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 업계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고전 명작 게임의 ‘리메이크’입니다. 레트로, 뉴트로는 현재 문화 전반의 트렌드이지만, 게임 업계의 리메이크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하나의 대세로 자리 잡았는데요.
블리자드의 게임들이 이러한 리메이크 열풍의 시작이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와우 클래식’은 단순 팬서비스 차원에서 출시되었다가 큰 반향을 일으켰죠. ‘리니지M’은 모바일 리메이크를 유행시킨 장본인입니다. 자동사냥 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하여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취향을 저격했죠.
올해는 본격적으로 옛 IP를 활용한 리메이크 게임들이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콘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리마스터(PC)’, ‘바람의 나라 연(모바일)’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리메이크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죠.
이제 게이머, 게임사들 모두 다음으로 리메이크될 게임은 무엇인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간절히 리메이크를 손꼽아 기다리는 레전드 게임 5편을 모아봤습니다.
던전 앤 드래곤 2: 쉐도우 오버 미스타라
‘던전 앤 드래곤 2’는 오락실에서 단돈 백 원으로 1시간 동안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어린이의 보물과도 같은 게임이었습니다. 판타지 세상을 배경으로 전사, 마법사, 드워프, 엘프와 같은 직업을 골라 던전을 탐험하고, 마지막 용을 무찔러야 하는 횡 스크롤 액션 게임인데요. 탄탄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 타격감, 적당한 난이도와 긴 플레이타임까지 뭐 하나 빠질 것이 없었던 오락실 게임의 끝판왕이었죠.
하지만 아쉽게도 이 게임의 후속작은 더 이상 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게임의 제작사였던 캡콤이 던전 앤 드래곤의 지적재산권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해 2013년 출시된 리마스터 판이 그 마지막이 되었죠.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던전 앤 파이터’와 ‘메이플 스토리’는 지금까지도 많은 게이머에게 사랑받고 있는데요. 만약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가 새롭게 리메이크되어 지금 세상에 나온다면 과연 어떨까 기대됩니다.
임진록 시리즈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가 한창 인기를 끌며 RTS 게임(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유행하던 1990년대 말,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한국형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임진록’이 출시되었습니다. 사실 임진록 1편은 워크래프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게임이었죠. 다만, 한국형 건축물 묘사와 조선과 일본의 전쟁을 다룬 소재 덕분에 한국 게이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편의 인기에 힘입어 출시된 ‘임진록 2’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조선, 일본, 명나라 세 진영의 적절한 밸런스, 영웅 시스템을 활용한 훌륭한 전략 등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임진록 2는 개발사의 경영난으로 더는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고, 국산 RTS 걸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임진록 시리즈 이후 한국의 역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게임들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임진록 시리즈가 리메이크되어, 한국의 색깔과 역사를 잘 녹여낸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파랜드 택틱스 시리즈(파랜드 사가)
요즘 실시간 액션 RPG 게임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2000년대 초에는 실시간 전투라는 개념이 생소했습니다. 당시 기술적으로 실시간 액션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 대신 바둑이나 체스처럼 ‘턴’ 개념을 사용하는 RPG 게임들이 주를 이뤘죠. 하지만, 턴제 게임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밌는 장르였습니다. 이러한 턴제 RPG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임이 바로 ‘파랜드 택틱스 시리즈’가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 속에서 인간 왕국의 공주인 ‘팜’은 마족을 암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동료와 모험을 떠납니다. 파랜드 택틱스는 귀여운 그래픽과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게이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2편에서는 1편의 주인공인 ‘카린’이 성장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며, 1편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나 ‘성검전설’ 같은 명작 RPG들이 리메이크되어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을 보면, 고전 RPG에 대한 게이머들의 니즈는 굳건한 것 같습니다. 파랜드 택틱스 시리즈도 계속해서 PS 3, PSP, 모바일 등으로 이식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만큼, 리메이크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앉아 스토리를 감상하던 그 시절 추억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머드 코어 시리즈
‘아머드 코어’라는 게임은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크 소울’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게임인데요. 아머드 코어는 다크 소울과 블러드 본, 세키로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프롬 소프트웨어’의 메카닉 액션 게임입니다.
아머드 코어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작품답게 장인정신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는데요. 특히 아머드 코어 역시 높은 조작 난이도로 진입장벽이 높은 게임 중 하나였습니다. 아머드 코어라고 불리는 기체를 조종해 거대 기업의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 주 스토리입니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기체를 조종할 때의 몰입도가 매우 높아 굉장한 타격감과 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내 기체를 바라보며 마치 건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죠.
요즘은 이런 거대 로봇 게임이 많지 않습니다. 2014년 발매된 ‘타이탄 폴’ 정도가 유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이 게임은 로봇물보다는 하이퍼 FPS에 가까웠죠. 메카물이 기근인 요즘, 이제 대형 개발사가 된 프롬 소프트웨어가 초심을 담아 아머드 코어를 리메이크한다면 어떨까요? 아머드 코어가 선사했던 거대 철갑 로봇들의 묵직한 손맛을 2020년의 그래픽으로 다시 한번 즐겨보고 싶습니다.
하프라이프 시리즈
‘스팀’은 전 세계에서 발매되는 수많은 게임을 구입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게임 플랫폼인데요. 한국에서는 PC용 비디오 게임을 ‘스팀 게임’이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스팀이라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밸브 코퍼레이션’은 원래 게임 개발사였습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도타 2’ 등 걸출한 작품들을 많이 개발했죠. 이러한 밸브의 마스터 피스가 바로 ‘하프라이프 2’라는 게임입니다.
하프라이프 2는 2004년 최다 GOTY 수상작입니다. 심지어 이를 20세기 최고의 게임으로 꼽는 게임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하복’ 물리 엔진을 이용해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했으며, 외계인에 정복당한 지구에서 시공간을 넘나들며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의 스토리는 매우 짜임새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프라이프 3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개발사인 밸브는 이미 플랫폼 운영 기업으로 그 모습이 바꾸었고, 10년 넘게 하프라이프 3는 떡밥만 무성한 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는데요. 대신, 올해 VR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라는 엄청난 게임이 출시되며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위상을 다시 한번 드높였죠. 그러나 하프라이프 3를 기다리는 게이머들은 아직 많습니다. 게이브 뉴웰(밸브의 대표이자 하프라이프의 개발자)님, 3편을 만들 생각이 없다면 2편이라도 리메이크해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장금호 인벤 PD k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