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취미인 사람은 주기적으로 병마에 시달립니다. 바로 ‘겜태기’입니다. 다른 말로 게임 불감증이라고도 하는데요, 특히 성인 인구의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부분 어린 시절엔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시선과 규제, 온갖 장애물을 뚫고 어머니의 손맛을 입이 아닌 등짝으로 느끼면서도 게임을 즐깁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겜태기는 도둑처럼 찾아옵니다. 많은 성인 게이머가 고민할 겁니다.
“게임을 하고 싶은데 하기 싫은 나, 정상인가요?”라고요. 양가적인 감정이 혼란스럽겠지만, 삐빅! 정상입니다. 겜태기 증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요, 이에 맞는 처방전이 준비해봤습니다. 특히, 게임의 원초적 재미에 집중한 인디게임은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는데 특효약이 되곤 합니다.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게임에 몰입할 에너지가 없는 당신에게
게임은 몰입도가 높은 콘텐츠입니다. 능동적으로 캐릭터의 행동을 선택하는 몰입 경험은 게임의 전매특허입니다. 하지만 높은 몰입도에는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취업 준비, 직장 생활, 육아 등 지칠 때로 지친 성인 게이머에게 게임은 휴식이 아닌 또 다른 일거리로 다가오곤 합니다.
플레이데드의 ‘인사이드(INSIDE)’는 일이 돼버린 게임에 다시 흠뻑 빠질 수 있는 요소를 갖춘 인디게임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횡스크롤 2D 플랫포머 형태의 게임이지만, 조작 방법은 굉장히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옆으로 밀면 이동하고, 위로 밀면 점프, 화면상의 오브젝트를 길게 누르면 상호작용하는 식입니다. 화면상에는 조작 버튼을 포함해 어떤 UI도 표시되지 않습니다.
또 이야기를 설명하고 주입하는 여타의 게임들과 달리 자연스레 게임에 젖어 들게끔 스토리텔링이 이뤄집니다. 스킵을 부르는 대화창 대신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게이머 스스로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도록 꾸려졌습니다. 붉은 티를 입은 소년을 조작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추격자들로부터 도망치는 게 전부지만 이 과정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경험하게 됩니다.
게이머에게 강요되는 불필요한 시스템을 배제하고 시각적으로도 어지러운 UI들을 제거해 게임을 하고 있다는 피로감 없이 자연스레 게임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단순하지만 섬세한 그래픽과 연출은 영화처럼 게임에 푹 빠져들게 하죠. 같은 개발사의 전작인 ‘림보(LIMBO)’도 추천합니다.
게임보다 연애가 하고 싶은 당신에게
게임과 연애는 길항 관계에 놓입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연애에 소홀해지고, 연애를 하다 보면 게임에 집중하기 힘들어집니다. 열정 만수르라면 둘 다 가능하지만, 대개는 어느 한쪽에 좀 더 치우치기 마련입니다. 무적의 솔로 기간이라고 게임만 하다간 어느 순간 연애 세포가 소멸해 이러다간 평생 연애를 못 할 거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곤 하죠. 이처럼 연애와 게임 사이에서 겜태기가 찾아오곤 합니다. 이때 즐길만한 게임이 ‘플로렌스(Florence)’입니다.
‘플로렌스’는 동명의 여성 주인공의 시점에서 첫사랑의 감정을 담은 게임으로, 그림책과 만화 같은 진행이 특징입니다. 특별히 공략을 찾아볼 필요 없이 단순하지만 감성 돋는 퍼즐을 풀다 보면 그림책을 읽듯 게임이 술술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만남과 이별이 잔잔한 일상물처럼 그려지고, 집 나간 연애 세포가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퍼즐은 ‘플로렌스’를 지탱하는 주요 축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림책과 게임 사이의 특별한 경험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게임 진행 과정에서 상황에 맞게끔 퍼즐이 주어지는데요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과의 처음 만나 호감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주파수를 맞추는 퍼즐 형태로, 대화 과정은 퍼즐 조각을 맞추는 형태로 주어집니다. 심정지 상태에 이른 연애 세포와 게임 세포가 동시에 되살아나길 원한다면 플로렌스를 추천합니다.
평생학습 같은 게임이 싫은 당신에게
게임은 재미를 느끼기까지 충분한 학습이 필요한 콘텐츠입니다. 특히 컴퓨팅 성능이 발전할수록 게임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줄어들면서 현대 게임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편히 쉬려고 게임을 하는데 오히려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곤 합니다. 평생학습처럼 공부해야 하는 복잡한 게임에 질렸다면 ‘히든포크(Hidden Folks)’가 처방전이 될 수 있습니다.
‘히든포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월리를 찾아라’ 같은 게임입니다. ‘월리를 찾아라’를 모르는 10대 동년배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숨은그림찾기 게임입니다. 귀엽게 그려진 흑백의 일러스트를 감상하고 터치하며 숨겨진 인물들과 물건들을 찾는 쉬운 구성을 갖췄습니다. 복잡한 시스템을 두고 공부할 필요 없이, 튜토리얼이나 공략 필요 없이 손가락만 튕기면서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물론 스테이지가 진행될수록 화면 가득 채운 그림 속에 숨은 그림을 찾으려면 정신이 아득해지곤 합니다.
과제하듯 한번에 게임을 끝내는 당신에게
게임을 하다 보면 엔딩을 향해 달리다 지쳐 숙제하듯이 게임을 해치우고 다시는 뒤도 안 돌아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게임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노동으로서의 게임만 남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게임에 질리게 되죠. 이러한 증상을 겪고 있다면 여러 번 곱씹을 수 있는 게임 ‘세븐데이즈(7DAYS)’는 어떨까요.
‘세븐데이즈’는 7일 동안 사후 세계에서 부활을 위해 주어진 과제를 하는 비주얼노벨 게임입니다. 선택지에 따라 인물 관계가 달라지고 수많은 멀티 엔딩이 등장하는 게 특징입니다. 캐릭터들의 대화가 메신저 형태로 진행되며, 아이템을 얻었을 때도 메신저에 사진이 업로드된 것처럼 표현됩니다. 대답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들의 우호도에 기반해 달라지는 이야기를 감상하는 구조의 게임으로, 여러 번 클리어 해야 전체적인 이야기를 조감할 수 있어 색다른 재미를 제공합니다.
서사가 없는 요즘 게임에 질린 당신에게
현재 한국 게임 시장의 대세는 모바일 게임입니다. 특히 실제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히는 온라인 게임이 대부분이죠. 다양한 인간 군상 속에 벌어지는 실제 이야기들이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가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은 서사가 없는 요즘 게임에 학을 떼곤 합니다.
‘서울 2033’은 오롯이 서사에만 집중한 게임입니다. 핵전쟁 이후 서울을 그리는 텍스트 어드벤처 모바일 게임으로, 일반적인 게임과 달리 텍스트가 대부분이지만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인디 게임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보드게임과 텍스트 워드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독특한 스토리 구조의 텍스트 게임으로 만들어졌으며, 텍스트 게임 특성을 살려 책을 읽는 듯한 UI를 제공해 게임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스크린리더/보이스오버 ‘접근성’ 기능을 적용한 점도 높은 점수를 받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펙트만 화려한 게임이 눈 아픈 당신에게
‘엑시트 더 건전(Exit the Gungeon)’은 ‘화려한 이펙트가 나를 감쌌나요? (X)’에 해당하는 게임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이펙트만 화려한 게임에 질렸다면 즐겨볼 만한 인디 게임이죠. 2D 사이드뷰 액션 게임으로, 전작인 ‘엔터 더 건전’과 마찬가지로 탄막슈팅 게임과 액션 요소를 결합해 간단한 조작으로도 긴장감 있는 액션을 즐길 수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엑시트 더 건전’은 시공간의 균열이 일어난 총굴(Gungeon)을 탈출하는 내용으로, 스테이지를 진행해나가면서 최종보스를 클리어하는 전통적인 게임 구조를 갖췄습니다. 4명의 기본 캐릭터와 3명의 히든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으며, 지속해서 바뀌는 무기가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십니다. 3D 이펙트에 노안이 올 것 같다면 2D 도트 그래픽에 알찬 액션을 갖춘 ‘엑시트 더 건전’은 어떨까요.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