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의 꽃은 바로 전투! 블루홀스튜디오에서 ‘엘리온’ 전투 디자인 업무를 맡은 김우현 님을 만났다. 엘리온은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했을까?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는 ‘전투 디자이너’라는 직무 이야기와 엘리온 탄생 비하인드 히스토리를 함께 만나 보자.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블루홀스튜디오 디자인1팀에서 엘리온 전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우현입니다.
전투 디자이너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게임에서 전투에 관련된, 클래스나 스킬 외에도 다른 요소들이 있어요. 이러한 시스템들을 기획해서 전투에서 즐거운 경험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마법을 쓰는 캐릭터와 총 쏘는 캐릭터는 비슷한 발사체를 쏘더라도 서로의 경험이 명확히 달라야 하겠죠. 그런 부분을 기획하고 구성합니다.
크래프톤이 첫 직장이신가요?
네. 제가 올해 3년 차인데요. 히스토리가 좀 특이해요. 부동산학과를 재학 중에 창업을 오래 준비했죠. 창업을 준비할 때, 저희 사무실 옆 방이 게임 제작 창업팀이었어요. 옆 방 분들이랑 같이 점심도 먹고 친해졌는데, 게임 만드는 게 너무 재밌어 보이는 거예요? (웃음)
게임 만드는 일을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니까 왠지 나도 할 수 있겠다, 내가 훨씬 잘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하드코어 게이머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창업은 사업 계획서 쓸 때부터 멀리 내다봐야 해서 과정이 오래 걸리는데, 게임은 금방 프로토타입이 나와서 만들어보고 바로 수정해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어요. 그렇게 이 길로 접어들었죠.
원래 게임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정말 하드코어 게이머였어요. 잘하기도 했고요. (웃음)
인터뷰할 때 스스로 게임 잘한다고 말씀하신 분은 우현 님이 처음이에요.
좀 부끄럽지만, 어떤 게임이든 시작하면 정상은 찍은 것 같아요. 배그도 2000시간 이상 했고, 와우나 롤, 배틀 라이트, 온갖 패키지 게임 등 다양한 게임을 정말 많이 해봤죠.
이전에 아예 다른 분야를 준비하셨었는데. 게임 회사 입사를 위해 따로 공부하셨나요?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적은 없고요. 일단 제 주변에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게임하면서 알게 된 분들이 게임 종사자인 경우가 많았죠. 그분들에게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게임을 만들 때 다양한 직무가 있어요. 전투 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전투 디자인을 한 건 아니고, 기획 직무로 입사해서 게임에 필요한 각종 콘텐츠, 던전 디자인을 했어요. 이후 전투 디자이너로 특화된 케이스죠. 당시 게임회사에 들어가고 싶은데, 개발이나 아트 쪽은 전문적인 스킬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기획 직군은 제가 쌓은 지식으로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워낙 게임 고인물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게임 고인물에서 실제 게임 기획자가 되어 보니 생각과 달랐던 점이 있었나요?
비유하자면, 게임 기획은 레고를 조립하는 것과 비슷해요. 기획자가 설계도를 그려서 아트, 개발팀에 레고 부품을 요청해요. 직접 해보기 전에는 부품이 완성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 부품을 전체적으로 조립하는 일이 기획 업무의 핵심이에요. 정말 해봐야 알 수 있죠.
요즘 우현 님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솔직히 하루 일과를 딱 정해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출근하면 매일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죠. 우선순위 정해서 이것저것 해결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들어가고. 그러다 보면 퇴근 시간이네요. (웃음) 출근길에 ‘오늘은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면 늘 익사이팅해요.
전반적인 전투 디자인 과정이 궁금해요.
처음에 개발 목표 및 기획 의도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초안을 작성하죠. 여기서 나온 초안을 통해 대략적인 필요 리소스를 산정하구요. 예를 들어, 궁수라는 클래스가 있다면 구체적 스킬을 완성하기 위해 활을 당기는 모션, 활과 발사체 등의 리소스가 필요하겠죠. 이를 정리한 초안을 작성해 개발팀에 요청하죠. 개발되는 동안 미리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디벨롭해요. 리소스가 완성되면 정식으로 스킬을 만들고, 밸런스를 테스트해 보죠. 대략 이런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 같아요.
전투 디자인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특출한 하나의 능력보다는 나의 능력치를 고루 위로 끌어올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센스가 꼭 필요해요. 게임을 만들다 보면,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만 게임이 흘러가지 않아요. 각자의 방향성,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그렇다고 재미없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게임 이해도가 높고 센스가 있다면 재밌는 요소를 뽑아서 만들 수 있죠.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취향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해요.
일단은 게임 안 가리고 많이 해야겠네요.
실력은 안 좋아도 많이 해보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레퍼런스를 접하다 보면 결국 일할 때 도움이 되거든요.
요즘 우현 님은 어떤 게임을 플레이하시나요?
‘발헤임’과 ‘수프라랜드’ 라는 게임을 즐기고 있어요. 두 게임 모두 레벨 디자인이 정말 인상적인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게임이네요. 에픽스토어에서 최근 무료로 풀었던 ‘스타워즈: 배틀 프론트’ 즐기고 있고요. 로그 라이크 장르를 좋아해서 ‘데드셀’도 종종 하고, 귀여운 게임인 ‘쥬시 렐름’이란 게임도 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물론 엘리온! 잊을 뻔했네요. (웃음)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실무 환경에서는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게임을 하나 만들어보며 학습하면 도움이 돼요. 특히 내가 가고자 하는 프로젝트와 동일한 장르 게임을 깊게 플레이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게임 기획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요. 시스템 기획, 콘텐츠 기획, 레벨 디자인 등… 다양한 기획 직무 중,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요.
현재 엘리온 전투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시는데요. 엘리온 기획 초반 과정이 궁금해요.
기획 초반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한 키워드가 ‘다양성’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맞춰서 스킬 특성, 마나 각성 등 다양한 스킬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도록, 유저의 선택지를 늘려주는 기획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엘리온은 커스터마이징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에요. 처음 기획한 것과 결과가 다른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죠. 생각하지 못한 것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디자인한 것들 중에서 의도한 대로 활용되지 않는 것들을 보면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다방면으로 꼼꼼히 살펴보는 역량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엘리온 제작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엘리온 1차 서포터즈 진행 후 반응이 좋아 출시 결정이 되었는데요. 내가 그동안 노력했던 게 보상받는 기분이라 정말 요즘 말로 가슴이 웅장해졌어요. 뿌듯함을 넘어서는 감정이었죠. 그리고 대부분 기획자가 비슷할 텐데, 내가 기획한 콘텐츠가 칭찬 받을 때 제일 좋아요. (웃음) 저는 정말 게임을 좋아해서 덕업일치를 이뤘다는 걸 매일 느껴요. 제작하면서 힘들고 불안한 순간도 있었지만, 후회하는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엘리온 론칭 후, 요즘은 어떤 일을 주로 하시나요?
문제되는 것들을 수정하고, 제작한 것들을 계속 디벨롭하고 있어요. 신규 클래스 작업도 하고, 게임이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작업하고 있죠.
우현 님이 생각하는 엘리온의 가장 큰 장점은?
우선 PC MMORPG가 오랜만에 출시되었다는 점이 의미 있고요. 개인적으로 사냥하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서 나올 수 있는 빌드도 여러 가지고요. 무엇보다 PVP가 재미있어요. 무적기 때문에 유저들이 스트레스 받을 수도 있는데, 이를 파훼할 수 있는 가위바위보 수 싸움 게임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게 훨씬 많은 게임이에요!
앞으로 전투 디자이너로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게임의 상징이 되는 시스템을 기획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세키로’는 ‘패링’ 위주로 돌아가는데, 다른 게임에는 없는 ‘체간’이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완벽하게 작동해요. ‘둠 이터널’은 ‘글로리 킬’이라고, 근접 공격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죠. 이런 게임들은 독창적인 시스템이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리고 로그 라이크 장르가 인디 게임판에서 대세가 된 지 한참 됐어요. ‘엔터 더 건전’, ‘데드셀’ 등 로그 라이크 장르를 섞어 만든 게임들이 많아요. 그런데 PVP와 로그 라이크를 섞은 게임이 제대로 나온게 아직 없다고 보거든요. 개인적으로 그런 게임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럼 우현 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게임 업계의 짱이 되는 것? (웃음)
짱의 조건은 무엇이죠?
오랫동안 플레이할 수 있는, 유저에게 오래 남는 게임을 만드는 것? 배그처럼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않더라도, 저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짱의 조건이 아닐까요? (웃음)
게임 업계 ‘짱’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 김우현 전투 디자이너 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달려 가는 것 자체가 이미 ‘짱’ 아닐까? 앞으로도 크래프톤에서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피플온]에서 계속 밀착 취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