닝시티 실사판이네 껄껄~’과 같이 현실에서 커닝시티를 언급하는 라떼도 있다고 한다. 11년이나 지난 사건이라 많이 잊혀진 것 같지만, 10년 전 게시글에서는 찾아볼 수 있으니 궁금하면 아래 링크 클릭.
게임 속 암살자 고용 사건
일요일 아침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사건도 있다. ‘Feng’이라는 이름의 중국인 아버지는 아들이 23살임에도 온종일 게임만 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기발한 방법을 떠올린다. 게임상에서 암살자를 고용해 아들의 캐릭터를 계속해서 죽인 것인데, 영문도 모르고 게임 접속과 동시에 죽임을 당하던 아들이 암살자에게 이유를 물어보면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BBC 웹사이트에서 ‘Gamers hired by father to ‘kill’ son in online games’라는 제목으로 검색하면 기사 본문을 볼 수 있다. 궁금하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자(*영어 주의).
이 사연이 알려지며 아들이 플레이한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인기가 더 올라갔다는 썰과, 아들은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후에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하기로 아버지와 약속했다는 훈훈한 썰이 있는데 진위 여부는 둘 다 확인할 수 없다. 2013년에 23살이었으면 지금은 30살이 됐을 아들이 지금도 게임을 열심히 할 것 같다는 게 가장 합리적인 추측. 게임은 몰겜이 최고니까.
훈내 폭발하는 착한 사건 사고
게임에는 훈훈한 사건들도 존재한다. 앞서 말한 ‘울티마 온라인’에서는 ‘최초의 온라인 장례식’이 있었다. ‘Sir Death’라는 이름의 유저는 길드원들과 함께 자주 게임을 즐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더 이상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고, 이상하게 여긴 길드원들이 행방을 수소문하면서 ‘Sir Death’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길드원들은 ‘Sir Death’을 추모하기 위해 온라인 장례식을 열기로 하고, 길드원을 비롯한 수많은 유저가 장례식에 참여해 명복을 빌어주었다. 고인이 생전 게임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소인 바닷가 앞에서 진행된 온라인 장례식에는 GM도 참석했는데, GM은 조용히 서 있다가 돌고래 한 마리를 만들었다. 그 돌고래의 이름은 ‘Sir Death’로, 당시 유저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다 이 돌고래를 만나면 행운의 징조라고 여겼다고 한다.
온라인 장례식은 그 이후에도 있었는데, 라이벌 길드에서 현장을 기습해서 무방비 상태의 유저들을 공격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장례식 깽판 사건’과 같이 눈치 없는 일부 유저들 덕에 아름답지 못하게 끝난 사례도 있다. 물론, 유저들이 마음을 모아 다 같이 착한 일을 한 적도 많다.
‘리니지’의 ‘생명의 검’ 사건이 대표적. 희귀 혈액형 RH-O형인 게이머가 사고를 당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유저들이 RH-O형을 구한다는 문구를 서버 전체에 퍼트렸고, 혈액형이 일치하는 게이머가 수혈에 나서 생명을 구했다. 제작사에서 당시 단 한 자루만 존재하는 특별한 아이템이었던 ‘생명의 검’을 수혈자에게 선물하는 착한 뒤끝을 보이기도 했다. 2011년에는 리니지 공식 홈페이지에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생후 40일 된 아기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유저의 글이 올라오자, 모금을 통해 어린 생명을 살렸다. 평소에는 ‘혈맹’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지만, 적대 관계의 혈맹원도 적극적으로 모금에 참여하는 모습은 무조건 인정. 박수받을 만하다. 짝짝짝!
천태만상 게임세상 플레이하는 법도 가지가지, 인간사만큼이나 게임 속 이야기는 다양하다. 게임의 역사는 곧 게이머의 역사이기에, 게이머들이 만들어가는 게임 라이프를 앞으로도 [컬쳐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