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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제 꼬집는 ‘시리어스 게임’

게임에는 주홍 글씨가 따라붙습니다. 흔히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손쉽게 지목되곤 하죠. WHO의 게임 이용 장애를 둘러싼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게임을 향한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게임은 사회와 동떨어진 방구석 문화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 코끼리를 논할 수 없듯, 인터넷 도박 게임만 가지고 게임의 중독성 문제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게임의 스펙트럼은 무궁무진하며, 게임에 대한 정의는 게임 수만큼이나 다양하죠.

사회 문제로 여겨지던 게임은 종종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이른바 ‘시리어스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은 전쟁부터 난민 문제까지 진지한 주제를 가지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난민 문제를 다룬 게임들

시리어스 게임은 단순한 재미보다는 특별한 목적의식을 담아 메시지를 던지는 게임을 말합니다.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카테고리는 교육부터 건강,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게임까지 매우 다양하지만, 이번에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게임들로 좁혀 다루겠습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난민 구호 활동을 다룬 게임 ‘푸드 포스’가 있습니다. 2005년 WFP에서 개발한 ‘푸드 포스’는 인도양에 위치한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헬기 등을 이용해 난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게임입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지역에 지원할 식량을 구입하고 운송·배급하는 미션을 수행하며 이용자가 실제 기근 문제의 심각성을 자연스레 알게끔 설계됐습니다.

난민 식량 구호 문제를 다룬 ‘푸드 포스’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국내에서도 난민 문제를 다루는 게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소규모 게임 개발팀 하드포크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21 데이즈‘는 시리아 난민의 생활을 체험하는 게임입니다. 서유럽 시리아 난민인 ‘모하메드 쉐누’가 돼 시리아에 남겨진 가족들이 유럽으로 올 수 있도록 21일 동안 여비를 송금하는 내용으로 구성됐습니다.

게임은 지난 2017년 스팀을 통해 출시됐습니다. 이용자들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등, 난민이 직면하는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시리아 난민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21 데이즈’ (이미지 출처. 게임 스크린샷)

승리가 아닌 생존이 목적인 전쟁 게임

전쟁은 시리어스 게임이 주로 다루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11비트 스튜디오에서 2014년 내놓은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게임들과 달리 전쟁에서의 생존이 목적인 게임입니다.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라예보 지역을 모티브로 한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전쟁 뒤편에 있는 민간인을 다룹니다. 전쟁 속 민간인에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레벨업 개념도 없죠.

전쟁의 참상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디스 워 오브 마인’ (이미지 출처. 11비트 스튜디오 유튜브)

장르는 어드벤처 방식 생존 전략 게임입니다. 민간인 캐릭터를 조작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존하는 게 게임의 목표입니다. 도구와 자원을 활용해 캐릭터들의 건강을 유지해야 하며, 군인들을 피해 정찰을 하면서 자원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민간인 생존자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을 도와줄 수도, 약탈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용자는 생존을 위해 행했던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면서 전쟁의 민낯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전쟁의 공포를 게임의 매체적 특성을 이용해 잘 나타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PC를 통해 출시된 게임은 좋은 반응을 얻어 모바일을 비롯해 PS4와 엑스박스 원, 닌텐도 스위치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됐습니다.

위안부 피해 문제 다룬 인디게임

최근 국내에서는 위안부 피해 문제를 다루는 게임이 개발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인디게임 개발사 겜브릿지는 게임 ‘웬즈데이‘를 올해 8월14일, ‘기림의 날’에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전세계 게임 이용자들에게 일본의 전쟁 범죄 피해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리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위안부 피해 문제를 조명한 ‘웬즈데이’ (이미지 출처. 겜브릿지)

‘웬즈데이’는 주인공 ‘순이’가 시간 여행을 통해 일본군 전쟁범죄와 관련된 단서를 수집하고 추리하는 3D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총 5번의 타임리프를 통해 1992년과 1945년을 오가며 단서를 모아 난징대학살, 위안부 피해 등 일본군이 은폐하려는 진실을 밝히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고 김복동 선생님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동료들을 꼭 구하고 싶다”라고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됐습니다.

개발사 겜브릿지 측은 “주인공 ‘순이’를 피해자에서 벗어나 동료들을 직접 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드러내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이야기하고자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최근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목표 후원금의 300%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는데요, 수익금의 절반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전시 성폭력 재발 방지 사업’에 기부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사회 문제로 여겨지던 게임은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게임은 다른 매체보다 탁월한 상호작용과 몰입 경험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죠. 게임은 이용자와 상호작용할 뿐만 아니라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시리어스 게임들은 게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죠. 게임의 면면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것. 게임에 대한 논의의 지평은 여기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