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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덕이 살펴본 축구 게임의 역사

얼마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축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었죠? 바이에른 뮌헨이 트레블과 전승 우승을 기록하며 마침내 빅 이어를 들어 올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감동의 순간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각종 스포츠 경기 직관이 불가능한데요. 저 같은 축덕들은 경기의 열기를 느끼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곤 합니다. 오늘은 축구장을 찾지 못해 아쉬운 여러분을 위해 경기장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해줄 축구게임들을 소개합니다. 축구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축구 게임의 역사도 깊은데요. 옛 무림 고수들이 소림축구를 하던 시절의 게임부터, ‘메호 대전’보다 유서 깊은 위닝과 피파의 대결까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축구 게임,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고전 축구 게임

우리가 익히 아는 형태의 축구 게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일본 게임 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시카도 토모히로’의 초기작인 ‘사커’라는 게임입니다. 무려 1973년에 만들어졌죠. 하지만 이러한 초창기 축구 게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후 90년대로 들어서며 게임 산업은 빠르게 발전했고, 도트 그래픽의 축구 게임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세이부 컵 사커’와 ‘열혈고교 돗지볼부 축구편’ 등이 있죠. 당시 축구 게임들은 축구 게임을 가장한 액션 게임들이었는데, 세이부 컵 사커와 열혈고교 돗지볼부 축구편은 모두 규칙이 없고 백 태클과 이단 옆차기가 난무하는 과격한 게임이었습니다.

열혈고교 돗지볼부 축구편 (이미지 출처. 닌텐도 스위치 홈페이지)

이후 90년대 중반, ‘테크모 월드컵 98’과 같은 3D 축구 게임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테크모 월드컵 98은 일명 ‘싱가 축구’로, 오락실 축구 게임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테크모 월드컵 98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Retro Hawk)

게임 자체가 풀3D인데다 각종 필살기의 연출이 화려해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오락실에 울려 퍼지던 싱가! 싱가! 싱가! 바나나킥! 소리가 생생하네요.

위닝 일레븐 (글로벌 발매 명: 프로 에볼루션 사커)

축구를 가장한 액션 축구 게임이 유행할 때 ‘코나미’에서 개발한 ‘위닝 일레븐’의 등장은 모든 축구 게임의 판도를 바꾸게 됩니다. 판타지 축구에서 리얼 축구로 게임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었죠. 그래픽과 정교한 물리 엔진은 게임 유저와 관람자가 실제 축구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리얼했습니다. 

특히 위닝 일레븐은 2002년 월드컵 붐과 맞물려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요. 국내에 PC방이 생기게 된 계기가 스타크래프트라면, 플스방을 전국에 보급한 1등 공신은 위닝 일레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죽하면 플스방 대신 ‘위닝방’으로 불리기까지 했죠. 위닝 일레븐이 유행하던 당시에는 호돈신, 지단, 베컴과 같이 지금은 역사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선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였습니다. 

위닝 PES (이미지 출처. 코나미 공식 사이트)

플스방에서 우리는 반니와 박지성의 ‘맨유’를 고르느냐, 카카와 네스타의 ‘AC밀란’을 고르느냐로 꽤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또한, 05년도는 올해 30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한을 푼 리버풀이 이스탄불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역대급 챔스 우승을 한 해였는데요. 이 결승전을 본 날, 친구들과 플스방으로 뛰어가 서로 리버풀을 고르려고 싸우기도 했었죠. 요즘에는 개발사와 라이선스 문제로 예전보다 위상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파와 함께 축구 게임계를 양분하고 있는 유서 깊은 게임이 바로 위닝 일레븐(PES)입니다.

FIFA 시리즈 (피파)

EA의 간판 스포츠 게임이자 축구 게임의 아이콘은 바로 ‘피파 시리즈’가 아닐까 싶습니다. 피파 시리즈는 1993년 처음 발매된 이래 지금까지 매년 한 편의 시리즈가 출시되며 30년 동안 이어져 온 장수 축구 게임입니다. 워낙 역사가 깊고 시리즈의 수가 많은 만큼, ‘포켓몬스터 시리즈’,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게임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FIFA 시리즈 (이미지 출처. EA 공식 사이트)

사실 피파는 90년대만 해도 굉장히 심심한 축구게임이라는 평을 받으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위닝 일레븐이 정통파 리얼 축구를 표방했다면, 2000년대 초반까지 피파는 아케이드에 집중한 캐주얼 축구게임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 때문에 유저들에게 외면받았죠.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으로 들어서며 EA가 가진 라이선스의 힘이 본격적으로 발휘됩니다. 사실 클럽팀과 선수, 감독들의 라이선스 문제는 오랜 시간 위닝 일레븐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위닝 일레븐을 플레이하며 우리의 쏘니 손흥민 선수가 있는 토트넘을 찾으려고 한참을 헤맸었는데요… ‘Nsorth west London’이라는 해괴한 팀에 있는 우리의 쏘니를 보면 갑자기 게임이 하기 싫어지곤 했죠. 우리 쏘니의 가슴에는 항상 늠름한 수탉이 있어야 했거든요. 

이렇게 라이선스에 불만을 갖는 유저들이 늘어갈 때쯤, 피파 시리즈는 탄탄한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합니다. 또한, 피파 시리즈를 뼈대로 넥슨에서 개발한 ‘피파 온라인 시리즈’가 PC방을 강타하면서 확실히 피파 시리즈는 NO. 1 축구 게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죠. 

손흥민 선수를 비롯해 많은 축구 선수들이 피파를 즐겨 플레이한다고 하는데요. 손흥민 선수의 팀 동료 델리 알리가 피파 개발사인 EA에 자신의 오버롤이 너무 낮다면서 자신의 능력치를 올려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죠. 내 개인 능력치가 게임 속 수치로 나와 있다면 무슨 기분일까요? 아마 제 게임 실력 오버롤은 93쯤 될 것 같네요.

풋볼 매니저(FM)

풋볼 매니저 2020 (이미지 출처. 스팀)

많은 축구 게임이 실제 경기를 진행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개발할 때, 전혀 다른 관점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축구 게임이 있습니다. 이제는 ‘매니지먼트 게임’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구축해버린 ‘풋볼매니저’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위닝 일레븐과 피파 시리즈가 한 경기, 한 선수를 통한 플레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면, 풋볼매니저는 ‘한 시즌’, ‘한 팀’에 집중했습니다.

유저가 구단주, 감독의 입장이 되어 팀을 꾸리고 선수와 코치들을 선발하며, 팀 팬들과 소통하며 최종적으로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게임. 풋볼 매니저는 기존 축구게임들과는 확연히 방향성이 달랐습니다. 프로 축구단 운영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마치 실제 팀을 운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요. 펩 감독의 티키타카를 구현해보고자 밤을 새우며 전술을 짜서 구현하는 것을 반복하고, 원했던 그림이 모니터 위로 펼쳐질 때의 희열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아끼는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경험도 할 수 있었죠.

풋볼 매니저의 몰입도는 굉장히 높아서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악마의 게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이미 플레이해 보신 분들 중에서는 무리뉴 감독에 빙의해 정장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본 분들도 분명 있으실 거라 믿습니다(?) 얼마나 과몰입 할 수 있는지 아시겠죠?

한국형 축구 게임 (강진 축구, 프리스타일 풋볼)

프리스타일 풋볼z (이미지 출처. 조이시티 공식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국내의 축구 게임을 살펴볼까요? 패키지형 콘솔 게임이 주를 이루던 외국과 다르게 한국 게임은 90년대부터 온라인 게임을 위주로 개발되어 왔는데요. 앞서 소개한 피파 온라인 외에도 훌륭한 온라인 축구 게임들이 많았죠.

‘강진 축구’는 세계 최초의 온라인 축구 게임입니다. 코믹한 캐릭터, 캐주얼한 게임성으로 무장한 가벼운 축구 게임으로, 2000년대 초중반 큰 인기를 끌었죠. 비록 지금은 사라진 게임이지만, 세계 최초의 온라인 축구 게임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프리스타일 풋볼’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프리스타일 풋볼은 프리스타일이라는 인기 캐주얼 농구 게임을 기반으로 한 게임입니다. 정식 축구 룰이 아닌 풋살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기존 축구 게임보다 훨씬 속도감 있었죠. 무엇보다 프리스타일 시리즈는 개성 있는 캐릭터와 다양한 옷들을 선보이며 축구와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게이머의 취향을 저격했습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의 명언이죠. 전설적인 선수들의 폼(외형)은 변하더라도, 그들이 보여준 열정과 클래스는 게임 속의 캐릭터들로 남아 지금도 우리에게 큰 재미와 이야깃거리를 선사합니다. 메시와 호날두도 이제 슬슬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그래도 우리는 오버롤 99 시절 두 선수의 전성기를 게임을 통해서 기억할 수 있겠죠. 축구 게임은 게이머, 축덕들에게 추억이자 선물인 셈인데요. 이러한 축구 게임의 클래스도 영원하길 바랍니다.

장금호 인벤 PD k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