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FTON

유저들이 벌인 게임 속 이상한 실험들

게임은 플레이 방법이 정해져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게임사가 최대한의 자유를 주겠다 약속하고, 게임의 특징으로 자유로운 플레이를 꼽지만 사실 게임사의 의도를 벗어나는 게이머는 그리 많지 않죠. 하지만, 그런데도 게임사의 의도와 정면으로 반하는 플레이를 하는 게이머들은 늘 툭툭 튀어나오곤 합니다. 이들로 인해 저물어가던 게임이 다시 생명력을 얻는 경우도 간혹 생기곤 하죠.
 
이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게이머들은 게임을 시험하기 시작합니다. 이 게임이 얼마나 잘 짜여 있는지, 이 게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에 들어가죠. 그렇게 시스템의 한계에 도전한 게이머들은 어느새 개발자만큼 게임을 잘 아는 게이머가 됩니다.
 
오늘 소개할 주제가 바로 이 ‘게이머의 시험’입니다. 게임의 한계를 테스트하기 위해 게이머들이 어떤 기상천외한 실험을 벌였는지, 그리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알아볼까요? 늘 같은 방식으로 게임을 즐겨온 분들에게, 이들의 시도는 퍽 흥미롭게 다가올 겁니다.

심의 체중 증가를 실험해보다
‘심즈4’
이미지 출처. 심즈4 공식 보도자료

2014년 출시된 ‘심즈4’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대표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시리즈 최초 공개부터 4편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데이트와 시스템 추가가 이뤄졌고, 오늘날의 ‘심즈4’에서는 탄생과 성장, 사랑과 야망,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모든 부분을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실제 생활 속 ‘좀 별로인 부분’도 닮아 있죠.
 
‘토끼’라는 한 블로거는 심즈4에서 꽤 독특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완전히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세 명의 심을 대상으로, 음식 배급에 차이를 두어 제한된 기간 안에 근육량과 체지방의 변화를 관측했죠. 그냥 밥을 많이 주거나, 주지 않는 일차적 발상에서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실험군과 대조군을 만들면서까지 말이죠.

이미지 출처. 닉네임 ‘토끼’님의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wlrwlrdl25

해당 블로거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최소한으로 갖춘 원룸을 만든 후, 음식 배급에만 차이를 줬는데요. 현실에서는 연구 윤리의 문제로 시행하기 어려운 실험이지만, 심들은 사람이 아니라 가능했습니다. 그 결과, 음식의 종류, 식사 패턴과 심의 비만도 간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데 성공해냈습니다.
 
또 다른 심즈 게이머는 최고 수준까지 살이 찐 심이 다시 살을 빼려면 얼마나 걸리는지를 실험했는데요. 샐러드 섭취와 운동만으로 나흘 만에 완전히 마른 심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죠. 실생활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게임 내 시스템에 대한 검증일 뿐이지만, 이 블로거의 능숙한 변인 통제와 학술적 접근은 많은 심즈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닉네임 ‘토끼’님의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wlrwlrdl25

 

파이리, 꼬부기, 이상해씨! 최강은 누구?
‘포켓몬스터 레드·그린’
이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KBS 뉴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이제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로 활용되고 있는 IP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포켓몬의 시작은 결국 게임이었고, 그 게임의 시작은 파이리, 꼬부기, 이상해씨로부터 시작되었죠. 지금도 1세대 포켓몬스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세 포켓몬 중 무엇으로 시작할지’가 변치 않는 고민거리입니다. 그런데, 사실 ‘정답’이 있습니다. 취향을 포기하고 오로지 성능으로 승부를 본다면, 셋 중 가장 유리한 포켓몬이 존재합니다.
 
‘Kyle Hill’이라는 한 포켓몬 게이머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그는 파이리, 이상해씨, 꼬부기 세 포켓몬과 이들의 진화체를 포함한 9종의 포켓몬을 기준으로, 1세대 포켓몬스터 게임에 나오는 모든 체육관 관장과 사천왕이 보유한 포켓몬 간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어떤 스타팅 포켓몬이 가장 강력한지 분석했습니다.

Kyle Hill의 모습 (이미지 출처. Nerdist 유튜브 채널)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를 과학 전문지인 ‘Scientific America’에 기고하는 대담한 행보를 보였죠. 실험 결과를 요약하면, 가장 강력한 스타팅 포켓몬은 꼬부기입니다. 무려 3개의 체육관을 대상으로 유리하며, 사천왕 중 하나를 대상으로도 유리함을 드러냈죠. 물론, 그래 봐야 스타팅 포켓몬은 취향의 영역이니 무조건 꼬부기를 고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후에도, ‘Kyle Hill’은 각종 영상을 통해 해당 실험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고, 이 영상은 1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Kyle Hill’은 포켓몬 외에도 여러 미디어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를 과학자적 시선에서 풀어가는 형태의 영상을 제작하며 많은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석기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까지
‘마인크래프트’
이미지 출처. 인게임 캡처

마인크래프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게임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핏 보기엔 ‘저 게임이 왜 재미있을까?’ 싶은 비주얼이지만, 마인크래프트의 핵심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마인크래프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사람들의 상상을 가뿐히 넘어섭니다. 게임을 하지 않은 이들이 으레 짐작하는, 3차원 가상 블록쌓기가 게임의 전부가 아닙니다. 게임 내에서 모드를 통한 회로 구성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명령어와 함수를 대입하는 것도 가능하며, 결과적으로 프로그래밍까지 가능하죠.

랜드마크 건설에 몰두하는 플레이어도 적지 않습니다 (이미지 출처. 인게임 캡처)

이미 수없이 많은 마인크래프트 고인물들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논리 회로 구성을 통한 기계식 계산기부터 컴퓨터, 간단한 게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죠. 컴퓨터, 룰렛 머신, HD TV 등,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인크래프트 내에서는 수많은 실험과 도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임의 한계를 넘는다’라는 의미에선, 확실히 가장 적합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분명 공성전 시뮬레이터였는데…
‘비시즈’
이미지 출처. 비시즈 공식 보도자료

마인크래프트와 유사해 보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콘셉트의 게임 ‘비시즈’는 상대 진영의 잘 갖춰진 방어 진지를 깨부술 공성 병기를 디자인하는 시뮬레이터 게임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게임이죠. 유압 자키, 동력 힌지를 비롯해 기계공학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부품이 나오고, 이를 일일이 사람이 껐다 켰다 하며 조종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비시즈의 배경은 중세입니다. 최초에 개발사가 예상한 건 기계식 투석기나 충각형 공성 병기, 초기 전차 정도였겠죠. 게이머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겁니다. 곧 게이머들은 나무판자와 거칠게 깎은 쇠붙이를 가지고 온갖 이상한 물건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이 정도도 ‘우와’하곤 했지만…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Play Games’)

몇몇 플레이어가 현대형 자동차와 전차를 만들어 자랑하기 시작하자 게이머들은 상상력의 한계 따윈 던져 버렸습니다. 돌로 쌓은 중세의 성을 상대로 전략 폭격기를 개발하는가 하면 거대 로봇과 강철로 만든 용들을 만들어 스테이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죠. 스테이지 클리어로는 재미가 없었는지, 개중에는 레이싱 게임이나 핀볼 게임을 만들어 게임 속 게임을 만드는 게이머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기본 부품으로 만족하지 못한 게이머들은 온갖 모드를 만들어 새로운 부품들을 만들었고, 지금은 ‘이게 그 게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출시 후 5년이 넘은 게임임에도 아직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계들이 쏟아지고 있죠. 비시즈 게이머들의 실험 정신은 아마 게임이 없어지기 전까진 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다른 게이머들도 즐거워할 수 있겠지요.

이제 이런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스팀)

어쩌면, ‘게임’에서 실험을 하는 건 의미 없는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만들어진 게임 시스템 안에서 시행하는 실험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그 게임 안에서만 적용될 뿐이니까요. 하지만, 진지함을 살짝 빼고 웃음을 담아 바라본다면, 이런 게이머들의 시도를 단순히 무의미하다고 평가절하할 수는 없습니다. 왜 하는지 모를 이런 실험들이 때로는 개발자들에게 영감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다른 대중들이 즐겁게 웃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또한 ‘게임을 즐기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지금도 수많은 게이머들은 자신들이 애정해 마지않는 게임 내에서 실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검증한 ‘게임의 한계’는 개발사들의 도전 동력이 되고 있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발전시키는 산업의 모습. 상상에만 그칠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꽤 훌륭한 사례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재훈 인벤 기자 invenlaff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