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회사 사람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피플온] 시리즈에서는 크래프톤 직원들의 이모저모를 낱낱이 살핀다.
게임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그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단 하나의 게임은 무엇일까? 누구보다 게임을 사랑하는 크래프톤 직원들에게 당신의 인생 게임은 무엇인지 질문해봤다.
[마비노기]
2003년 13살 때 마비노기 오픈 베타 서비스를 접했어요. 매번 이 게임 저 게임 옮겨 다니다가 처음으로 애정을 갖고 정착한 게임이었죠. 당시 국내 MMORPG 대부분은 ‘노가다’로 불리는 반복 행위를 통한 성장이 게임의 주 콘텐츠였어요. 캐릭터마다 직업을 정하고 육성법에 따라 스탯을 찍는 일종의 ‘테크트리’가 있었죠. 그것을 벗어나면 ‘망캐’라는 낙인이 붙었어요. 현실에서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여기는 것처럼요.
마비노기는 레벨이 절대적 지표가 아니었어요. 인터넷에 육성법을 물어봐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가 모든 유저의 답변이었죠. 배우고 싶은 스킬을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을 했어요. 전투 대신 종일 캠프파이어 켜 놓고 악기만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마을에 앉아서 채팅만 하는 사람도 많아서 ‘3D 채팅 게임’이라는 별명도 있었어요.
그때 느꼈던 것 같아요. 길이라는 건 꼭 정해진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찾기 나름이라는 걸요.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자는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 게임입니다. 스튜디오W 윤형기
[철권]
재미있는 게임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락실에서 했던 철권입니다. 중학교 때, MBC GAME에서 방영한 ‘철권열전 – 내일은 어디냐?’ 드라마(?)를 보고 철권 5를 접했는데요. 당시 오락실에 일진들이 많아서 그들과 붙게 되면 일부러 져주고 집에 갔습니다. (계속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철권을 한 건 철권 6부터인 것 같습니다.)
‘텍센(테켄센트럴)’이라는 커뮤니티를 알게 되어 그곳에서 철권 관련 정보를 습득하고 철권 팀에 가입도 했어요. 주말마다 지인과 서울 그린게임랜드에 가서 밤샘 철권하고, 타지역 유저들과 배틀도 하며 친목을 다졌습니다. (게임에서 지면 동전 걸어 놓고 대기했던…) 그리고 TV에서만 보던 ‘무릎’이라는 유저와 붙었었는데 한 대도 못 때려보고 패배한 기억도 있네요.
지금도 가끔 집과 회사 콘솔 룸에서 즐기고 있습니다만 예전처럼 오래는 못 하겠더라고요. 그때가 제 철권 리즈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테라 본부 장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고2 때, 오픈 베타 시절 와우를 처음 접했어요. 현재는 플레이하지 않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최상위권 실력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MBC GAME에서 열린 PVP 대회에도 나갈 정도로 즐겁게 플레이했습니다.
웃픈 경험도 있는데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버그에 걸렸습니다. 버그 때문에 탈것을 타지 못해 6개월 동안 늑대 정령으로 플레이했네요. 그 보상으로 해골군마를 받아 타우렌 종족 최초 남작마가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왜 이런 버그를 못 찾는 거지?’라는 의문이 생겼고, 내가 직접 다양한 상황을 테스트하고 버그를 최소화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QA로서 되돌아보면, 당시의 버그는 타이밍 이슈로 정말 발생하기 어려웠던 버그라는 생각이 듭니다.) QA 본부 아돈
[날아라 슈퍼보드 환상서유기]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사주셨던 게임 CD였어요. 개연성 있는 스토리와 독특한 캐릭터와 아이템, 맵에 숨겨져 있는 비밀 장소 등 재미있는 요소가 아주 많았어요. 비록 IMF 때문에 게임이 미완성인 채로 출시되었지만, 지금도 가끔 플레이하고 있고 리메이크되면 꼭 사고 싶은 게임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게 게임을 즐기는 법을 알려준 작품입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친구들 따라 게임을 했어요. 하지만 환상서유기는 혼자 스토리를 깨는 게임이라, 친구들의 속도를 따라갈 필요 없이 게임과 1:1 독대하게 되었죠. 처음 스토리를 진행했을 때, 놓친 이벤트가 있다는 걸 알고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했어요. 그러면서 차츰 모든 맵과 NPC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개발자의 한이 담긴 말을 하는 NPC나 때릴수록 피해량이 4배가 되는 뾱뾱이, 빔샤벨을 사용하기위한 뉴타입증서 등, 숨겨진 요소를 발견하는 기쁨을 알게 됐죠. 게임 세계에 스스로 동화되면서 ‘게임 세상 속 어디에, 어떤 것이, 얼마나 존재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환상서유기의 영향으로 지금도 스토리 위주의 콘솔 게임을 즐겨 합니다. 게임 세상을 세세하게 뜯어보면서 즐기는 사람이 되었어요. DEV Hive 박예훈
[더 캐슬 엑설런트]
4~5살 때 아빠가 사 오신 가정용 게임기가 제 게임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유치원 때의 기억인데요. 어느 날 자정에 아빠가 깊이 잠든 저를 깨워서 이것 좀 보라며 게임의 엔딩을 보여주셨어요. 바로 ‘더 캐슬 엑설런트’라는 게임이었습니다.
당시 매우 어려운 게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빠가 공주와 결혼하는 엔딩 장면을 보여줬던 게 감동적이었어요. 언니와 함께 아빠 대단하다고 추켜세웠을 때 자랑스러워하던 아빠의 표정, 엄마의 핀잔, 하나하나 소중한 추억입니다. DEV Hive 김혜진
MUD 게임 [무한대전]
고등학교 때 PC 통신 접속했다가 알게 된 게임입니다. 늘 이것만 하다가 전화 요금이 많이 나와서 무료로 게임 해보겠다고 우체국이나 전화국에서 제공하는 PC 통신을 이용했어요. 그러다 눈치가 보여서 모 대학 컴공실로 갔어요. 해당 대학 학생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복 입고 대학생인 척하고 들어갔죠.
거기서 무한대전 게임 하다가 컴공실에 있는 대학생 오빠들과 친해졌어요. 철권, 스타, 레인보우 식스 등 제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같이 게임을 했어요. 무리 중 한 명이 게임 개발자가 되겠다고 했는데, 저는 당시 게임 개발자가 될 생각은 전혀 못 했기에 놀랐었죠. 그때 최초로 게임 관련 학과가 생겨나는 시기였어요.
자연스럽게 저도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련 학과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지하게 고민한 것도 아니네요(…) 그래도 게임 개발자가 되기로 한 건 너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DEV Hive 결명자
[트릭스터]
초등학생 꼬꼬마 시절부터 대학생이 되고 서버 종료할 때까지 제 학창 시절과 함께한 게임입니다. 흥미진진한 에피소드, 아기자기한 도트 그래픽, 드릴 아이템으로 땅을 파서 아이템을 획득하는 시스템까지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당시 용돈 받으면 절반 이상을 문상으로 바꿔 트릭스터에 싹 다 부을 정도로 푹 빠졌었어요. 산더미처럼 쌓인 긁은 문상을 엄마에게 들켜 호되게 혼나기도 했죠. 초등학생 때는 게임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친구들과 오프라인에서도 게임 캐릭터 역할 놀이를 할 정도였어요.
서버 종료 소식을 들었을 때, 오랜 시간 함께한 자식 같은 캐릭터들과의 소중한 추억들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서운함과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다시 서비스한다면 할 의향이 2000%입니다! QA 본부 김희연
[또 다른 지식의 성전 3부작]
안영기 님(SMGAL)이라는 프로그래머께서 93년 PC통신 동호회에 처음 게재한 후 3부작으로 완결시킨 게임 시리즈입니다. 저는 95년에 이 게임을 처음 접하면서 매우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저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인생 게임이란 말로도 부족한 그 이상의 무언가로 남아 있습니다.
울티마에 비견될만한 자유도, 게이머를 자극하는 적절한 난이도, 용두사미가 아닌 완결성 있는 서사, 무엇보다도 그 세계로 빨려들 것만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3부작을 관통하는 서사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필적하는 대서사시라고 감히 칭해 봅니다. 이후 수십 년간 수많은 게임을 접했지만, 그 어떤 게임도 이 게임의 이야기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게임 개발자가 꿈이었고, 중학교 때 제작한 비행 슈팅 게임을 통해 구 대표로 서울시 경진대회에 참가할 정도였기에 나름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요, 나중에 이 게임의 제작자가 저보다 겨우 몇 살 위의 학생이라는 걸 알고 나서 큰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도트 그래픽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게임 개발에 대한 열망을 더욱 불타오르게 해주었습니다. DEV Hive 이상문
[심즈 시리즈]
학창 시절 가장 오랜 기간 플레이했던 게임입니다. 10년가량 꾸준히 했죠.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쉬엄쉬엄하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심즈 2를 사주는 바람에 계속했어요. 성인이 된 후로는 심즈 3를 제일 많이 했네요.
확장팩 순서대로 설치해야 해서 옆에 CD를 쌓아 놓고 플레이했어요. 모딩 하다가 에러 나면 재설치 노가다하고… 당시 이런 게임을 만들어준 개발자들에게 정말 고마워하며 게임을 했어요.
심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의 집도 짓고, 평소에 시도하기 어려운 힙한 옷도 입을 수 있죠. 제가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는데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서 심즈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대리 만족했습니다.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벽장에 확장팩을 숨겨두셨었는데, 미리 발견해서 CD 알맹이만 몰래 빼서 먼저 플레이 헀던 기억도 있네요. (지금이라도 아시면 등짝 스매싱 당할 듯.) DEV Hive 정강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게임, 우리의 한 시절이 담긴 게임. 수많은 인생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인생 게임도 다양했다. 진심이 담긴 크래프톤 직원들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앞으로도 수많은 인생들을 [피플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
에디터 클토니: 게임 좋아해요. 게임 회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장인정신 넘치는 게임 유니온, 크래프톤 직원들을 탈탈 털어보려 합니다. 자칭 크래프톤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