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 인터뷰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조직 생활과 업무의 기본 중 기본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내 깨닫게 된다. ‘PUBG: 배틀그라운드’ 개발 초기부터 세계 각지의 개발자들과 함께 일해온 크래프톤은 구성원들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전문 통번역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개발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통번역사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의 원지원, 이경호, 김동민 님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독자 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원지원: 안녕하세요!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에서 Translation1 팀장을 맡고 있는 통번역사 원지원이라고 합니다.
김동민: 반갑습니다.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 통번역사 김동민입니다.
이경호: 안녕하세요.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에서 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이경호라고 합니다.
통번역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원지원: 다른 사람들이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연사의 말을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저에게는 즐거운 도전이기도 했고요.
이경호: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 때는 외국 게임들 가운데 한글화가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아서 게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영어에 빠져들게 됐죠. 학창 시절 영어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스스로 언어 공부는 질리지 않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문학과에 진학했고, 좀 더 전문가가 되기 위해 통번역대학원까지 졸업했어요. 이후 번역사의 길을 걷게 됐고요.
김동민: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위해 첫 직장을 퇴사할 때 사실 주변의 반대가 적지는 않았지만, 과감한 결정을 내렸죠. 통번역사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보상감이 커서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습니다.
통번역사로서 프리랜서의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인하우스 통번역 조직 가운데서도 다양한 업계로의 길이 있었을 텐데, 크래프톤/펍지 스튜디오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경호: 앞서 말했듯, 게임을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기술이나 IT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관련 기업을 찾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펍지 스튜디오로 오게 됐어요.
김동민: 제가 이전에 일했던 회사는 경직된 분위기가 강했어요. 좀 더 자율성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IT 회사나 게임 회사를 주로 알아봤어요. 실제로 들어와서 일해보니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은 구성원들에게 업무 상 자유를 더 많이 부여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크래프톤에는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 외에도 ExecutiveTranslator 팀, 그리고 일본어와 중국어 통번역사들이 함께 있는 PM Translator 팀 등 전담 조직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고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장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동민: 한 사람의 통번역사로서, 통번역 업무에 대한 이해가 있는 회사, 다른 통번역사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크래프톤/펍지 스튜디오에는 통번역사와 전담 조직이 여럿 있고, 체계도 잘 잡혀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특히 동시 통역을 할 때 항상 통번역사 두 명이 배정돼 번갈아 진행할 수 있는 등 업무를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하고요.
원지원: 번역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번역사 분들이 따로 있어서 이분들이 작업한 번역물을 보고 많이 배울 수 있어요. 물론 이렇게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같은 직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기도 하고요.
이경호: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과 달리 인하우스 통번역 조직에서 일할 때 느끼는 소속감이 굉장히 커요. 덕분에, 텍스트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대신 최종적으로 펍지 스튜디오 프로덕트가 더 성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업무의 방향성을 두고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결국 프로덕트가 잘 되는 것이 우리 조직의 목표이기도 하니까요.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의 통번역사는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한데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원지원: 저는 팀장으로서 매니지먼트와 실무를 같이 하고 있어요. 크래프톤 산하의 해외 스튜디오나 다른 통번역 조직들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새로 들어온 통번역 업무 요청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해요. 일정을 조정하거나 통번역사들에게 새로운 업무를 배정하기도 하고요.
김동민: 지원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해외 스튜디오와의 협업이 잦은데, 예상치 못하게 통번역사로 배정됐던 회의가 취소되거나, 갑자기 새로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일어나자마자 스케줄 확인부터 하곤 해요. 비는 시간에는 번역을 하거나 다음에 통역해야 할 회의의 주요 내용을 미리 공부하기도 해요.
이경호: 출근하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사내 식당에서 아침부터 먹어요. (웃음) 저도 자리에 앉으면 새로 들어온 번역 요청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예요. 우리 회사의 다른 많은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저희 Translation 실도 프로젝트 관리 프로그램 ‘JIRA (지라)’를 쓰고 있어요. 이메일로 들어온 요청은 JIRA에 자동으로 등록되는데, 혹시 빠진 건 없는지 한 번 더 체크합니다. 이후엔 사내 메신저 자동 번역 시스템이 번역한 텍스트 메시지에 오류는 없는지 검수하기도 하고, JIRA 티켓을 비롯해 매우 다양한 포맷의 여러가지 문서를 번역합니다.
펍지 스튜디오에서 개발자들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내용이 주로 전문적인 분야인 만큼 통번역 업무를 위해 공부하거나 준비할 게 많을 것 같아요.
김동민: ‘배틀그라운드 만든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이 게임을 잘 하는 건 아니예요. (웃음) 그래서 배틀그라운드를 공부하려고 따로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공부를 계속 하고 있어요. 저희가 업무를 할 때 외부에도 많이 알려진 해외 스튜디오 소속 외국인 구성원 분들을 통역해야 할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면 이전에 이분이 외부에서 발표나 강연한 영상을 찾아보고 말하는 스타일을 참고하기도 하고요, 회의나 발표에서 다룰 주제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합니다.
이경호: 통역에서 ‘말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면 번역은 ‘문서의 목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가볍고 위트 있는 문체로 쓰인 패치 노트를 라이트하게 번역하고, 프로젝트 진행 관련 중요한 내용이 담긴 JIRA 문서들은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하여 번역하죠. 그래서 처음에는 각 문서의 목적을 학습하고 관련된 예전 문서도 많이 봐야 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가 번역하는 내용과 관련된 게임도 실제로 해봐야 돼요. 그래야 개발자 분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말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펍지 스튜디오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내 행사 ‘플레이데이’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도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일찍 죽을 때가 많지만요. (웃음)
원지원: 통역을 할 때 어떤 스타일의 통역을 기대하시는 지가 다들 달라요. 어떤 분들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는 꼼꼼한 통역을 원하시고, 어떤 분들은 커뮤니케이션하는 내용을 스스로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기에 중요한 부분 위주의 통역을 기대하시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잘 파악하고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통역하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개발자 분들의 커뮤니케이션인 만큼 다루는 내용이 쉽지는 않아서 저도 따로 공부도 많이 하고 있어요.
‘게임 전문가’들의 대화를 통번역하시다 보면, ‘나도 게임을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김동민: 네 맞아요. 배틀그라운드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실제로 꽤 많았어요. 제가 들어갔던 펍지 스튜디오 회의 중에 건플레이에 관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어요. 개발자 분들이 탄속이나 궤도, 반동에 관해 열띤 대화를 나누는데, 제가 배틀그라운드를 더 잘했더라면 통역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지원: 저는 기존에 게임 자체를 많이 안 해봐서 처음에는 대화 중에 등장하는 게임 이름 같은 고유명사를 캐치하는 게 조금 어려웠어요. 개발자 분들은 다들 게임을 잘 아시니까 정말 다양한 게임 이름들을 캐주얼하게 언급하시는데, 잘 모르는 입장에서 처음엔 그게 게임 이름인지 게임사 이름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던 적도 있어요. 이런 것들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웃음)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에서의 경험이 통번역사로서 본인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느끼고 있나요?
이경호: IT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던 사람으로서 개발 전반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저처럼 IT에 관심이 많다면 안티치트, 아트, 코딩 등 개발의 여러 부문을 넓게 그리고 깊게 다룰 수 있다는 게 분명 매력적인 요소가 될 것 같아요.
김동민: 크래프톤/펍지 스튜디오는 해외에 있는 카운터파트, 해외 스튜디오들과 업무를 글로벌하게 많이 하고 있기도 하고, 원격으로 일하는 문화도 자리잡고 있어서 원격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툴과 시스템을 다양하게 쓰는데, 통번역사로서 이런 것들을 다채롭게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이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툴이 나오면 회사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 통번역에 필요한 기자재도 정말 높은 수준으로 구비되어 있어요. 이렇게까지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회사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원지원: 게임 개발자들을 주로 통역하고 있지만,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큰 자산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에 관한 통역을 할 때는 게임과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하고, 언리얼 엔진에 관한 통역을 할 때는 테크에 대한 학습이 필요해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만큼 스스로 성장할 수 있죠. 언젠가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여기서 오래 일하면 어디를 가더라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다들 그러더라고요, 여기가 제일 좋은데 어디를 가냐고요. (웃음)
통역이라는 업무의 특성상 준비를 많이 해도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이 종종 생길 것 같아요.
김동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줄임말을 사용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가끔 모르는 말이 나오기도 해요. 입사하고 처음 들어간 회의에서 한 한국인 개발자 분이 ‘키마가 안 됩니다’라고 하셨어요. ‘키마’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함께 줄여 부르는 말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줄임말이나 개발자 분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용어들이 통역할 때 가장 까다로운 것 같아요.
원지원: 팬데믹 전에는 지금에 비해 순차통역이 많아서 회의실에 통역사가 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우리 회사에서 영어를 잘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아서, 제가 통역할 때 모두가 저를 쳐다보는 환경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어요. (웃음) 물론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고, 팬데믹 이후 최근 2년간 많은 회의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돼서 그런 경우가 줄기는 했어요. 커뮤니케이션 툴이나 시스템의 힘을 빌려 많은 업무가 동시 통역으로 전환되기도 했고요.
펍지 스튜디오에는 ‘로컬라이제이션 (Localization/L10N)’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따로 있고, 여기서도 번역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Translation 실에서 하는 번역 업무와 L10N 업무는 어떻게 다른가요?
이경호: Translation 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개발자들이 업무 상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도록 통번역을 지원하는 업무를 해요. 그 과정에서 번역이 필요한 용어나 피처가 있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도 하죠. L10N은 대중에게 공개되는 용어나 표현을 관리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최종 결정을 해요. 저희가 원문의 의도에 가깝게 번역해서 L10N 담당 조직에 전달하면, 여기서는 대중이 어떤 것에 주목하도록 만들지에 더 포커스를 두고 수정 작업을 진행하는 식으로 함께 일하기도 하고요.
크래프톤/펍지 스튜디오는 글로벌하게 업무를 하는 조직들이 많아 구성원들을 만나 보면 통번역사들의 든든한 지원에 고마움을 표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이런 부분을 직접 느끼나요?
김동민: 회의 마치기 전에 항상 담당 통역사 이름을 언급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늘 기억에 남고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경호: 펍지 스튜디오에서 매달 구성원 간 소통과 정보 공유를 위해 진행하는 ‘올핸즈미팅 (All-Hands Meeting)’ 같은 회의에서 개발자 분들이 통번역사들 덕분에 일을 잘 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하시면 그 때 보람이 느껴지죠.
원지원: 우리 회사에는 영어에 능숙하신 분들, 통역이 불필요한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각자 할 일을 하는 거니까 저희가 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다들 고마워하고 계신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Translation 실이 없으면 커뮤니케이션도 안 되고 게임도 못 만든다, 펍지 스튜디오 개발의 중요한 일부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계세요. 그런 말들이 정말 힘이 되죠.
앞으로 통번역사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이경호: 입사 초기에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 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어디에서 일하든지 가장 잘 텍스트를 파악하고 번역할 수 있는 번역사가 되고 싶어요.
김동민: 기계 통번역이 많이 발전했지만 그래도 사람 통번역사가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목표는 은퇴 전까지 통번역 툴보다는 퀄리티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겁니다.
원지원: 통번역사는 말만 옮기는 게 아니라 뉘앙스나 의도, 감정까지 파악을 해야 돼요. 말에 담긴 마음까지 전달하는 따뜻한 통번역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려고 항상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고요.
김동민: 경호 님과 저는 지금 밥그릇 얘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따뜻한 이야기를 하시면 반칙 아닌가요?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통번역이란?
김동민: 통번역이란 ‘회의 주제에 대해 비전문가지만 최대한 전문가가 되기’라고 생각해요. 회의에 들어가면 참석자 중에서 제가 그 주제에 대해 가장 비전문가예요.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잘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매끄러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공부도 하고 많이 노력하게 돼요.
이경호: 저에게 번역은 ‘재미있지만 엔딩이 없는 게임’과 같아요. 번역이 재밌기는 한데 끝내도 끝낸 것 같은 기분은 잘 안 들거든요. 나중에 다시 보면 고치고 싶은 게 생기고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계속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원지원: 개발자 분들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우리 펍지 스튜디오 Translation 실의 일을 저는 ‘마법’과 같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