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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맛있게요? 게임 속 음식들

‘먹고사니즘’이라는 신조어에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일’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음식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이지만, 사람의 먹거리는 단지 먹고 사는 용도에만 그치지 않죠.

같은 칼로리, 같은 영양소라도 우리는 새로운 것,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합니다. 맛과 향, 모양과 색깔, 먹는 방법과 과정은 생존의 영역을 넘어 문화적 영역, 그리고 삶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게임에서 음식이 가진 여러 가지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내곤 합니다. 디지털 공간이라 실제로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게임 안에 음식이 나오는 것이야말로 음식의 의미가 폭넓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점수를 ‘먹는’ 초창기 게임

초창기 아케이드 중심의 게임 속에서도 음식은 자주 등장합니다. 최근까지도 오락실 한쪽에서 발랄한 BGM을 뽐내는 고전 아케이드 플랫포머 게임 ‘버블보블’을 기억하시나요? ‘보글보글’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게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아이템은 모두 음식입니다.

체리, 바나나, 사과 같은 과일들은 주로 점수를 획득하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일정 점수를 넘어가면 추가 기회가 주어지고, 하이스코어 경쟁 게임이라 스테이지 안에 쏟아지는 음식을 다 챙기는 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거품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사거리를 늘려주는 아이템은 사탕의 형태입니다.

버블보블’에서 획득하는 대부분의 아이템은 과일 등의 음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아케이드 게임아카이브 Giantbomb

고전 아케이드 게임에서 음식은 주로 점수 축적 기능을 합니다. 무언가를 먹는 행위, 혹은 식품을 획득하는 행위가 일종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손손’이나 ‘너구리’ 같은 게임에서도 점수 획득은 음식 아이템을 ‘먹는다’는 표현으로 이야기되곤 했습니다.

캐릭터의 체력을 책임진다! ‘회복’의 음식

한편 게임 캐릭터에게 체력 바가 생기면서 음식의 의미는 더 다채로워집니다. 이번에는 90년대 오락실 게임 ‘파이널 파이트’를 볼까요? 거리의 불량배들과 싸우는 횡 스크롤 격투 게임 ‘파이널 파이트’에서 음식은 줄어든 체력을 보충하는 매우 유용한 아이템이었습니다.

그 이전 게임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음식의 의미가 확장되었다는 겁니다. 한 대 맞으면 바로 게임오버이던 시절을 넘어, 플레이어 캐릭터에 체력이 붙으면서 말 그대로 음식을 먹어서 체력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파이널 파이트’에서 상자나 쓰레기통을 부숴서 나오는 바비큐나 햄버거를 먹어 체력을 채우는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음식으로 체력을 채운다는, 직관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개념은 실제로 우리가 음식과 체력을 연계해 생각하는 현실로부터 비롯된 개념입니다.

체력 개념이 생기면서 음식은 줄어든 체력을 회복시키는 기능을 포함했다. ‘파이널 파이트’에는 햄버거, 바비큐, 커피 등 온갖 음식들이 등장한다. 이미지 출처: 게임 공략 블로그 rq87

‘삼국지 천지를 먹다’에서는 아예 보너스 스테이지로 만두, 고기 빨리 먹기 미니게임도 등장합니다. 물론 이 게임에서도 음식으로 체력을 채우지만, 과거 게임의 전통인 ‘음식=점수‘ 개념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습니다. 체력이 100%인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높은 점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그 의미는 이어졌습니다. 오히려 하이스코어를 노리는 플레이어들은 체력 용도로 음식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죠.

같은 횡 스크롤 게임 ‘천지를 먹다’는 보너스 스테이지가 먹방 대결로 등장한다.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만들고, 팔고, 나누고… 온라인 게임의 음식

MMORPG에 이르면 음식은 또다시 진화를 거듭합니다. 플레이 어드밴티지를 제공하는 일종의 ‘버프’ 기능, 거래와 교류로서의 커뮤니티 아이템 기능입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의 롤플레잉에서 음식은 사냥 중 줄어든 체력이나 마나 같은 스탯을 보충하는 기본적인 기능 외에도 공격력이나 방어력을 올려주는 추가 기능을 제공합니다. 특정한 음식을 먹어서 스탯을 올리는 일이 고난도 공략에서는 필수 요소로 자리했죠.

그리고 이런 음식들은 온라인 시대를 맞아 거래 가능한 아이템이 되기도 했습니다. 게임 시스템이 제공하는 음식이 아니라, 특정 캐릭터가 자신의 스킬로 만들어내는 음식은 더욱 강한 스탯 효과가 있고, MMORPG의 상거래에서 주요한 거래품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음식을 같이 먹는 일도 현실처럼 교류의 장이 됩니다. ‘마비노기’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여러 플레이어가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사람들은 마치 실제 식사 모임처럼 잡담을 나누거나 아이템을 거래하는 등 캠프파이어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온라인 게임 시대에는 음식 아이템 거래와 교류라는 온라인 특유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었죠.

먹지 않으면 죽는다! 생존게임과 음식

현대 생존형 게임에 이르면 음식은 좀 더 실존적인 면모로 변화합니다. 그 전까지의 음식이 ‘먹으면 좋은’ 것이었다면, 생존게임의 음식은 ‘먹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 됩니다. 캐릭터들은 포만도나 허기 같은 배고픔의 개념을 가지고 있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캐릭터가 죽는 페널티가 생겨났습니다.

‘굶지 마!’ 같은 게임은 아예 그 포만도의 중요성이 게임 제목까지 치고 올라온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말 그대로 이 게임에선 안 먹으면, 죽습니다. 허기가 계속되면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력이 약해지며 헛것이 보이고, 결국 굶어 죽습니다. 생존게임에서는 살기 위해 음식을 구하는 것이 플레이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굶지 마!’의 게임플레이는 대부분 먹는 문제 해결로 귀결된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외부 위협에 대비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다.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 이미지 출처: 클레이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음식의 다양한 의미가 드러나는 게임 속 세계

많은 게임은 플레이어들의 쉬운 적응을 위해 현실의 원리를 게임 안에 녹여냅니다. ‘재산으로 축적한다, 먹어서 휴식하고 회복한다, 거래하고 교류한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등 게임은 현실 음식이 지닌 여러 면모를 포착해 왔습니다. 필수품을 넘어 다양하게 활용되는 음식의 의미는 어쩌면 각각의 게임 속에서 더욱 명확해지기도 합니다. 비록 그 맛은 못 느낄지라도요.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grolmars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