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운명이 찾아온 걸까, 운명을 찾아낸 우리인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이제 드디어 일곱이 만난다는 거다.”
방탄소년단(BTS)은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으로 성장했지만, ‘아미’가 아닌 필자인 저는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세계에 범접하기엔 너무 아재가 되어버린 탓일까요?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방탄소년단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의미가 “10대·20대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우리들만의 음악과 가치로 세상과 맞선다”라는 뜻이라는 것도요. 이는 게임 ‘BTS 월드’에 서서히 젖어 들었기 때문입니다.
BTS 월드처럼 요즘 이렇게 아이돌 IP를 내세운 다양한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는데요. 이들의 성공 공식과 장밋빛 미래를 함께 알아봅시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최근 K-문화 콘텐츠의 두 기둥으로 떠 오른 게임과 아이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입니다. 양 산업 간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인데요. 방탄소년단 IP(지식재산권)을 활용한 ‘BTS 월드’는 아이돌 IP 게임의 대표 주자입니다. 게임은 전반적으로 팬덤을 자극하는 요소로 채워져 있으며, 내용은 간단합니다. 자신이 직접 매니저가 돼 방탄소년단을 월드 스타로 성장시키는 게임이죠.
‘BTS 월드’의 이야기는 ‘아미(BTS 팬덤)’인 이용자가 BTS가 데뷔하기 전으로 돌아가 매니저가 돼 멤버들을 찾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 BTS의 데뷔 스토리를 담아냈죠. BTS가 7명인 줄도 몰랐던 필자가 ‘진’이 대학 생활을 하던 중 길거리 캐스팅이 됐다는 ‘찐’ 스토리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RM(랩몬스터)’의 본명이 김남준이라는 것도, 해산물을 싫어하지만 꽃게를 좋아한다는 것도요.
‘BTS 월드’를 시작한 지 1시간 뒤 TMI로 뇌에 과부하가 왔습니다… 그리고 2시간 뒤 BTS의 세계에 잠식되기 시작했는데요. 자꾸만 걸려오는 멤버들의 전화와 문자에 나도 모르게 설레기 시작했죠. 얼핏 보면 육성 시뮬레이션 같지만, BTS 월드는 텍스트 어드벤처에 가깝습니다. 선택지를 택해 멤버들과의 호감도를 올리는 식이죠. 일종의 ‘팬픽’ 같은 느낌이며, 육성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스토리의 줄기를 따라가면서 각 멤버들의 사진이 담긴 카드를 수집 및 업그레이드하고, 이를 활용해 다시 스토리를 여는 식이죠. 이 과정에서 BTS 영상과 사진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카드 ‘뽑기’가 시작되는데요. 스토리 후반부엔 좋은 카드가 없으면 진행이 힘들어집니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아미’로 활동하는 지인은 BTS 월드가 멤버들 말투 같은 디테일을 잘 살렸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팬들과 아이돌이 공유하고 있는 찐 스토리를 게임을 통해 다시 복기할 수 있죠. 이러한 게임은 자연스럽게 팬들이 커뮤니티에서 향유할 수 있는 놀이 소재가 됩니다.
콘서트, 사녹, 공방, 팬 사인회, 하이터치회 등 코로나19 때문에 팬들의 오프라인 문화가 제한된 요즘, 이러한 게임은 언택트 덕질을 가능하게 하는 단비인 셈이죠.
다양한 형태의 아이돌 게임들
아이돌 IP를 활용한 게임은 BTS 월드와 비슷한 류가 있고, 음악적 요소에 집중한 리듬 게임, 육성 요소에 집중한 게임 등이 있습니다. BTS 월드와 비슷한 게임으로는 ‘아이즈원 리멤버즈’가 있는데요. 이 게임 역시 이용자가 아이즈원의 데뷔 전으로 돌아가 매니저가 돼 아이즈원을 세계적인 아이돌로 육성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게임의 먼 조상님으로 2003년 출시된 ‘보아 인 더 월드’라는 게임이 있죠. 가수 ‘보아(BoA)’의 매니저를 맡아 월드 스타로 성장시키는 게임입니다.
아이돌 리듬 게임의 대표주자는 ‘슈퍼스타’ 시리즈입니다. ‘슈퍼스타’는 SM엔터테인먼트, JYP, 울림 등 다양한 연예 기획사 IP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리듬 게임 시리즈물입니다. 대충 음악에 맞춰 노트를 그려놓고 화면 겉핥기식 터치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플레이해보니 의외로 타격감이 좋아 놀랐죠. 노트에 맞춰 음악이 연주되지는 않지만, 노트 타이밍과 타격음이 어우러져 제법 리듬감 있게 게임이 구성됐습니다. ‘DJ 맥스’ 시리즈로 단련된 손가락도 춤추게 만들었죠. 비록 하드 모드에 무너지는 처연한 손짓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지만요.
‘월간 아이돌’은 실제 아이돌 그룹 IP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2D 도트 그래픽에 자신만의 아이돌을 만드는 육성 요소에 집중해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카이로소프트의 게임들을 연상시키지만, 한국의 아이돌 팬덤 문화를 반영해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죠. 팬클럽 이름이나 야광봉에 대한 선택지도 주어지는데요. 팬덤 문화를 잘 반영해 팬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콘서트만 돌리지 말고 우리 OO 좀 쉬게 해라, 뭣 같은 소속사”라는 대사처럼 팬들이 평소에 하는 말들, ‘아육대, 런닝맨, 아는형님’ 같은 아이돌의 스케줄, 탈퇴, 열애설 보도 등 사건 사고까지… 매우 현실감 있는 묘사 때문에 하이퍼 리얼리즘 게임이라고도 불렸습니다.
BTS 월드가 BTS의 스토리와 사진을 보며 즐기는 놀이라면, 월간 아이돌은 팬덤 문화 자체를 소재로 했습니다. 팬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현실 고증, 공감되는 스토리 진행에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죠.
아이돌x게임의 합종연횡은 계속된다
이처럼 최근 나타나는 아이돌 게임 문화는 굉장히 한국적입니다. ‘아이돌마스터’ 시리즈로 시작된 일본 아이돌 게임들이 2D 캐릭터와 덕후 문화의 필수 덕목인 ‘모에’ 요소에 집중한다면, 국내 아이돌 게임들은 실제 아이돌 그룹에 기반해 팬덤 문화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는 양국의 문화 차이에서 빚어지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문화의 주류가 현실 3D냐 2D냐 하는 점이 반영된 셈이죠.
K-팝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K-게임은 2019년 콘텐츠 산업 전체 수출액의 67.2%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콘텐츠 산업을 떠받치고 있죠. 아이돌과 게임은 단순 캐릭터 스킨 콜라보를 넘어 ‘아이돌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게임 산업은 기존 게이머가 아닌 새로운 이용자층을 유입시킬 수 있고, 아이돌 산업은 자신들의 팬덤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기에 아이돌과 게임의 만남은 필연적이죠. 중요한 건 둘의 만남은 이제 시작이라는 겁니다.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