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FTON

프로게이머가 게임 개발자 되면 생기는 일

* 게임 회사 사람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피플온] 시리즈에서는 크래프톤 직원들의 이모저모를 낱낱이 살핀다.

프로게이머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은퇴 후 게임 개발자가 되어버린 크래프톤 직원이 있다? 대체 어떤 사연인지 구 게이머 현 개발자 강서우 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소속과 성함, 하시는 일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스튜디오W 전투클라이언트팀 소속 강서우입니다. 팀 이름처럼 전투 관련 요소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유저들과의 교전, 몬스터 사냥, 스킬 사용과 그에 따른 연출 효과 등을 주로 개발합니다.

입사 전, 프로게이머로 활발하게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데뷔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동기는 단순해요. 어릴 때부터 ‘게임 대장’이었죠. 제가 중학교 때 ‘스타크래프트’가 나왔어요. 학교 대항전 같은 경기에 나가며 열심히 하다 보니, 좀 더 넓은 곳에서 경쟁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그때부터 이스포츠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중3 때 ‘워크래프트3’가 나왔고, 새로운 게임에 도전해보고 싶어 시작했죠.

과거 프로게이머 시절 강서우 님 (이미지 출처. bodnara)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그렇죠.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아요. 저는 프로게이머를 준비하면서 활동을 하는 동안 두 번의 허들이 존재했습니다. 첫 번째 허들은 아마추어 고수에서 프로가 되기까지였고 두 번째 허들은 프로에서 상위권 프로로 자리잡기 전까지 였습니다. 첫 번째 허들의 경우 노력으로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허들의 경우 재능도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허들을 넘는 경우는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소수에 불과하니까요.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에 주변에서 프로게이머 해도 되겠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었나요?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혼자 피시방에서 워크래프트3를 연습했어요. 집 컴퓨터는 워크래프트3 돌릴 만큼 좋지 않았거든요. 당시 워크래프트3는 유저들의 랭크가 매겨졌어요. 제 기억으로 그때 1,100위까지의 등수만 나왔는데, 제가 700위 정도더라고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무위키에 ‘강서우’ 항목이 있어요. 정독해보니 여성 팬이 많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사실인가요?

글쎄요, 기억이 안 나는데요.(웃음) 팬분들은 모두 똑같이 소중한 팬이고 딱히 성별에 의미를 두지 않아서 특별히 여성 팬 많이 계셨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연습형 or 천재형, 프로게이머 시절 어떤 선수셨나요?

연습량은 적고 다른 게임을 많이 한다고 대외적으로 알려졌었습니다. 연습량이 적었던 건 게을러서라기보다는 연습을 많이 하면 플레이가 연습한 틀에 잡혀버리는 개인적인 징크스 때문이었습니다. 정해진 플레이보다는 상황에 따른 유연한 플레이를 선호했죠. 그래서 당시 대회를 준비할 때 특정 상대에 대한 맞춤형 전략 보다는 랭킹 게임을 통해 유연함을 유지시키려고 했었습니다.

프로게임 판이 정말 치열했을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자리 잡기 전이었잖아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금이 더 치열하지 않을까요. 제가 프로게이머로 종사했던 장르가 RTS라 보통 1:1 개인전 형태의 경기가 주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팀 게임에 비해 개인 역량이 승패 결과에 영향을 주는 비중이 더 컸습니다. 한 판 한 판 경기의 승패에 따라 몸값이 변경된다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지금은 몸값이 정해져 있으니, 마음이 좀 편하신가요?

(웃음) 프로게이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이 당시보다는 상대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당시 매 경기마다 다가오는 부담감 대신 현재 종사하고 있는 일에서 오는 다른 종류의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요.

현재 크래프톤에서 게임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강서우 님

치열했던 프로게이머 시절을 거쳐 게임 개발자로 일하고 계시는데, 그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부터 게임 개발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군대 가기 1년 전 프로게이머 은퇴했어요. 전역하고 나서 앞으로 뭘 할지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러다 프로그래밍을 접했는데 제 성격에 잘 맞더라고요. 관련 공부를 해보니 응용 프로그래밍은 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게임 프로그래밍으로 방향을 잡았죠.

은퇴한 프로게이머분들 중에 방송하는 분도 있고,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한 분도 있어요. 당시 서우 님에게 개발자의 길 말고 다른 선택지도 있었나요?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는 1.5세대 프로게이머에 가까워요. 스타크래프트가 1세대죠. 당시 1.5세대 프로게이머들이 은퇴하고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이스포츠에 대한 인식도 아직 좋지 않았죠. 제게는 개발자와 게임 캐스터라는 선택지가 있었어요. 프로게이머 시절, 대회 측으로부터 종종 게임 해설을 요청 받았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선택하지 않았죠.

그럼 개발자로 방향을 정한 후, 프로그래밍을 독학하셨나요?

전역 후 처음 반년은 독학했어요. 그런데 개발자가 되는 방법은 많은데, 게임 개발자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더라고요. 수소문해서 게임 개발자를 육성하는 아카데미에 들어갔죠. 그 아카데미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수료 후 다시 반년 정도 독학을 했지요.

2년 남짓 공부하시고 취뽀하신 거네요?

그렇죠. 크래프톤이 첫 직장이에요. 보통 4년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친구들이 개발 일을 많이 해요. 그 친구들은 4년이라는 교육 과정을 밟는데, 단순 시간으로 계산해도 제가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들보다 시작이 늦어서 배로 노력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어떻게 입사를 하게 됐네요.

왜 하필 크래프톤을 선택하셨나요? 프로게이머 시절 하셨던 게임 제작사도 있잖아요. (웃음)

프로게이머 시절엔 워크래프트3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집중적으로 했지만, 사실 제가 MMORPG 장르를 무척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MMORPG가 클라이언트와 서버가 통신하는 형태의 장르에서 게임 기술의 집합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게임 제작사들의 비전들을 다 찾아봤죠. 현재 크래프톤의 전신인 블루홀의 비전이 ‘MMORPG 제작의 명가’였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게임을 라이브 중인 조직보다 개발 단계의 조직에 들어가서 많은 걸 배우고 싶었죠.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게 당시 블루홀이었습니다.

현재 개발자로 일하시면서, 프로게이머 경력이 도움이 될 때가 있나요?

프로그래머가 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게임 개발에는 도움이 돼요. 처음 크래프톤에 입사했을 때 개발자는 기획자의 문서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했죠. 실제로 일해보니, 기술적인 소양, 지식 외에 협업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게임 기획하는 분들 역시 저와 같은 유저 출신이고, 무엇보다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정답이 있는 분야도 아니고요. 게임 기획자분들이 주는 구현 문서에도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제안하는 게 무조건 정답도 아니죠. 하지만 게임을 잘 알면 더 좋은 방향으로 제안을 할 수 있어요. 함께 게임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분명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크래프톤 입사 후, 과거 워크래프트3만큼 크래프톤의 게임도 많이 플레이하시나요?

음… 거의 못 했고요. (웃음) 크래프톤의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 자체를 많이 하지 않아요. 입사 후에는 일을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커서 게임에 손을 떼고 지냈어요. 물론 내가 입사한 회사의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아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테라에 “인술사”라는 신규 클래스가 나왔던 참이라 인술사로 플레이했었습니다.

게임 제작자는 업무 때문에 게임을 의무적으로 할 때도 있잖아요. 서우 님에게 게임의 의미가 달라졌을 것 같아요.

우선 게임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죠. 프로게이머 시절에는 게임을 잘하고자 효율적 플레이 안에 대해 고민했다면, 지금은 기술적인 측면이 먼저 눈에 들어와요. ‘이 게임은 이걸 이렇게 처리했네, 우리 게임에 적용해도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죠.

게임을 하는 즐거움이 줄어든 건 아닌가요?

즐거움만 따지면 아무것도 모르고 유저로서 플레이할 때가 좋았죠. (웃음) 지금은 게임이 업이라서 단순 재미로 접근하기 어렵더라고요.

취미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 것도 같은데.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어요. 게임 보는 눈이 달라졌을 때, ‘내가 정말 변해버렸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래도 제가 제작하고 있는 게임에 기여할 수 있으니 괜찮아요.

나무위키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신다고 적혀있더라고요. 몰래 다른 게임 하시는 거 아니죠?

(웃음) 혹시 그 나무위키의 내용이 현재 진행형인가요?

아뇨. 문서 자체가 과거형이긴 했죠. (웃음)

와우는 제게 의미 있는 게임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빠진 MMORPG 게임이죠. 와우는 국내 MMORPG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프로게이머 시절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했는데, 당시 MMORPG에서 캐릭터의 직업과 역할이 체계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느낀 게임은 에버퀘스트, 와우였어요. 이 두 게임은 제게 특별하죠.

크래프톤 사옥에 피시방이 있어요. 직원들끼리 게임을 자주 한다고 들었는데, 회사에서 게임 실력이 독보적이신가요?

회사 입사 후 게임 플레이를 많이 줄여서인지 피지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요즘 게임을 하면 머리는 저기 있는데 몸이 안 따라가요. (웃음) 그리고 프로게이머라고 모든 게임을 다 잘하진 않아요. 전공하는 게임에 따라 잘 맞는 장르가 있죠. 저는 FPS 게임이 안 맞아요. RTS 게임을 하는 사람은 마우스의 무게를 가볍게 해요. 정교한 컨트롤보다 마우스를 빨리 움직이는 게 중요하거든요. FPS 게임은 조준점이 중요해서 마우스를 무겁게 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죠. 두 개가 아주 달라요. 저는 FPS 게임을 어지간한 사람보다 못합니다. 배그할 때 스트레스 정말 많이 받아요. (웃음)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프로게이머, 그리고 게임 개발자의 길을 다시 선택하실 건가요?

아마 그럴 것 같아요. 게임을 업으로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어요. 지금 일에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거든요.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이스포츠 시장은 매우 달라요. 상황도, 대우도 좋아졌죠. 그 시절로 돌아가서 프로게이머 다시 하는 건 좀 애매하네요. 대신 제가 만약 10년 늦게 태어났다면, 목숨 걸고 프로게이머 준비했을 것 같아요.

10년 늦게 태어났다면 크래프톤의 게임 개발자는… 안 하시는 건가요?

프로게이머 활동 좀 해보고 ‘이제 은퇴해야 하나?’ 싶을 때 다시 게임 개발자의 길을 가겠습니다. (웃음)

서우 님은 자신이 프로게이머, 그리고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된 건 필연이 아니라고 했다.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오니, 과거의 경력이 현재의 가산점이 되었다고. 필연적인 직업은 없지만, 최선의 선택을 하며 걸어온 길은 누구에게나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걸어온 각자의 길을 [피플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

에디터 클토니: 게임 좋아해요. 게임 회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장인정신 넘치는 게임 유니온, 크래프톤 직원들을 탈탈 털어보려 합니다. 자칭 크래프톤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