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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vs. 게임, 최강의 무기는?

현존 최강의 무기는 무엇일까요? 지상의 왕자라 불리는 현대식 전차? 첨단 장비로 무장한 최신형 전투기? 아니면, 단 한 발만으로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전략 핵무기?

현실 속 ‘최강의 무기’로 거론되는 것들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최신 기술을 활용해 – 적을 단숨에 날려버리면서도 – 그 자신은 안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온라인 게임 속 최강의 무기는 현실의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테라’의 고룡무기, ‘리니지’의 집행검, ‘와우’의 아케이나이트 도끼처럼, 많은 MMORPG 세계관 속 최강무기는 모두 화약 무기가 아닌 냉병기입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유저들 사이에서 전설을 넘어 로또라 불리는 아이템 중 하나
이미지 출처: 테라 인벤 페이지 캡쳐

‘냉(冷)병기’란 주로 화약을 쓰지 않는 날붙이를 말합니다. ‘화약 무기’로 대표되는 ‘열(熱)병기’, ‘화(火)기’의 반대 개념이죠. 현실 속 냉병기들은 총, 포 같은 화약 무기에 밀려, 실제로 쓰이기보다는 장군 임명식에서 수여하는 등 상징적인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세계에서 검과 창은 여전히 강력하죠.

물론 판타지 세계관에 ‘차르 봄바’ 같은 거대한 현대 무기가 등장하면 분위기가 좀 이상해질 겁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냉병기가 득세하는 온라인 게임의 세계는, 어쩌면 냉병기 그 자체를 위해 만들어진 세계이기도 하니까요.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재래식 폭탄 ‘차르 봄바’. 현실 속 최강 무기지만, 판타지 MMORPG에 등장한다면 글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게임 속에서 대규모 시스템이 필요한 대형무기는 불필요하다

현실에서 최강의 무기라 불리는 것들은 사실 단독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전차 한 대를 제대로 움직이려면 3~4인이 탑승해야 하고, 최신 전투기 한 대를 제대로 날리려면 수백 명의 관제사와 정비사가 필요합니다. 항공모함은 말할 것도 없죠. 핵무기라는 건 애초에 대규모 시스템 없이는 작동이 어려운 수준입니다. 실존 무기들은 대부분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것들입니다.

반면 온라인 게임의 플레이어란, 본질적으로는 개인입니다. 게임 속 무기는 개인이 자유롭게 휘두를 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최강의 무기를 사용하는데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부품을 하나하나 들고 모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어떨까요? 가끔 대규모 레이드 등에서 이벤트성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런 무기를 구하겠답시고 몇 날 며칠을 파밍하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매스 이펙트’의 결전병기 크루시블. 전 우주 유기체가 합심해야 하는 행성파괴병기지만, 몹 잡는다고 나올 것 같진 않다.
이미지 출처: 매스 이펙트 3 인게임 캡쳐

게임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플레이어 개개인에게 성취감을 제공하려 합니다. 세계관 내에서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무기와 장비는 그 성취감의 결정체라 할 수 있겠죠. 온라인 게임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일대일로 대응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세계관 최강의 무기 역시 개인 병기로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터’가 부여하는 무력과 권위, 그리고 상징성

하지만 ‘총’ 역시 개인 병기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온라인 게임이 냉병기 시대에 기계공학적 펑크 요소를 가미한 세계관을 차용하고 있죠. 그래서 총기류도 종종 개인 병기로 등장하곤 합니다. 그러나 판타지 기반의 MMORPG를 떠올려 봅시다. 판타지 세계 속 최강의 무기가 총기류라면 뭔가 어색하죠. 이건 현실에서 냉병기가 차지하는 의미와 어느 정도 통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장성급의 임명식에서는 ‘무력지휘의 상징’으로 검을 수여합니다. 이 검은 실제로 전장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용도가 아니죠. 군대를 직접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이자 상징입니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그 의미는 유사합니다.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이 들고 있는 검 역시 지휘권을 표현한 수단에 가깝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강력한 검! 온라인 게임 세계관 속 최강의 검은 실용적이면서도 동시에 상징적입니다. 강력한 맥뎀(최대 데미지)과 크리티컬(치명타) 확률, 여기에 부차적으로 붙는 여러 효과가 실용적인 이유라면, 그 검에 붙은 이름값과 디자인은 꽤 상징적입니다. 특정 게임 속 명검을 쥐는 순간 플레이어는 게임 데이터가 부과하는 강력한 수치뿐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검의 상징성까지 부여받게 됩니다.

판타지 속 검이 아니라, 검을 위한 판타지일지도

실용성과 상징성이 결합한 최강의 무기. 어쩌면 게임 속 냉병기는 세계관보다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쉽게 말해, “중세풍 판타지 게임이니까 검과 창이 최강이지”가 아닌, “검과 창이 최고인 세계를 위해 중세풍 판타지가 필요하지”라고 볼 수 있겠지요.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는 화려한 검술을 자랑하는 적을 주인공이 권총 한 방으로 쓰러뜨리는 웃지 못할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현실에서의 냉병기 퇴조를 코믹하게 그려낸 이 장면은, 새로운 무기의 시대를 시사하는 명장면이기도 하죠. 비록 현실 속 냉병기는 그 힘을 잃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게임 속에서는 시퍼런 날처럼 살아 숨 쉬는 모양입니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grolmars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