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FTON

인성 살살 녹는 게임 속 주인공

악당의 재발견이 대세입니다. 사람들은 고지식하고 선비 같은 슈퍼맨보다, 복잡한 이면을 지닌 나쁜 놈 조커에 열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악당들은 필연적으로 최후를 맞이하는데요. 주인공의 승리를 위해 희생되는 도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게임 속에는 그렇지 않은 악당들도 존재합니다. 단순한 악역을 넘어 나쁜 인성과 괴팍한 성격을 무기로 게임 전면에 나서죠. 여러분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흑염룡을 깨울 악역들을 만나 볼까요?

막장 패륜, 철권의 미시마 가문

이미지 출처. 스팀

철권 시리즈는 1994년에 처음 발매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킹 오브 파이터즈’처럼 2D 그래픽으로 제작된 격투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요. 철권은 3D 그래픽으로 제작되어 전 세계의 격투 게이머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압도적인 타격감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승승장구했고,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격투 게임 중 하나죠.

철권 하면 훌륭한 게임성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게임 속 ‘콩가루 집안’입니다. 철권의 주인공 가문인 미시마 가문의 막장 스토리는 무려 3대에 걸친 패륜의 역사인데요. 모든 이야기는 만악의 근원, 번개 머리 할아버지 ‘미시마 헤이하치’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자기 손으로 제거한 뒤 흑화해서 자신의 가문이 이끌던 기업을 악명 높은 군수사업체로 바꿔버립니다. 친아들 ‘카즈야’도 죽이려 했지만 실패하죠. 사실 그의 악행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지만, 오랜 기간 철권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무슨 이유로 이런 비극이 시작되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아들 카즈야와 무시무시한 악당이 되어버린 헤이하치의 가족 난투극이 철권 시리즈를 관통하는 스토리입니다. 여기에 헤이하치의 아버지인 ‘미시마 진파치’와 손자인 ‘카자마 진’까지 끼어들며 4대에 걸친 미시마 가문의 집안싸움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죠. 특히 아들 카즈야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가족과 친구, 양심도 버리는데요. 그의 최종 목표는 철권 격투 대회를 통한 세계 정복이라고 하네요.

Be폭력의 상징, 문명5의 간디

이미지 출처. 게임 플레이 화면 캡쳐

문명 시리즈는 세계 3대 게임 개발자로 꼽히는 시드 마이어의 대표작으로, 석기시대부터 첨단 과학 시대까지 다른 문명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턴제 전략 게임입니다. 한 턴 한 턴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 빠져나올 수 없는 악마의 게임으로 불리곤 하죠.

“당신의 다이아몬드와 나의 옥수수를 교환해준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문명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 바로 이것인데요. 옥수수와 다이아몬드를 교환하자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래를 제안하는 캐릭터가 평화의 상징 ‘간디’인 점이 흥미로운데요. 문명 유저들 사이에서는 비폭력, 무저항, 불복종의 아이콘인 간디가 Be폭력, 武(무력에 의한)저항, 火(불바다를 만드는)복종의 상징으로 불립니다.

사실 간디가 문명 시리즈에서 패왕이 된 것은 단순한 오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평화의 상징이어야 할 인도 문명과 간디 캐릭터의 호전성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버그가 발생한 거죠. 하지만, 게임사에서는 이를 오히려 재밌게 느끼고 시리즈의 전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시리즈 중, 문명5에서 간디의 활약은 더욱 돋보였는데요. 게임 속 간디가 이끄는 인도 문명은 매우 강력해서 간디의 횡포(?)가 극에 달했죠. 간디의 협박과 으름장에 못 이겨 불공정한 외교를 맺은 제보 글이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곤 했습니다.

낙서로 도시를 물들이는 ‘젯 셋 라디오’

이미지 출처. 4Gamer.net

우리가 가진 창작 욕구를 가장 발칙하고 반사회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젯셋 라디오’ 인데요. 세가가 2000년 개발한 이 게임의 메인 미션은 경찰을 따돌리면서 지정된 장소에 그래피티 낙서를 하는 것입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도시를 휘젓고 다니는 주인공을 직접 조종할 수 있죠.

귀엽고 깔끔한 그래픽이 돋보이며, 흥겨운 힙합 음악과 카툰 렌더링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낙서할 그래피티를 플레이어가 직접 디자인할 수도 있죠. 창작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며 정신없이 도시를 낙서로 물들이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을 쫓아오는 경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찰을 놀리면서 따돌리고 도망치는 재미가 이 게임의 백미입니다.

당위성 없는 흉악범, 트레버 필립스

이미지 출처. 락스타게임즈 공식 홈페이지

이번에 소개할 캐릭터는 정말 나쁜 녀석입니다. 난폭하기 짝이 없죠. 사회적 규범과 인간의 도덕성은 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과 망설임도 없죠. 직업도 무기와 나쁜 물건들을 몰래 사고파는 일입니다.

이 남자는 GTA 5의 ‘트레버 필립스’입니다. GTA 시리즈는 락스타 게임즈가 만든 3인칭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자유도와 매력적인 캐릭터, 막장 스토리로 유명하죠. 현대 게임사의 최고 문제작이며, 열렬한 환호와 비난을 한 몸에 받는 게임입니다. GTA 시리즈의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는 이유는 자유도 때문입니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죠. 설사 그게 심각한 범죄 행위라도 말이죠.

게임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트레버 필립스는 흉악한 범죄자입니다. 다른 게임들은 악당의 복잡한 심리상태와 상황을 보여주며 당위성을 부여하지만, GTA 시리즈는 악당의 사연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트레버 필립스라는 캐릭터는 내가 정말 이렇게 플레이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폭력적이죠. GTA 5가 불러일으켰던 사회적인 논란이 압축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자유를 넘어 방종의 극한을 체험하게 하죠.

다만 어디까지나 게임은 게임일 뿐입니다. 트레버 필립스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GTA를 플레이하는 것이
아무리 통쾌하고 재밌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GTA라는 극단적인 세계에서의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GTA의 진짜 가치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라는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GTA를 플레이하다 보면, 트레버 필립스의 폭력성은 그저 단순한 장치에 지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장금호 인벤 PD k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