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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내 인생, 박상현 캐스터 인터뷰

익숙한 목소리, 어릴 때부터 게임 좀 봤던 사람들은 다 아는 그. 박상현 캐스터. 데뷔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매일을 전성기처럼 활약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에게 게임 캐스터라는 직업과 게임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안녕하세요 캐스터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반갑습니다. 게임 캐스터 박상현입니다. 펍지 PCS 중계는 물론이고, ASL과 GSL 리그 꾸준히 진행하고 있고요. 그 외 방송도 가끔 하고 있습니다. 
 
스케줄이 빠듯한 편인 것 같은데.
9월이 30일까지 있잖아요? 스케줄을 세어보니 31개더라고요. 바쁜 편이죠. 저희는 보통 일 년 단위로 움직여요. 연초에 일 년 계획이 확정되죠. 일은 많지만 늘 재밌게 하고 있어요. 
 
일이 몰릴 일은 잘 없겠네요.
제가 진행하고 있는 GSL 리그는 10년이나 됐어요. ASL 리그도 6년 됐죠. 펍지 리그도 2017년부터 시작해서 4년 째네요. 기존에 하던 리그들이 이어지니까, 큰 변수 없이 일하고 있어요.
 
게임 캐스터로 일하게 되신 히스토리가 궁금해요. 
정말 게임을 좋아했어요. 제가 대학생 때, 투니버스에서 스타리그를 시작해서 늘 경기를 챙겨 봤죠. 당시 인터넷 초창기라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가입해서 김동준, 채정원, 황영재 이런 유명 선수들 관련 글 찾아보고 그랬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게임도 잘하는 편이였는데, 프로 데뷔할 수준은 아니었고요. 그때부터 게임 보면서 얘기하고 훈수 두는 걸 좋아했어요. 중계까진 아니지만, 손보다 입이 늘 빨랐죠. (웃음) 

그리고 방송에 관심이 많아서 방송 내레이션, 리포트 아르바이트를 종종 했어요. 그때는 게임 캐스터라는 직업이 따로 있지 않아서, 막연히 ‘방송하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만 했죠. 그러다 졸업 시즌에 우연히 MBC GAME 채용 공고를 봤어요. ‘설마 되겠어?’ 하면서 지원했는데, 합격해서 방송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e스포츠와 함께 성장해오셨는데, 이 시장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앞으로 게임의 시대가 올 거라고 옛날부터 확신했어요. 저희 또래는 물론, 윗세대, 아랫세대 모두 게임에 열광하는데,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게임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고요.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무조건 잘 될 거다. 나중에 한번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네요. (웃음)

중간에 이탈하지 않고 쭉 한 길만 파셨어요. 그 과정에서 고민은 없었나요?
그런 고민 많이 했죠. 그런데 제 인생을 돌아봤을 때 게임 말고 좋아하는 게 있을까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나와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걸 하면 한 달 꽉 채워서 일 못 할 거예요. 저는 지금도 중계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20년 가까이 일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특정 게임 리그 중계를 오래 하다 보면 지루하지는 않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역으로 계속 이어지는 게 재밌어요. 특히 선수들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롭죠. 대서사시 영화도 두세 시간이면 끝나잖아요? 하지만, e스포츠의 스토리는 영원히 끝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이윤열 선수 같은 경우에는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후에 게임 스트리머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게임 개발자로 활약하고 있어요. 예전 선수들, 현재 선수들의 캐릭터성이 이어지다 보니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또 다른 게임 같아요.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게임의 세계관 속에 있는 느낌? 내가 눈여겨보는 선수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며 세계적인 선수가 될까 지켜보는 게 정말 행복해요.

게임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뉴페이스도 등장해서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취미도 게임하기, 게임 방송 보는 거예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유튜브, 아프리카tv 들어가서 제가 관심 있는 선수들 방송 다 챙겨봐요. 중계 끝나고 가면 게임의 여운이 남아 있거든요. 공허하기도 하고. 게임 방송 보면 그 공허함이 채워져요. 스트리머들 방송도 자주 보며 힐링하죠.
 
게임을 통해 에너지를 쏟아 내고, 게임으로 다시 충전하는 거네요.
정말 게임만큼 재밌는 게 없어요. 막상 집에 오면 게임 말고 할 것도 없고요. 취미가 일이 되니까 일에도 도움이 되고 좋아요.

캐스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애정이 가장 중요해요. 공부해서 말하는 것과 애정을 갖고 팬심으로 말하는 건 분명 다르거든요. 듣는 사람도 캐치할 수 있죠. 
 
팬심이 있는 플레이어를 편애하게 되지는 않나요?
몰입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 있는데 컨트롤해야죠. 그래서 약간 거리 두기를 하고 있어요. 보통 은퇴하고 개인 방송하는 선수들과는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현역 선수들과는 거리를 두며 짝사랑하듯이 뒤에서 지켜보는 편입니다. (웃음)

게임 중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지금 떠오르는 건 2019년 펍지 네이션스 컵이에요. 한국이 무조건 우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러시아 우바한테 트로피를 내줬죠. 정말 너무 아쉬웠어요. 그리고 펍지 글로벌 챔피언십(PGC)에서 젠지가 처음 우승했던 순간도 기억에 남네요.

중계하시면서 ‘이 게임은 나랑 정말 잘 맞다’ 싶은 것도 있나요?
제가 진행하고 있는 리그들이 다 5~10년 정도 됐는데, 정말 잘 맞아서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저와 안 맞으면 하지 않거든요. 대부분 거절해요.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일종의 책임감이 생겨요. 나와, 내 인생과 함께해 나간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죠.
특히 펍지는 의미가 남달라요. 태생부터 함께 시작했거든요. 저와 김동준, 김지수 해설위원이 함께 중계를 만들어나갔죠. 셋이 ‘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같이 가자’라고 도원결의했어요. (웃음) 중계 방식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한 시간이 길어서 애정이 많죠.
 
PCS 2 ASIA 대회가 최근 종료됐는데, 어떻게 보셨나요?
이번에 스케줄이 안 맞아서 저는 하루밖에 중계를 못 했어요. 팬으로서 경기를 봤죠. 이번에 T1이 너무 잘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정말 여러 감정이 교차하더라고요… 중간에 보다가 질 것 같으면 괜히 거실에 나가서 물 가져오고, 잘할 때는 보면서 소리 지르고 그랬네요. PCS3는 한국이 중국과 라이벌 구도를 보여주면서 확 치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볼 때는 팬들이랑 똑같아요. (웃음)

게임 캐스터 다음 스텝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다음 스텝,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에 충실한 편이에요. 최근에 ‘주식회사 중계진’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20년 동안 중계를 한 달인들이 모였죠. 유튜브, 아프리카tv 채널도 열어서 저희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요.

특히 저희가 많은 선수를 만나다 보니까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어요. ‘선수들은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은퇴한 후에는?’ 우리 중계진들이 은퇴한 선수들과 팬들을 연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고 있죠. 

본인의 넥스트 스텝이 아닌, 게임 업계의 넥스트 스텝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네요.
고민보다는 좋아서 하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됐어요. 제 경험상 미래를 계획하면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요. 오늘만 생각하고, 오늘 좋아하는 걸 하면 언젠가 망해도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이 캐스터님의 인생 목표였는데, 이미 답을 들은 것 같아요.
저는 큰 욕심 없고,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면서 만족하며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나이 들어도 변하지 않기에, 10년, 20년이 지나도 계속 팬분들과 게임 콘텐츠 즐기면서 사는 게 인생의 목표에요. ‘이 형이 있어서 정말 재밌었다’라는 말만 들어도 제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하죠. 앞으로도 많은 분들과 소통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싶어요.

인터뷰 중 이유를 묻는 질문에 늘 ‘좋아서’라고 답했던 박상현 캐스터. 그에게 게임 캐스터라는 직업은, 게임이라는 취미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에너지를 쏟아 내고, 또 그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 그가 20년 넘게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해보였다. 게임이 인생이 되어버린 그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하며,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컬처온]에서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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