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FTON

컴퓨터 게임 미학의 가능성 : 우리는 게임에서 받은 감동을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까?

게임은 누구나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성장해 왔습니다.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크래프톤은 게임 본연의 재미와, 게임과 사회 상호간의 영향력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과 함께 게임 문화 연구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생각을 모아 연재 형식으로 전해드립니다.
[게임문화연구], 다섯 번째 편은 게임 미학의 필요성에 관한 오영진 교수님의 글입니다.

게임의 추억과 해석의 욕망

요즘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추억의 게임과 관련한 콘텐츠들이 많아졌다. 각자의 게임체험을 크리에이터들의 리뷰 콘텐츠로 확인하며 추억에 잠겨보는 일은 그 자체로 위안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게임을 추억할 수 있느냐에 따라 자기 세대를 드러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마비노기’(2004)나 ‘메이플스토리’(2003) 등의 게임이 대략 90년대 생들의 유년 시절을 소환하는 한편, ‘둠’(1993)이나 ‘퀘이크’(1996)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80년대 생들도 존재한다. 더 이전에는 소위 ‘갤러그’(1981) 세대가 있다. 물론 ‘스타크래프트’(1998)나 ‘디아블로2’(2000)처럼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게임도 있다. 어느덧 한국사회도 게임이 대중오락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지 40여년 가까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유튜버 <김재원의 즐거운게임 세상> 19.09.15 화면 캡처
유튜버 <김재원의 즐거운게임 세상> 19.09.15 화면 캡처

그런데 재미의 체험이 한 때 ‘좋은 추억’은 될 수 있을지언정 지금도 여전히 ‘쓸모있는 기억’으로 작동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유년시절 동네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2’로 주름잡았던 일이 지금 와서 대체 무슨 효용이나 가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반대로 내가 당시 경험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견 역시 납득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게임을 주변에 권유하거나 분석을 하고 나아가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해석에의 충동에 대해 바흐친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예술에서 체험하고 이해한 모든 것이 삶에서 무위로 남게 하지 않으려면 나는 그것들에 대해 나 자신의 삶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미하일 바흐친, ‘예술과 책임’(1919)

그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그 안에 가치 있는 무엇인가 존재하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예술작품과 독자 사이 언어화하기 어려운 우연한 사건으로서의 경험이 있고, 그것을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 ‘책임’이라는 형태로 작품 밖으로 튀어나온다. 게이머들에게도 이러한 책임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의 크기는 작품이 주는 재미와 감동의 크기와 비례할 것이며, 그 만큼의 해석의 충동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특정한 게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생긴다면, 그 욕망은 실은 무위로 돌아갈 지도 모르는 자기 내부의 사건과 인생의 일부분을 걸고 겨루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Man vs Snake: The Long and Twisted Tale of Nibbler’(2015)은 이제는 마흔살이 된 게이머 팀 맥베이가 레트로 게임 ‘니블러’ 10억점 재도전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한 때 세계 신기록 보유자였던 그가 엔리코 자네티라는 무명의 게이머가 자신도 10억점을 돌파했다고 주장하자 자신의 옛 기록에 재도전하기로 마음먹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임 ‘니블러’를 모르는 시청자들은 언뜻 그들의 도전기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게임 부심 가득한 중년들의 경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유년시절의 영광이었던 게임경험을 무위로 돌리기를 절대적으로 싫어하며, 다시 기록적인 플레이를 보여줌으로써 과거를 재현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만약 그들에게 해석을 위한 언어가 주어졌다면, ‘니블러’의 철학이 담긴 두꺼운 책을 썼을지 모르는 일이다.

 
즐거움과 아름다음 사이에서

게임의 디자인만을 분석하는 일에는 위와 같은 해석의 충동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것은 재미의 구조적인 측면을 지극히 연구하지만 재미있게 플레이 하는 인간 나아가 감동적으로 플레이 하는 인간 그래서 그 감동(미적 체험)에 의해 다시 재설정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게임의 미학에 대한 탐구는 단지 재미의 구조를 분석하는 일에서 그칠 수 없으며 개인적 감정에서 벗어나 공통의 지평을 형성할 수 있는 세계감각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사실 전통적인 철학적 개념에 따르면 ‘즐거움’과 ‘아름다움’은 같은 범주가 아니다. 아름다움이 지성적 판단이 작동하는 감성학의 대상이라면, 즐거움은 수동적으로 촉발되는 내적 감정의 한 양태에 가깝다. 감성학(미학)과 감정학 사이의 간격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게임 미학’이라는 개념이 다소 모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재미학이라는 고유의 영역(로제 카이와)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게임 미학의 대상이 게임작품과 게이머 사이, 즐거움(수동적-감정)과 아름다움(능동적-감성) 사이에서 요동치는 게임경험임을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게이머가 어떤 세계를 맛보고, 새로운 주체성을 획득하는가가 아닐까.

워크래프트 3 화면
전략시뮬레이션 장르(RTS)의 대명사. 워크래프트 3. 출처: https://www.invenglobal.com
AoS 스타일로 재디자인된 워크래프트 3. 출처 :https://www.hiveworkshop.com

컴퓨터 게임은 기본적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한 구조물이다. 이 구조 앞에 서 있는 것이 게이머라는 주체이다. 특정한 의도대로 설계되었지만 게이머는 구조 안에서 전혀 예상치 않은 플레이를 꾀하거나 때로는 구조 자체를 뒤틀기도 한다. 게이머가 게임체험에서 얻는 경이감과 학습력은 이 경우 구조 안에서 시작하지만 구조 밖으로 향하며, 새로운 플레이 방식을 발명하고 견인할 경우 다른 게임의 디자인에 도리어 영향을 끼친다. 게임의 미학은 무엇보다 이 활력을 포착해야 한다. 게이머가 게임의 규칙에 종속되면서도 빠져나가는 이유는 게이머가 단지 순응하는데 머물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이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 게임은 세계에 대한 모방 내지는 시뮬레이션으로 고안될 수 있으나, 게이머는 새로운 세계를 고안하고 현실 세계로 투사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게임 미학은 게이머가 게임 내 규칙과 세계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판단해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적 영역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탐구의 기초가 없다면 게임과 사회가 제대로 연결될 수가 없다. 게임 미학의 수립이 필요한 이유다.

오영진 문화평론가. 한양대 ERICA 융복합 교과목 ‘기계비평’의 기획자 겸 주관교수. 주요 평론으로 [컴퓨터 게임과 유희자본주의], [인디의 추억] 등이 있고, [거울신경세포와 서정의 원리], [공감장치로서의 가상현실] 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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