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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로얄 장르 게임이 대성공한 이유

‘배틀로얄’이라는 말이 게임 시장에서 유행어로 등극한 지는 3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행하기 전 배틀로얄이라는 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일단 대세의 흐름을 탄 뒤, 배틀로얄은 대다수의 FPS(First Person Shooting : 1인칭 슈팅), TPS(Third Person Shooting : 3인칭 슈팅) 장르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개념으로 자리잡았죠. 배틀로얄은 무엇이고, 왜 대세가 되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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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로얄’ 이전의 ‘배틀로얄’

대중매체에서 본격적으로 배틀로얄이라는 말이 유행한 시기는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엽 즈음입니다. 그 전에도 미국의 프로레슬링에서 배틀로얄이라는 경기 규칙을 사용하는 ‘로얄럼블’을 통해 알려졌죠. 하지만 매체 전반에서 배틀로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타가미 코슌의 소설 『배틀로얄』이 흥행을 일으킨 시점부터입니다.

WWE 로열럼블 이미지
배틀로얄’ 규칙은 미국 프로레슬링에서 단체로 링 위에 올라가 최후의 생존자를 가리는 ‘로얄럼블’을 통해 알려졌다.
이미지 출처: WWE홈페이지

소설 『배틀로얄』 의 인기를 등에 업고 동명의 영화 「배틀로얄」도 개봉했습니다. 소설처럼 절해고도에서 수십 명의 청소년들을 가둬 놓고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각자 전투를 벌이는 내용이었죠.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한편, 다소 잔혹한 총기 사용과 무척이나 실험적인 스토리텔링이 우경화되어가는 일본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의견도 있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소설과 영화에 나온 배틀로얄 개념은 게임의 규칙으로 인용하기 아주 좋은 방식입니다. 하지만, 막상 배틀로얄의 개념을 적용한 게임을 만들기는 어려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 접속하여 원활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술과 인프라 구현이 어려웠을 겁니다. 네트워크 기술의 고도 발전이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20세기 말의 아이디어는 본격적으로 게임의 공간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일본 영화 배틀로얄 포스터
영화 ‘배틀로얄’은 21세기 초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콘텐츠였다. 이미지 출처: IMDB

50%가 아닌, 1%가 주는 묘미 – 기대 승리확률

밀리터리 액션 게임 ‘ARMA’시리즈의 모드로 제작된 DayZ모드가 PVP에서 큰 인기를 끌고,  ‘ARMA 3’을 기반으로 브랜든 그린이 제작한 ‘Player Unknown’s Battle Royale’이 본격적으로 배틀로얄의 룰을 표방한 게임으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배틀로얄 규칙의 게임적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죠. 여러 과정을 거쳐 브랜든 그린은 한국의 블루홀과 손잡고 스탠드얼론 배틀로얄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해, 마침내 2017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PUBG’(이하 ‘배틀그라운드’)가 탄생합니다.

배틀그라운드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좁은 맵에서 제한된 인원들의 데스매치 등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FPS/TPS와는 확연히 다른, 광활한 맵에서 100명의 사람과 생존경쟁을 펼친다는 컨셉은 간만에 닥쳐온 신선함의 파도였습니다.

이 성공의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거론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기대 승리확률’일 것입니다. 현대의 대전형 온라인게임들은 대체로 정해진 규칙 안에서 참가자들을 아군 – 적군으로 구분한 뒤, 두 팀의 기대승리확률을 50:50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한 사람만 계속 승리하거나 패배하면 게임의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랭킹 등을 활용해 최대한 기대승률을 50%로 맞추지만, 그 속에서도 연승과 연패가 나타나며 연패자의 기분은 그리 즐겁지 못합니다.

하지만 배틀그라운드는 솔로 플레이의 기대 승리확률이 1%입니다. 50%의 승리 기대를 하고 들어오는 게임들과 달리, 이 게임은 애초부터 낮은 승리확률로 시작하기에 플레이어들의 기대가 높지 않습니다. 4인 1조의 스쿼드 플레이도 기대승리확률이 4%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치킨을 먹지 못해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죠. 역으로 1%의 확률을 뚫고 치킨을 달성했을 때의 쾌감과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배틀그라운드는 5:5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재미의 영역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배틀그라운드 치킨 스크린샷
배틀그라운드의 기대승률은 매우 낮기 때문에 플레이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없으며, 치킨 달성 시 짜릿함을 배가시킨다.
이미지는 필자의 첫 듀오 치킨 스크린샷.

‘졌지만 잘 싸웠어!’를 향하는 플레이어들

배틀그라운드의 대성공 이후 수많은 게임이 배틀로얄 게임 규칙을 적용하면서 경쟁자로 나섰습니다. ‘배틀그라운드’ 역시 안주하지 않고 여러가지를 개선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본섬 지도 ‘에란겔’ 업데이트입니다.

배틀로얄 장르의 선구자로서 배틀그라운드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좀 더 편리한 인터페이스, 다양한 무기와 환경도 있겠지만,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은 ‘에란겔 업데이트’가 배틀로얄 장르 게임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의 이정표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더욱더 생생해진 환경, 더 많은 전술적 은·엄폐물, 더욱 풍부한 아이템 확보가 가능해진 전술 환경에 반응했습니다. 간혹 열심히 낙하했지만 막상 먹을 템이 없어 방황하다 죽는 경우, 딱히 숨을 곳이 없어 들판의 사슴마냥 총만 맞다 끝나는 무력한 경우들이 조절되었죠.

새 에란겔은 1%의 기대 승리 값으로 성공한 게임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이른바, ‘졌지만 잘 싸웠어!’라는 느낌을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이 달성된다면, 배틀로얄 장르 게임은 치킨 없이도 후회 없는 한판으로 게이머들에게 사랑받을 것입니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grolmars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