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FTON

한국형 게임 아카이브 설립과 방법론

게임은 누구나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성장해 왔습니다.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크래프톤은 게임 본연의 재미와, 게임과 사회 상호간의 영향력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과 함께 게임 문화 연구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생각을 모아 연재 형식으로 전해드립니다.
[게임문화연구], 여섯 번째 편은 한국형 게임 아카이브는 어떤 형태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정엽 교수님의 글입니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게임은 문화다’라는 구호가 WHO의 게임 질병코드 등재와 맞물려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구호는 문화부 공무원이나 그 산하의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직원들도 개인 SNS에서 사용할 정도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문화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에 대한 존중과 보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문학이나 영화 같은 다른 매체들이 국립도서관이나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국가적으로 수집, 보존, 전시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게임은 국가적인 보존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도서관이 일부 게임을 수집, 보존, 열람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등 문화콘텐츠 전반으로 자료를 수집해야 해서 전적으로 게임만을 위한 아카이브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콘텐츠도서관은 전남 나주시에 위치하여 주변 게임 관련 시설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업계를 위한 접근성 높은 자료관으로서의 구실을 거의 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게임 자료 역시 다소 빈약한 상황이다. 현행 8세대까지의 세대 분류 중 4세대부터 수집을 시작했기 때문에, 최초의 게임 콘솔인 ‘마그나복스 오딧세이’ 같은 1세대 게임들이나 ‘아타리 2600’ 같은 2세대 게임, 패미콤 같은 3세대 게임들은 구비가 되어 있지 않다. 현행 게임 역시 모두 수집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빈 곳이 많은 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도서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식 웹사이트 https://library.kocca.kr/)

오히려 국내에서 게임 아카이브의 역할을 그나마 충실히 하고 있는 곳은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다. 제주도에 위치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컴퓨터와 게임 문화의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4년 전 오픈했다. 이곳의 NCM 라이브러리는 몇몇 게임 콘솔을 관람객들이 실제 과거의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오픈된 공간이다. 물론 오픈된 게임은 현재에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콘솔과 게임에 한정되어 있으며, 많은 소장품들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채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정리 미비를 이유로 아직도 관련 학자들에게조차 수장고를 폐가식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어 이 박물관에 소장된 소장품들이 순환적으로 공개되거나 빛을 발하지는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MMORPG인 ‘바람의 나라’의 최초 버전을 복원해서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은 현재 대부분 여러 차례 업데이트를 통해 최초 버전을 복원하기 어려워진 상태이다. 바람의 나라 역시 이런 상황이었으나 당시 개발자들을 수소문하여 최초 버전에 가까운 클라이언트와 서버 버전을 구하여 힘들게 복원에 성공하였다. 이와 관련한 복원 과정은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이처럼 새로 국내에서 게임 아카이브가 탄생한다면 당연히 국내 온라인 게임의 복원과 보존이 시급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역사 박물관 (출처: Computer History Museum 공식 웹사이트: https://computerhistory.org/)

이러한 게임의 복원 과정은 해외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컴퓨터 역사 박물관 (Computer History Museum)’은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의 오리지널 기기뿐만 아니라, 최초의 디지털 게임 중 하나인 ‘스페이스 워(Space War)’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62년 스티븐 러셀이 개발한 스페이스 워는 DEC사의 PDP-1이라는 미니컴퓨터를 통해 개발되었다. 컴퓨터 역사 박물관은 이 PDP-1을 구동할 수 있도록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이 오리지널 기기를 통해 스페이스 워를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 오후에 2번 정도 시간을 내어 직접 PDP-1을 만져보고 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앞으로 국내에 만들어져야 할 한국형 게임 아카이브는 도서관, 아카이브, 박물관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라키비움 (Larchiveum, Library/Archive/Museum의 합성어)’ 형태의 박물관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 전시된 PDP-1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디자이너 및 게임 연구자.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심사위원장. 인디 게임과 게임 아카이브에 관심 가지고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