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맨과 테트리스를 피카소, 반 고흐 작품과 함께 전시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죽음을 뜻할 것.
지난 2012년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이 ‘팩맨’, ‘테트리스’, ‘심시티 2000’, ‘괴혼: 굴려라 왕자님’ 등 14종의 비디오 게임을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영국 <가디언>지에는 ‘유감스럽지만 MoMA, 비디오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당시에는 미술관에 게임을 전시하는 것이 그만 큼 파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미술관으로 간 게임은 늘었고, 누군가는 게임을 종합 예술이라고 표현하지만 게임 예술 논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뉴욕 현대 미술관으로 간 14종의 게임
논쟁의 발단이 된 MoMA의 비디오 게임 소장은 게임을 새로운 범주의 예술로 본 시도였습니다. 당시 이 같은 결정을 주도한 인물은 MoMA 건축 및 디자인 분과 수석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입니다. 그는 현대 디자인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의 중요성을 말하며 이에 대한 우수 사례로 14종의 비디오 게임을 꼽았습니다.
MoMA가 영구 소장을 결정한 게임은 게이머들에게도 잘 알려진 게임들로 구성됐습니다. ▲팩맨(1980) ▲테트리스(1984) ▲어나더월드(1991) ▲미스트(1993) ▲심시티2000(1993) ▲비브 리본(1997-1999) ▲심즈(2000) ▲괴혼: 굴려라 왕자님(2003) ▲이브 온라인(2003) ▲드워프 포트리스(2006) 포탈(2005-2007) ▲플로우(2007) ▲여정(2007) ▲카나볼트(2009) 등입니다. 게이머들이 명작으로 꼽는 게임들과 겹치는 게임도, 아닌 게임도 있죠.
이는 게임적인 요소를 작품에 활용한 미디어아트 전시와 달리, 게임을 예술 그 자체로 본 시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예술계에서는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냐는 격론이 오갔습니다. <가디언>에서 예술 관련 칼럼을 쓰는 ‘조나단 존스’는 ‘유감스럽지만 MoMA, 비디오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MoMA의 결정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술 작품은 삶에 대한 한 개인의 내적 상상력과 성찰을 담고 있지만, 게임은 플레이어와 프로그램 간의 상호 작용 경험을 놀이터처럼 제공할 뿐, 그 안에 개인 삶에 대한 성찰은 없다는 주장입니다. 또 조나단 존스는 ‘체스는 훌륭한 게임이지만, 체스를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은 체스 플레이어이지 예술가는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체스 말의 디자인에 예술성이 가미될지언정, 체스 게임 그 자체는 단지 게임일 뿐 예술이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파올라 안토넬리는 ‘비디오 게임은 확실히 예술이며, 디자인이기도 하다’며, 게임이 다른 모든 MoMA의 디자인 수집품처럼 역사성, 문화적 관련성, 심미적 표현, 기능적·구조적 건전성, 기술과 행동에 대한 혁신적 접근 등 엄격한 기준을 통과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디자이너이자 공학자인 ‘존 마에다’는 글로벌 IT미디어 <와이어드>의 기고문을 통해 조나단 존스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게임이 서사 구조를 통해 이용자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구성하거나 예술처럼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고 주장했죠.
국내외 게임 관련 전시들
이처럼 게임 예술 논쟁은 여전히 뜨겁지만, 게임 관련 전시는 늘고 있습니다. 최초의 게임 관련 전시로 꼽히는 건 1989년 미국 뉴욕 영상 박물관의 ‘뜨거운 회로: 비디오 아케이드'(Hot Circuits : A Video Arcade)전입니다. 해당 전시는 ‘무빙 이미지’를 영화와 텔레비전을 넘어 비디오 게임 등 다른 형태의 디지털 미디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장했다는 점에 의의를 뒀습니다. 여기에는 ‘컴퓨터 스페이스(1971)’, ‘퐁(1972)’ 등이 전시됐습니다. 이후에도 뉴욕 영상 박물관은 디자인이 뛰어나고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비디오 게임 콘솔, 휴대용 게임 및 컴퓨터 게임을 수집·전시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2012년 ‘비디오 게임의 예술’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팩맨(1980)’,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부터 ‘바이오쇼크(2007)’, ‘언차티드(2007)’ 등이 전시됐으며, 주로 비디오 게임의 시각적 효과에 중점을 뒀습니다. 해당 전시는 2016년 1월까지 미국 내 다른 박물관을 순회하며 열렸습니다.
국내에서도 게임 관련 전시가 2012년 전후로 열리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계에서 전시를 주도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게임사들이 적극 뛰어들어 게임에 대한 문화적 관심을 환기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게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넥슨은 2012년 1월 313 아트 프로젝트와 함께 ‘보더리스(BORDERLESS)’ 기획전을 열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넥슨은 지난해에도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 25주년 기념 기획 전시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를 열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2012년 6월 경기도 미술관과 함께 예술 작품과 게임 캐릭터를 함께 선보이는 콜라보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뜨겁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 분류 결정 이후 중독성 논란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WHO가 게임을 적극 권장하는 모습이지만,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국내외 갈등은 언제든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올 것입니다.
그런 와중, 한편에서는 게임 예술 논쟁이 활발히 진행 중인데요. 국내외 게임 관련 전시가 늘고 있다는 건, 게임의 예술성이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게임은 예술일까요, 아닐까요?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