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인데요. 마치 이 시국을 예견한 것 같은 고사성어죠. 봄이 왔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예년처럼 봄 분위기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축제는 옛말이 됐고,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아무도 걷지 못하게 됐습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마스크 냄새인지 내 입 냄새인지 모를 묘한 향이 느껴질 뿐이죠.
우리 모두 인내가 필요한 시기인데요. 그래도 내면에서 크킄 날뛰는 ‘인싸력’을 참을 수 없다면 게임으로 랜선 여행을 떠나봅시다. 3차원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게임 속 세상은 때론 현실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지나치는 꽃들 속에 아쉬움 가득한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마블스 스파이더맨(Marvel’s Spider-Man)
코로나19 팬데믹은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여행을 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던 일들이 얼마나 눈부신 순간이었는지를요. 하지만, 요즘 자유에 유독 큰 책임이 따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책임 의식을 갖고 ‘마블스 스파이더맨’을 플레이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건 어떨까요?
‘마블스 스파이더맨’은 2018년 PS4로 출시된 오픈 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거미줄을 흩날리며 뉴욕 빌딩 숲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죠. 마치 뉴욕 여행을 하는 것처럼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단순 눈속임 식으로 거미줄 활강을 구현했던 이전 스파이더맨 게임들과 달리 시원시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반적으로 게임은 ‘배트맨 아캄’ 시리즈와 비슷한 구조를 갖췄습니다. 적과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전투가 이어지며 주변 환경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거미줄, 스파이더 센스 등 스파이더맨 고유의 능력을 활용한 액션이 재미를 더해줍니다. 단점은 단조로운 보스전을 비롯해 랜드마크 사진을 찍는 등의 단순 퀘스트가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진 찍기 퀘스트가 오히려 장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도심을 벗어나 야생을 느끼고 싶다면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야숨)가 제격입니다. 메타크리틱 점수 97점, 2017년 최다 올해의 게임(GOTY) 수상작인 ‘야숨’은 인기 IP ‘젤다의 전설’을 오픈 월드로 구현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스토리의 선형성을 허물고 시작부터 끝판왕을 잡으러 갈 수 있는 자유도가 특징이죠. 이러한 자유를 바탕으로 미려한 디자인의 오픈 월드 세상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게임 인트로 부분에서 하이랄 세계 전경이 펼쳐지는 부분이 장관입니다.
또한, 게임 내 사물과 상호작용도 탁월해 이용자에 따라 기상천외한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누군가에겐 등산 게임, 누군가에겐 서핑 게임, 누군가에겐 잠입 액션 게임이 될 수 있죠.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게임 경험이 달라집니다. 물론 ‘갓겜’도 누군가에겐 ‘똥겜’이 될 수 있습니다. 혹자는 게임의 선형성을 부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쿠크다스’ 같은 장비 내구도 시스템 등을 단점으로 지적하기도 합니다.
파이널 판타지 XV
망겜과 갓겜 사이에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파이널 판타지 XV ‘는 사실 여행에 최적화된 게임입니다. ‘파이널 판타지 XV’의 오픈 월드는 자유와 선형성 사이에서 애매한 모습을 보여 게임 구성면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행 게임으로 보면 탁월합니다. 주인공이 칼질을 하고 마법도 쓰지만, 풍경은 현실을 닮았기 때문에 대리만족 랜선 여행을 즐기기에 좋습니다.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축제를 즐기고, ‘먹방’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게임 그래픽도 ‘파이널 판타지’ 딱지를 떼고 기대감을 낮추면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특히 음식을 해먹을 때 세밀한 음식 묘사는 군침을 삼키게 할 정도입니다. 사실 파이널 판타지 XV는 RPG가 아닌 여행·먹방 게임이었던 셈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를 예견한 스퀘어에닉스의 큰 그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이국적인 풍경이 보고 싶다면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이 답입니다. 2017년 출시된 유비소프트의 오픈 월드 액션 RPG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은 고대 이집트를 디테일하게 구현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 고대 이집트 프롤레마이오스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시리즈를 대표하는 암살단의 탄생 과정을 그립니다.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사막과 피라미드를 탐험하며 여행 욕구를 충족할 수 있죠. 그리고 도적부터 사자, 악어, 언데드 병사, 이집트 신까지 사람과 사람 아닌 적들을 때려잡으며 통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오리진’을 기점으로 이전 작품들은 ‘올드 어쌔신 크리드(Old AC)’로 분류됩니다. 많은 시스템을 최신 유행에 맞춰 갈아엎었기 때문에 올드 유저와 신규 유저들의 평판이 갈리는 편이죠. 하지만 다소 주춤하던 시리즈의 추진력을 얻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포켓몬 고
위치 기반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GPS 조작도 일정 부분 제재하며 야외 활동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보면 사회적 거리두기와 상극인 게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포켓몬 고’ 개발사 나이언틱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포켓몬 고’를 방구석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방구석에서도 포켓몬을 찾아 걱정 따윈 없는 내 꿈을 위한 여행이 가능해졌습니다.
‘포켓몬 고’는 실내에서의 걸음을 추적해 집안에서도 포켓몬을 수집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집을 청소하거나 러닝머신 운동을 하면서 포켓몬 마스터의 꿈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셈이죠. 또한, 집에서도 친구들과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좋아하는 실제 장소에 가상으로 방문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할 예정입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을 통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즐기며 코로나19 확산을 막자는 겁니다. ‘게임이용장애’로 논란을 빚은 WHO가 게임으로 캠페인을 한다는 점이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게임의 긍정적인 면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조치입니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안 걸까요. 방구석에 숨어서 게임을 하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세계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어쩌면 게임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힘든 봄이지만, 오늘은 우리 같이 ‘즐겜’합시다.
이기범 블로터 기자 spirittiger@bloter.net