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홈’이 인기입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스위트홈’은 넷플릭스 공개 4주 만에 전 세계 2200만 유료 구독 가구가 시청했습니다. 특히 미국, 프랑스 등 K-콘텐츠에 익숙하지 않은 국가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죠.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괴물들인데요. 욕망을 매개로 괴물이 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연근이’, ‘프로틴’ 등 각각의 욕망을 형상화한 매력적인 괴물을 그려냈습니다.
‘스위트홈’은 좀비물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좀비에 물려 감염되는 대신 욕망을 매개로 괴물화가 진행되지만, 인류 멸망 직전 재난에 맞서 싸우는 인간을 다루는 점, 주변인들이 이성을 잃은 괴물로 변해가는 점 등이 좀비 아포칼립스물에 근간을 두고 있죠. 이러한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는 설정 자체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데요. 이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게임들을 모아봤습니다.
진짜 좀비가 되어버린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좀비 게임의 시조새입니다. ‘바이오하자드’라고 쓰고 ‘레지던트 이블’이라고 읽는 이 작품은 게임으로 시작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좀비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데요.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로 유명한 캡콤이 1996년 첫 작품을 출시하면서 시작됐죠. 게임은 라쿤 시티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제약회사가 만든 바이러스가 유출돼 좀비로 가득한 저택과 도시를 탈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드벤처와 액션이 합쳐진 형태로 퍼즐을 풀고 좀비와 괴물들을 물리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당시 정립되기 시작한 호러 게임 장르에 좀비를 물리치는 액션을 더해 ‘바이오하자드’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면서 시리즈는 현재 8번째 작품까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1절, 2절에 그치지 않고 억지로 이야기를 짜내 ‘뇌절’까지 한다는 평도 있지만, 누적 판매량 1억500만 장 이상을 기록하며 캡콤의 간판 타이틀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리즈를 그만두려야 그만둘 수 없는 그야말로 좀비 게임이 된 셈입니다. ‘RE’ 딱지가 붙은 구작 리메이크 시리즈도 계속 나오고 있죠. 영화 ‘레지던트 이블’도 2016년까지 총 6편의 작품이 제작되는 등 ‘바이오하자드’는 좀비물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 게임에 영향을 준 호러 RPG 게임의 이름이 ‘스위트홈'(1989)이라는 점입니다.
좀비 확산을 막아라!
‘좀비 아웃브레이크 시뮬레이터’
‘좀비 아웃브레이크 시뮬레이터’는 좀비 바이러스가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구글 지도를 보는 듯한 탑 뷰 시점에서 진행되며, 플레이어는 무기를 사용해 좀비가 확산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그래픽이 화려하진 않지만, 시민과 좀비가 직관적으로 표현돼 실시간으로 좀비가 확산되는 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도를 축소하면 점으로 시민과 좀비가 표현됩니다. 또 시민과 좀비 수, 좀비 이동 속도, 감염 속도, 무장한 시민과 경찰의 공격력 등을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웹게임으로 시작한 이 게임은 안드로이드와 iOS용 모바일 게임으로도 출시돼 호평을 받았습니다.
인간 4 vs 좀비 4
‘레프트 4 데드’
‘레프트 4 데드’는 좀비물을 4인 협동 게임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인간 생존자 4명, 좀비 4명으로 팀을 나눠 코옵 게임의 틀을 따릅니다. 인간팀은 대피소로 이동하며 최종적으로 헬기나 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게 목표로 제시되며, 좀비 팀은 이를 방해하는 게 목적입니다. 인간팀은 무기를 사용해 높은 공격력을 바탕으로 좀비들을 쓸어버릴 수 있지만 ‘피통’이 제한적입니다. 반면, 좀비팀은 상대적으로 부활이 자유로워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덤벼들 수 있습니다.
2008년 출시된 ‘레프트 4 데드’는 코옵 게임에 좀비물을 잘 버무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후속작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게임 스트리머들을 통해 술래잡기 게임으로 유명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식물로 좀비를 물리쳐요!
‘식물 vs 좀비’
‘식물 vs 좀비’는 타워 디펜스 장르 좀비 게임입니다. 뇌를 먹으러 오는 좀비에 대항해 식물을 키워 집을 방어하는 내용으로 전형적인 타워 디펜스 장르의 문법을 따릅니다. 크게 공격형과 보조형으로 나뉘는 다양한 식물을 키워 갖가지 방법으로 공격해오는 좀비를 막아야 합니다. 독특한 설정과 캐릭터로 인기를 끌면서 ‘식물 vs 좀비’는 현재 세 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졌으며, TPS 장르인 ‘식물 vs 좀비 가든 워페어’, TCG 장르 ‘식물 vs 좀비 히어로즈’ 등 파생 작품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좀비를 피해 기차를 타자
‘좀피어서’
‘좀피어서(Zompiercer)’는 기차를 타고 마을을 옮겨 다니며 좀비로부터 살아남는 1인칭 슈터 장르 게임입니다. 기차를 타고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각종 무기와 아이템을 ‘줍줍’하는 파밍 작업을 하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FPS 장르에 육성 요소를 결합해 좀비를 잡으면 레벨을 올릴 수 있고 또 HP, 스태미나, 무게, 은신 등 스탯에 투자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총기류를 비롯해 다양한 무기가 주어지는데, 망치, 베트, 나이프 등 근접 무기의 경우 직접 제작해야 합니다. 각 무기에는 내구도 개념이 적용되어 있어 무기를 사용하다 보면 내구도가 모두 소진되고 새로 제작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스팀’을 통해 지난해 4월 출시된 이 게임은 국내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괴물의 시점으로 플레이하는
캐리온
‘캐리온’은 인간이 아닌 괴물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메트로배니아 장르 호러 게임입니다. 좀비물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괴물이라는 점, 괴물이 인간을 대량 학살하는 모습 등에서 ‘스위트홈’이 연상되는 게임이죠. 괴물을 조종해 시설물을 탈출한다는 설정에서 유명 인디 게임 ‘인사이드’의 후반부 진행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초반에 괴물은 조그마한 세포 덩어리 형태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사람을 흡수하고 오염시키면서 점점 커집니다. 단순히 인간을 공격해 죽이는 액션이 아닌 다양한 스킬을 통해 게임 속 퍼즐을 풀어나갈 수 있으며, 중후반부에는 기생 능력을 얻어 인간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출시된 이 게임은 PC를 비롯해 엑스박스, 닌텐도 스위치 등 멀티플랫폼으로 나왔으며, 한국어를 지원합니다.
‘스위트홈’에서 나온 이 대사는 아포칼립스 장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세상의 멸망과 맞닥뜨린 인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참상, 주식 판 ‘잡주’처럼 고점과 저점을 오가는 인류애. 아포칼립스물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불안을 투영하고 있기에 사랑받는 거 아닐까요? 오늘도 우리의 중2병 소원은 아포칼립스 콘텐츠로 대리 구현되고 있습니다. “아 일하기 싫다. 세상 다 망했으면.”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